운동선수 체력에 미스코리아 외모, 완벽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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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이라는 한 여자. 그는 어떻게 이야기에 등장하는가? 에서와 야곱이 벌이는 허망하면서도 살벌한 장자권 다툼은 의외로 결혼 문제, 즉 어떤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느냐는 문제로 이어진다.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까닭은 그를 죽이려는 에서로부터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리브가와 이삭은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창 27:46)
에서가 헷 여인들과 결혼한 것에 대해서 성경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창 26:34) 이삭과 리브가가 에서의 아내들, 헷 여인들을 왜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단순하게 인종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리브가는 이 문제를 다시 꺼내서 이삭을 충동질한다.
결혼은 야곱이 집을 떠나서 하란에 있는 라반에게로 가는 명분이었다. 이삭도 야곱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창 28:1~2) 이렇게 하면서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를 비난하고 배제한다.
이삭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주셔서 야곱이 생육하고 번성해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을 차지하라고 축복한다(창 28:3~4). 그 후에 야곱은 집을 떠난다. 야곱은 결혼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난다. 지금부터 야곱은 오직 결혼 상대에게만 주목한다. 이삭 때에는 아브라함의 종이 밧단아람까지 가서 리브가를 데려왔는데, 야곱은 자신이 직접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
에서는 장자권 쟁탈전 이후에, 야곱이 친족과 결혼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그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지켜보았다. 에서는 부모가 가나안 사람의 딸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에서는 그 사실을 정말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서 에서는 당장에 가서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했다(창 28:9). 그렇다고 부모의 맘이 금방 풀릴 리 없지만, 에서는 부모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어쨌든 나름대로 애쓰는 중이다. 리브가는 에서의 분노로부터 야곱의 목숨을 구하려고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지만, 오히려 야곱이 길을 가는 동안 에서가 추격해서 야곱을 살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이제 장자권 쟁탈과는 아무 관계없이, 형제가 결혼하는 것으로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다.
가족을 떠난 야곱은 '동방 사람의 땅'에 도착해서 목자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가에 있다가, 하란에서 온 목자들에게 라반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창 29:6) 성경 기자는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양들을 치는 목동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라헬이 양을 치느냐는 것이다. 야곱이 우물가에 있던 목동들에게 "내 형제여"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분명 남자들이었을 것이고, 대다수 목동들이 남자들이었을 텐데 말이다. 라반에게 아들이 없는 게 아니다. 라반에게는 '아들들'이 있었다(창 31:1). 아들이 하나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라헬이 양을 치는가?
▲ 우물 곁에서 라헬과 만나 키스하는 야곱. 라헬은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자였다. Jacob Encountering Rachel with her Father's Herds. Joseph von Führich (1800–1876) 작품. (사진 제공 위키디피아) |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라헬이 아버지의 양들을 데리고 우물로 왔다. 야곱은 이렇게 라헬을 만난다. 그리고 야곱은 라헬이 데려온 양들에게 물을 먹인다. 그런 다음 라헬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라헬은 이 소식을 라반에게 알린다.
야곱은 라반을 만나서 라반의 집에 거하는데, 한 달이 지난 후에,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어떻게 할지 말하라고 한다. 성경 기자는 라반이 하는 말과 야곱이 하는 대답 사이에 레아와 라헬을 소개하는데,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창 29:17)라고 묘사한다. 새번역은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고 번역한다. 라헬은 양치는 목동이었기 때문에 체력이 남자들 못지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헬은 국가대표 운동선수에 미스코리아를 겸한 완벽한 여인이었다는 것이다. 야곱은 두 자매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까? 야곱이 레아가 아닌 라헬을 선택했다고 해서 야곱을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성경 기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나 예상한 대로, 성경 기자는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했다고 말한다. 라반과 야곱은 노동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경 기자는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 29:20)고 진술한다. 칠 년은 야곱이 라반에게 제안한 햇수이다. 야곱은 라헬을 보는 순간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정도는 봉사할 만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장자권을 얻기 위해 어머니 리브가의 주도 아래 꼼수를 부렸던 야곱은 이제는 라헬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야곱은 장자권 쟁탈 때와는 달리, 7년을 며칠같이 여길 정도로 성실하게 일을 했다. 사랑의 힘이 참 크다.
그렇게 칠년이 지났다. 드디어 기다리던 날이 왔다. 야곱은 라반에게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라고 말한다. 야곱이 말하는 '내 아내'는 분명 라헬이었다. 그러나 라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라반은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야 야곱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서 라반과 다시 계약을 해야 했다. 레아와 결혼한 지 일주일 후에 라반은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준다(창 29:27~28). 그리고 7년을 라반을 위해 일했는데,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다(창 29:30). 야곱이 14년 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가는 야곱이 라반에게 하는 말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창 31:38~40). 야곱은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봉사했다(창 31:41)고 하는데, 실제론 라헬만을 위해서 14년을 헌신했다.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받은 여인 라헬. 분명 행복한 여인이다. 그런데 라헬은 그 14년 동안 진정 행복했을까 (다음에 계속)
이종록 /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