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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레아. 레아는 과연 어머니였는가? 물론 레아가 자식들을 출산했기 때문에 레아는 분명 어머니다. 그러나 레아가 진정한 어머니였는가는 의문이다. 레아는 라반의 두 딸 가운데 언니이다. 성경 기자는 레아를 "시력이 약하"다고 소개한다(창 29:17). 새번역은 "눈매가 부드럽"다고 번역한다. 두 가지 번역이 다 적합하지만, 바로 이어서 나오는 라헬에 대한 소개에 비해서 볼 때, 레아의 외모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건 사실인 모양이다. 남자들이 시선을 줄 만한 미모나 성적 매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야곱은 라헬을 먼저 만났고, 라헬을 사랑했다. 성경 기자는 야곱이 라헬을 위해서 14년을 며칠처럼 일했다고 한다. 그 14년 동안 야곱은 레아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야곱은 오직 라헬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했는데, 라반은 결혼식 날 저녁에 라헬이 아닌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냈다. 야곱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에야 자초지종을 알고 라반에게 따진다. 그러자 라반은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창 29:26)고 야곱에게 말한다.

라반이 계획적으로 야곱을 묶어 두기 위해 속임수를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하는 변명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제나 자매 가운데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는 경우, 형이나 언니가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던 것을 보면, 야곱이 레아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레아 입장에서는 자신이 라헬보다 일주일 먼저 야곱과 결혼했는데, 자신보다 늦게 결혼한 라헬이 야곱을 독차지하려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먼저 결혼한 레아가 먼저 아들을 낳았다. 이것을 성경 기자는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고 풀이한다(창 29:31). 야곱이 레아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하나님도 아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잡하게 얽힌 삼각관계에 개입하셔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주려 하신다. 레아도 그렇게 생각했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창 29:32). "나의 괴로움"이라는 말에서 그동안 레아가 겪었을 가슴앓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레아를 조금이라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 이름을 야곱이 아닌 레아가 지어 주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래도 레아는 하나님이 주신 희망의 끈을 잡은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야곱은 대놓고 레아를 무시했던 모양이다. 레아는 정말 한이 맺혔을 것이다. 그는 아이를 낳음으로써 어머니가 되는 것보다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을 더 원했다. 첫째 아이 르우벤("보라 아들이다")를 낳고도 남편이 그를 사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둘째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이름을 시므온("들으심")이라고 짓는데,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을 주셨도다"(창 29:33)고 고백한다. 그러니 레아는 르우벤을 낳고 난 다음에 얼마나 하나님께 한탄하는 기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그 한탄을 주님이 들으시고 다시 아들을 낳게 하셨다는 것이다. 레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자신의 아픔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버텼다. 생각보다 강인한 여자이다.

레아는 셋째 아이를 낳고 그 이름을 레위("연합함")라고 짓는데,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창 29:34)라고 말한다. 이때는 어느 정도 상황이 호전되는 기미가 나타났던 모양이다. 야곱이 조금씩 레아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레아는 그렇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심하던 예전과 달리, 야곱이 레아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레아는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레아는 네 아이를 연속으로 낳는다. 넷째 아이는 유다("찬송")이다. 레아는 아이를 출산한 다음,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29:35)라고 고백한다. 남편 때문에 맘고생이 심했던 레아는 하나님만 붙들고 믿음으로 모진 괴로움을 이겨왔다. 드디어 주님께 찬양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레아는 정말 강인한 여성이다. 그런데 문제는 레아가 진정한 어머니보다는 한 남자의 아내로 인정받는 것에 더 마음을 썼다는 것이다. 어머니 되는 것, 즉 자식을 낳는 것을 남편에게 인정받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마음 아프면서 또한 마음에 걸린다.

레아가 아들 넷을 내리 낳으면서 야곱이 레아에게 차츰 마음을 주자, 라헬은 그것을 못 견뎌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소름끼치는 아들 낳기 경쟁을 시작한다. 라헬이 자신의 시녀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서 두 아이를 낳게 하자, 레아도 자신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서 두 아이를 낳게 한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낳았으니, 그들이 온전하게 성장했겠는가?

레아는 임신하지 못해서 애가 타는 라헬에게 합환채(자귀나무)를 주고, 야곱과 동침할 권리를 얻어서 야곱에게 당당하게 요구한다. 성경 기자는 이 야릇한 장면을 꽤 상세하게 서술하는데, 레아와 라헬 사이에 야곱 쟁탈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레아와 라헬이 출산을 신앙적인 차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경쟁은 전쟁처럼 치열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임신을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창 30:17). 레아는 다섯째 아이를 잇사갈("값")이라고 하는데,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창 30:18)고 고백한다. 그리고 여섯째 아이를 낳고 스불론("거함")이라고 이름을 지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창 30:20)고 말한다. 레아는 여섯째 아들을 낳기까지 아주 정교한 과정들을 거치면서 야곱의 마음을 자신에게 향하게 했다.

그러나 야곱이 생각하는 아내들 서열은 바뀌지 않았다. 에서가 군사 400명을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그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었다(창 33:1-2). 레아가 무진 애써서 남편의 사랑을 상당히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여전했다. 레아는 만족했을까? 나는 아쉽다.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남편의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억척스럽게 아이 낳는 일에 몰두한 여자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어머니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종록 /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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