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을 만나고 인생 꼬여 버린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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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라는 한 여자. 이 여인의 일생은 야곱을 만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성경 기자는 레아와 라헬을 이렇게 소개한다.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창 29:16) 우리는 레아와 라헬이 야곱을 만나기 전에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야곱이 그곳에 나타나면서 두 자매는 평생을 질투하고 경쟁(해야)하는 피 말리는 라이벌 관계로 변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른 가족들과도 등지고 결국 야반도주하는 지경에 이른다. 야곱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천부적 마이너스의 손임에 분명하다.
야곱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하는 것, 즉 야곱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 죽는 순간에도 잊지 못할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루스, 즉 벧엘 사건이었다. 벧엘은 야곱을 언제나 원형질로 복귀하게 하는 황금 연못이었다. 그래서 야곱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벧엘 사건으로 회귀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3~14) 이 구절은 하나님은 언제나 계약을 맺으시고 그 계약을 결코 파기하지 않으시는 '헤세드의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보여 주신다. 야곱이 스스로 자초한 험악한 세월을 감당하면서 끊임없이 되새긴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헤세드를 의지했을 뿐, 자신은 헤세드가 전혀 없는 삶을 살았다. 야곱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공한 사람이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 30:43) 야곱이 이렇게 성공한 것은 남보다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작 야곱이 부유해지는 과정을 보면, 이야기가 황당하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창 30:37~42)
우리가 이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야곱의 행위이다. 야곱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면, 그 행위가 정당한 지혜에 의한 것임을 밝혀야 하는데, 본문을 꼼꼼하게 읽을수록 그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천성적으로 야곱의 재산 축적을 부러워하면서, 그런 지혜를 주님이 주셨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식인지가 분명치 않다. 인용한 본문은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지시한 사실을 본문에서 찾을 수가 없고, 다만 야곱이 나중에 하는 말에서 간접적으로 나타날 뿐이다(창 31:7~13). 아버지와 형을 속여서 복을 독차지하려 한 선천적 사기꾼 야곱이 하는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이 그런 꾀를 통해서 야곱이 차지할 몫을 보전해 주셨을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 다음에 부딪히는 문제는 유전학적인 문제이다. 야곱이 시각적인 방식으로 유전적 변형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독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는 증식 방법보다 야곱이 양 개체수를 늘렸다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설혹 그런 원시적 방법으로 유전적인 변형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해서 권력과 재산을 얻는다 해도, 그것은 신앙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지도 않다. 이 이야기가 알려 주는 것은 야곱이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서 골몰했으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무자비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야곱이 평생 사랑한 것은 황금으로 상징되는 부이다.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드는 마이더스(미다스)의 손. 그것은 사랑하는 딸까지 황금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이더스는 그것을 슬퍼했지만, 야곱은 사랑하는 게 오직 황금이었기에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려 하면서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온전한 마이더스의 손이 아니고 완벽한 마이너스의 손이어서,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레아와 라헬. 이 두 여인의 삶도 그렇다. 야곱은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힘겹게 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어설픈 마이더스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임종 직전에는 축복의 손이 된다. 야곱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열두 아들들을 불러다 놓고 그들에게 각각 축복한 다음, 이렇게 유언한다.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창 49:29~31)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참 절절한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처럼, 야곱과 레아가 짝을 이루는 것을 보여 준다. 야곱이 레아를 진정한 아내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아들 요셉이 당시 애굽의 총리대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굳이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소망했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이다. 그는 하나님이 현재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 즉 자신의 후손들을 언젠가는 반드시 출애굽시킬 것임을 확신했고, 그래서 자신이 먼저 출애굽해서 조상들 곁에 묻혀 있다가 후손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 영접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조상들 곁에 묻히고 싶어했다. 그리고 더 내밀하게는 레아 곁에 묻히고 싶어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아와 함께 잠들고 싶다." 어쩌면 살아생전에 레아에게 했던 모든 못할 짓들을 죽어서라도 용서를 빌고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레아. 그는 죽어서 이렇게 남편 야곱에게 한 여자로, 진정한 아내로 인정받았다.
이종록 /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