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권위의 상실입니다.
권력에서 파생하는 위력인 권위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구상에서 설자리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권위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거 니체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차라투슈트라는 등불을 들고 시장을 헤맵니다.
"신(神)을 찾는다. 신이 간 곳을 아는가?"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애절하게 물었습니다.
시장 사람들은 반문합니다.
"신이 어린애처럼 미아(迷兒)가 됐는가?"하고. 차라투슈트라는 주저앉아 이렇게 울부짖고 맙니다.
"너희들에게 말해두마. 우리들이 신을 죽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조로아스터교(拜火敎)의 교조(敎祖)인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최고의 권위를 누려온 신을 죽였습니다.
1세기 후인 20세기에 미국의 사회학자 마르쿠제 역시 차라투슈트라의 입을 빌어 아버지는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신 다음으로 권위를 누려온 아버지(父權) 마저 죽였습니다.
'아버지를 찾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이 거리 저 시장을 헤매게 하였습니다.
마르쿠제가 말했듯이 오늘 이 시대에 아버지의 권위는 행방불명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삼각형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던 아버지의 자리를 스타나 대중 매체, 돈, 상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부재는 자녀들의 신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청년층 이하 교인의 급격한 감소는 저출산도 원인이 있지만
같은 연령대의 5% 정도의 청년층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보면 그것만이 원인의 전부는 아닙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아버지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뉴욕 대학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폴 비츠는 그의 책 "무신론의 심리학(아버지의 부재와 무신론 신앙)"에서
근대 서구 사상계를 주도해온 유명한 무신론자들의 전기적 사실을 두루 살피면서,
'결함 있는 아버지 가정'이 그들의 무신론적 사상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의 부재, 무기력, 죽음, 학대에서 유발된 트라우마와 결핍이 하나님 이미지를 왜곡시켜
하나님에 대한 거부와 불신앙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일단 육신의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거나 존경심을 잃게 되면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의 경우 자기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신에 대한 부정을 정당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실험집단으로 그리고 신자들을 통제집단으로 삼아 전기적 일대기를 읽으며 그의 논지를 입증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생애 중 일찍 죽은 경우일수록 더 심각한 결함 있는 아버지가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때는 아이가 세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인데
이 때 심리 발달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기라고 합니다.
이때가 아이의 성 정체성뿐만 아니라 초자아(아버지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체계)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시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니체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흄은 두 살 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쓴 러셀은 4 살때,
사르트르는 15개월에 각각 아버지를 떠나보냈고,
쇼펜하우어의 아버지는 그가 17세 때 자살했습니다.
20세기 말 저널리스트인 러셀 베이커는 자서전에서 5살 때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하나님이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왜 아버지를 죽게 하셨나요?"라고 물으며 신앙에서 떠났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살아도 유약하고 학대하는 아버지에 의해 볼테르는 이신론자가 되었고,
지그문트 프로리트는 자기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약하고 성도착자였던 아버지를 증오함으로 종교적 믿음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에 살았던 파스칼이나 멘델스존, 윌리엄 윌버포스, 키에르케고르,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은 좋은 아버지로 인하여,
설령 일찍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성인 남자가 있음으로 인해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문제를 보완했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어머니가 세 살 때 떠났지만 신앙 좋은 판사 아버지는 어린 파스칼과 누이들을 전력하여 교육시켰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아홉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믿음 좋은 삼촌으로부터 양육받았고
그의 아들 네 명은 좋은 신앙인이 되었고 그 중 세 명은 목사가 되었답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교양 있는 독일 개신교 목사로 아들로 자랐고
그가 말하길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그것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어린 시절 행복한 가정에서 살았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보완해 주는 할아버지, 삼촌, 목사, 신부 ,학교 교장 또는 선생님이 무신론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가 됩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신앙의 모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