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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강의를 시작하며 박승호 목사는 서론 부분을 담당하여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다. 특히 목회자를 위한 선지자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멘넷은 두차례에 걸쳐 박승호 목사의 강의를 소개할 예정이다. 첫번째 소개하는 내용은 '교인의 변화'에 중심을 둔 하나님의 종으로서 바른 목회가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다. 이후 소개할 내용은 레위기에 나타난 5가지 제사를 현대 목회에 적용한 부분이다.
▲열강하는 박승호 목사
1.
"오늘 너무 좋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은혜되는 말씀이다"라고 한다. 좋다. 그런데 죽을때 까지 은혜만 받는다. 광야때 은혜가 있었는가. 날마다 은혜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등 우리는 평생에 한번만 그래도 굉장한 것들이다. 은혜는 너무 넘치는데 응답을 안하니 다 썩는다. 목사들은 은혜만 끼치려고 한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은혜를 주고 이후 방향을 주어야 하는데 안준다. 또 은혜받으라고 또 은혜받자고 한다. 예배로 은혜받는데 집중한다. 좋다. 은혜를 받아야 그 힘으로 하나님께 응답할수 있다. 그런데 목사는 은혜받고 응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남포교회 박영상 목사님이 80년대 "구원 이후"라는 책을 쓰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구원받은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났는데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원받은 이후에 무엇을 할것인가. 그래서 나온것이 구제해야 한다 또는 선교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이 안바뀌고 구제와 선교를 하니 그것들이 종교적인 의식이 되어 버린다.
항상 사랑과 공의는 같이 가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기에 나도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도 나온다.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 친구하자. 내가 죽을테니 너도 나를 위해 죽을수 있겠니" 라고 하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이다. 교회가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너도 죽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은혜를 끼치려고 그런 말을 못한다. 그러면 손님이 다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격적인 만남을 못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내가 받는 것에만 관심있다. 행복과 축복등 누리는 것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가 공의이다.
오늘 우리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은혜받고 십일조하라 전도하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성장하지 않으면 설수가 없다. 흉내는 낼수 있지만 얼마지나면 무너진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생리를 한다고 한다. 애를 나을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은 되지만 결혼을 안시킨다. 아이가 태어나도 아이를 키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
그렇게 많이 예배를 드려도 사람들이 안변한다. 성경대로 안가르쳤기에 변화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부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근본적인 인격변화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는 이런 제사를 원한다. 이렇게 너희가 제사를 드리면 죄를 용서하고 심판을 면해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런 제사라고 하는 기준이 없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제사로 바꾸어 버렸다. 나는 열심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신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자기 식이다. 평생을 헌신했다고 하는데 보니 자기식으로 헌신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헌신이 얼마나 많은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오늘 이 시대에 성경을 보기는 한다. 그런데 성경대로 안하고 배워했던 대로 그리고 해왔던 방식대로 한다. 그러니 뭔가 일어나고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5-10년 지나고 보니 변화가 없다. 당시에는 눈물 흘리고 너무 은혜롭고 좋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안변한다. 그 이유는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이 변화되는데 말씀이 안들어가고 목사의 생각과 철학이 들어가니 내 사람은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못만들었다.
오래전에 교회를 건축하다가 너무 지쳐 미국으로 휴식차 왔다. 조간 신문을 보니 미국에 별들이 떨어졌다는 제하의 기사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영계의 거장들이 그 시즌안에 여러분들이 돌아가셨다. 기사를 보고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말씀하시기를 "너희중에 내 이름을 팔아서 자기왕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마음의 감동을 주신다.
목회가 내 철학과 내 사상을 가지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원리로 도와주어야 하는가. 후자이다. 제가 그때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니 내 목회철학을 가지고 목회를 했다. 또 사람들을 좋아하고 친하고 하는 것이 전부 내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보였다. 교회건물을 건축하고 너무 좋아서 마당에 나가서 건물을 보는데 하나님이 부르셨다.
하나님: 좋은가?
박승호: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것 처럼 3번을 계속하여 물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저는 그 정도를 상식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제가 봉사를 했지만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얼마후 교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다. 머리가 비상한 교인이 있었는데 주보가 나오면 오자를 찾아내고 들고 오는 정도였다. 마음이 상했다. 그 분이 찾아오면 가슴이 덜컹하다. 자꾸 시비를 걸었다. 마음이 상해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인간을 변화시켜 주시든지 아니면 나가게 해주시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을 듣고도 전혀 무심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든지 아니면 마음이 상해서 목회를 못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작정기도를 했는데 기간이 끝나갈때쯤 하나님께서 질문하셨다.
하나님: 불편하냐?
박승호: 하나님, 많이 불편합니다.
하나님: 무엇이 불편하느냐.
박승호: 사사건건 시비거니 주눅이 들어서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치가 아니라 저 인간 눈치를 보느라고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그가 틀린말을 했는가?
박승호: 틀린말이 아니지만...
하나님: 그가 하는 말이 교회에 해를 주는 것인가?
박승호: 해를 주는 것은 아닌데...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분이 하는 일이 교회에 해를 끼치는가 유익을 주는가를 생각했을때 유익을 주는 것이다. 결국 목사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잘못된것이 아니다. 이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로서 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데 내가 시비를 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단지 불편 할 뿐이다.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자 하나님께 불편하게 생각을 안하겠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목회할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목회를 하는가.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스타일로 목회를 한다. 그것이 다행히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할때 문제가 안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이 할때가 많이 있다.
어떤 분이 와서 선교비를 지원해 달라고 한다. 아는 사람이 추천해서 오면 지원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이 오면 재고도 안한다. 그것이 무슨 원칙인가. 내 원칙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원칙인가. 내가 종이라면 주인되신 그분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데 과연 물어보는가. 형식적으로 물어는 보지만 실제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총회장 선거를 할때 사전에 물밑 작업을 다한다. 선거날에 대표기도할때 무엇이라고 기도하는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종을 뽑아주시고 성총회를 위해 일할수 있는 일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하지만, 표를 찍을때는 그 기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친분에 따라 찍는다. 아까한 기도는 형식이다. 그렇게 하면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마음대로 한다. 그런것들을 제일 안지키는 사람은 목사이다.
교회 일꾼을 하나 세울때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가. 물론 기도는 하지만 심을때는 자기 사람을 심는다. 그러면 내가 주인인가 종인가. 교회재정을 사용할때 그리고 사람을 뽑을때 보면 거의 다 자기 라인이다. 하나님의 라인은 없다. 목사이니 기도는 잘한다. 하지만 종은 없고 다 주인으로 바뀌었다. 이런 심각한 실수를 30-40년해도 목사들이 잘 안바뀐다.
전에 나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됐다. 그러면 그 사람을 목사로 인정을 하는가 안하는가. 누가 물어보면 과연 그 목사를 추천하는가. 목사로서 회개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목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갔는데도 그것을 인정안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교회에서 사고치고 다른 교회가 간다면 나쁜놈이라고 전화는 안하지만 전화가 왔을때 말을 곱게하는가 아니면 살짝 나쁘게 하는가. 이런 것들이 제일 안된 사람이 목사이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을 도울수 있는 것이 레위기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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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하는 박승호 목사
1.
"오늘 너무 좋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은혜되는 말씀이다"라고 한다. 좋다. 그런데 죽을때 까지 은혜만 받는다. 광야때 은혜가 있었는가. 날마다 은혜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등 우리는 평생에 한번만 그래도 굉장한 것들이다. 은혜는 너무 넘치는데 응답을 안하니 다 썩는다. 목사들은 은혜만 끼치려고 한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은혜를 주고 이후 방향을 주어야 하는데 안준다. 또 은혜받으라고 또 은혜받자고 한다. 예배로 은혜받는데 집중한다. 좋다. 은혜를 받아야 그 힘으로 하나님께 응답할수 있다. 그런데 목사는 은혜받고 응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다.
남포교회 박영상 목사님이 80년대 "구원 이후"라는 책을 쓰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구원받은 이후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났는데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구원받은 이후에 무엇을 할것인가. 그래서 나온것이 구제해야 한다 또는 선교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사람이 안바뀌고 구제와 선교를 하니 그것들이 종교적인 의식이 되어 버린다.
항상 사랑과 공의는 같이 가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기에 나도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말씀도 나온다.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 친구하자. 내가 죽을테니 너도 나를 위해 죽을수 있겠니" 라고 하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이야기이다. 교회가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너도 죽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은혜를 끼치려고 그런 말을 못한다. 그러면 손님이 다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격적인 만남을 못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내가 받는 것에만 관심있다. 행복과 축복등 누리는 것만 관심이 있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태도가 공의이다.
오늘 우리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은혜를 받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은혜받고 십일조하라 전도하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가 성장하지 않으면 설수가 없다. 흉내는 낼수 있지만 얼마지나면 무너진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생리를 한다고 한다. 애를 나을수 있는 신체적인 조건은 되지만 결혼을 안시킨다. 아이가 태어나도 아이를 키울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
그렇게 많이 예배를 드려도 사람들이 안변한다. 성경대로 안가르쳤기에 변화가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부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근본적인 인격변화가 없다. 하나님께서 "나는 이런 제사를 원한다. 이렇게 너희가 제사를 드리면 죄를 용서하고 심판을 면해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런 제사라고 하는 기준이 없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제사로 바꾸어 버렸다. 나는 열심으로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신다. 이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하는데 자기 식이다. 평생을 헌신했다고 하는데 보니 자기식으로 헌신한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헌신이 얼마나 많은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오늘 이 시대에 성경을 보기는 한다. 그런데 성경대로 안하고 배워했던 대로 그리고 해왔던 방식대로 한다. 그러니 뭔가 일어나고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5-10년 지나고 보니 변화가 없다. 당시에는 눈물 흘리고 너무 은혜롭고 좋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안변한다. 그 이유는 말씀이 들어가야 사람이 변화되는데 말씀이 안들어가고 목사의 생각과 철학이 들어가니 내 사람은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못만들었다.
오래전에 교회를 건축하다가 너무 지쳐 미국으로 휴식차 왔다. 조간 신문을 보니 미국에 별들이 떨어졌다는 제하의 기사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영계의 거장들이 그 시즌안에 여러분들이 돌아가셨다. 기사를 보고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말씀하시기를 "너희중에 내 이름을 팔아서 자기왕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마음의 감동을 주신다.
목회가 내 철학과 내 사상을 가지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원리로 도와주어야 하는가. 후자이다. 제가 그때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니 내 목회철학을 가지고 목회를 했다. 또 사람들을 좋아하고 친하고 하는 것이 전부 내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 보였다. 교회건물을 건축하고 너무 좋아서 마당에 나가서 건물을 보는데 하나님이 부르셨다.
하나님: 좋은가?
박승호: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줄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것 처럼 3번을 계속하여 물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저는 그 정도를 상식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제가 봉사를 했지만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얼마후 교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다. 머리가 비상한 교인이 있었는데 주보가 나오면 오자를 찾아내고 들고 오는 정도였다. 마음이 상했다. 그 분이 찾아오면 가슴이 덜컹하다. 자꾸 시비를 걸었다. 마음이 상해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인간을 변화시켜 주시든지 아니면 나가게 해주시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말을 듣고도 전혀 무심한 마음을 만들어 주시든지 아니면 마음이 상해서 목회를 못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작정기도를 했는데 기간이 끝나갈때쯤 하나님께서 질문하셨다.
하나님: 불편하냐?
박승호: 하나님, 많이 불편합니다.
하나님: 무엇이 불편하느냐.
박승호: 사사건건 시비거니 주눅이 들어서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눈치가 아니라 저 인간 눈치를 보느라고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하나님: 그가 틀린말을 했는가?
박승호: 틀린말이 아니지만...
하나님: 그가 하는 말이 교회에 해를 주는 것인가?
박승호: 해를 주는 것은 아닌데...
하나님: 너는 이 교회를 내게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 분이 하는 일이 교회에 해를 끼치는가 유익을 주는가를 생각했을때 유익을 주는 것이다. 결국 목사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다. 잘못된것이 아니다. 이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로서 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분이 교회를 위한다고 하는데 내가 시비를 걸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단지 불편 할 뿐이다.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자 하나님께 불편하게 생각을 안하겠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목회할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목회를 하는가. 일반적으로 내가 하는 스타일로 목회를 한다. 그것이 다행히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할때 문제가 안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이 할때가 많이 있다.
어떤 분이 와서 선교비를 지원해 달라고 한다. 아는 사람이 추천해서 오면 지원하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이 오면 재고도 안한다. 그것이 무슨 원칙인가. 내 원칙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원칙인가. 내가 종이라면 주인되신 그분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데 과연 물어보는가. 형식적으로 물어는 보지만 실제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총회장 선거를 할때 사전에 물밑 작업을 다한다. 선거날에 대표기도할때 무엇이라고 기도하는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종을 뽑아주시고 성총회를 위해 일할수 있는 일꾼을 세워달라고 기도하지만, 표를 찍을때는 그 기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친분에 따라 찍는다. 아까한 기도는 형식이다. 그렇게 하면 종이 아니라 주인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마음대로 한다. 그런것들을 제일 안지키는 사람은 목사이다.
교회 일꾼을 하나 세울때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가. 물론 기도는 하지만 심을때는 자기 사람을 심는다. 그러면 내가 주인인가 종인가. 교회재정을 사용할때 그리고 사람을 뽑을때 보면 거의 다 자기 라인이다. 하나님의 라인은 없다. 목사이니 기도는 잘한다. 하지만 종은 없고 다 주인으로 바뀌었다. 이런 심각한 실수를 30-40년해도 목사들이 잘 안바뀐다.
전에 나와 원한이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됐다. 그러면 그 사람을 목사로 인정을 하는가 안하는가. 누가 물어보면 과연 그 목사를 추천하는가. 목사로서 회개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목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갔는데도 그것을 인정안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교회에서 사고치고 다른 교회가 간다면 나쁜놈이라고 전화는 안하지만 전화가 왔을때 말을 곱게하는가 아니면 살짝 나쁘게 하는가. 이런 것들이 제일 안된 사람이 목사이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런 것들을 도울수 있는 것이 레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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