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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1885년 이 땅을 찾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백이다. 

그는 복음 전파 외에도 교육과 사회개혁 운동 등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면서 통전적인 선교모델을 제시한 최고의 선교사였다. 특히 언더우드의 한국 사랑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4대 1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에 본보는 '언더우드 전문가'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통해 3회에 걸쳐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편집자 

수천년 동안 질곡의 나날 속에서 방황하던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복음을 허락하시고 희망의 내일을 약속해주셨다. 이 나라의 개신교회는 우리 조상들의 구도(求道)에 의해 시작됐지만 하나님은 미국을 비롯한 호주 캐나다 등지의 교회들이 앞다투어 선교사들을 파송,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게 하셨다. 

 특히 안수를 받은 목사 선교사로 처음 내한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는 선교의 기틀을 잡아주었고 한국 장로교회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실로 놀라운 열정으로 선교의 모든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그 업적은 한국 교회의 역사에 길이 보존될 수 있는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 가장 알맞은 재사를 준비해두셨다가 선교 초기에 보내주셨다. 언더우드가 관여하지 않았던 선교분야는 없었다. 그는 일생을 한국 선교에 바친 우리의 친구였다. 그의 후손들은 4대에 걸쳐 묵묵히 사역을 감당한 한국 교회의 동역자들이다. 

언더우드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계통의 뉴 브룬스윅(New Brunswick) 신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 선교에 뜻을 두고 선교지를 모색하던 중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는 약혼녀에게 한국 선교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파혼을 선언하고 언더우드는 홀로 한국을 찾았다. 그때가 1885년 4월5일 부활절 주일로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는 한국어를 익히면서 밖에 나가 서투른 우리 말로 전도를 시도했다. 그는 한국 도착 이듬해에 처음으로 '노도사'(盧道士)라고 불리던 노춘경(盧春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것이 국내 최초의 세례식이다. 이듬해 봄에 황해도 소래에서 서상륜(徐相崙)이 그의 동생 경조(景祚)와 다른 두 청년들을 데리고 상경,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았다. 

수세자들이 늘어가자 언더우드는 교회 설립을 서둘렀다. 1887년 9월27일 자기집 사랑방에서 14명의 교인들을 데리고 2명의 장로를 선출하고 첫 교회를 출범시켰다. 이 교회는 언더우드의 자택이 있던 정동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후에 새문안으로 장소가 옮겨져 '새문안교회'가 됐다. 새문안교회는 한국장로교회의 '어머니 교회'로서 많은 전도인을 각지에 파송,지교회를 설립하는데 힘썼다.

언더우드는 보다 효율적인 선교를 위해 선교부간의 협력을 추구했다. 그 구체적인 예가 지역을 구분해서 선교하는 것 즉,'예양협정'(禮壤協定·Comity Agreement)이다. 한국에서 선교하던 네 장로교회(미국남·북장로교회 캐나다장로교회 호주장로교회) 선교부가 전국을 넷으로 분할,선교했다. 이어 1905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각각 지역을 나눠 선교하면서 중복선교의 피해를 줄였다. 

그는 아울러 선교에 필요한 문서를 제작,인쇄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1888년 '조선성교서회'(Korean Religious Track Society)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문서선교회에 연락,재정지원을 받아 한국의 모든 선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선교 초기 가장 급선무인 성서번역과 인쇄 및 출판을 위해 언더우드는 '성서번역위원회'를 구성,위원장이 된 뒤 순직할 때까지 그 직책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위원회의 노고로 1900년에 신약,1910년에 구약이 완역되면서 한국 교회는 비로소 완역된 신?구약 성경을 소지하게 됐다. 이 일에는 그 누구보다 언더우드의 공이 컸다. 

복음 선교사로서의 언더우드의 사역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문서선교이다. 처음 내한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5년의 각고 끝에 '한글자전'(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을 1890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간행했다. 또한 '한국어 회화 입문'도 출판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회가 한국 교회에서 사용할 찬송가를 출판하기로 결의하자 언더우드는 1893년 한국인이 작사한 7곡을 넣어 총 116장의 4성부(四聲部) 악보로 된 '찬양가'를 출판했다. 또 기독교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리스도신문'(The Christian News)을 발간했다. 이 신문에는 교회 통신,공업 진흥에 관한 논설,농사법 개량,세계 소식과 일반교양 등은 물론 여러 교회 소식 등을 게재했다. 이 신문 독자의 4분의 1은 신자가 아닌 일반인들로서 전도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조선 정부도 467부를 구입,정부 10부처와 367곳에 배포해 계몽지로 활용케 했다. 신문 1부를 약 50명이 돌아가면서 읽어 실제 독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언더우드는 중국에서 오래 선교활동을 했던 존 네비어스(John Nevius) 선교사를 초청,주한 장로교 선교사들을 모아 2주 동안 선교 전략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것이 자치(自治) 자립(自立) 자전(自傳)으로 요약되는 네비어스 원리(Nevius Principle)다. 이 선교전략이 한국 교회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언더우드는 감리교회의 아펜젤러와 더불어 한국 YMCA 설립에 공헌했다. 150여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고 1903년 10월 정동 유니온 클럽에서 '황성기독교청년회'(YMCA)가 조직됐다. 이곳은 양반 가정의 자제들의 사교장이자 빈한한 가정 소년들이 기술교육을 받는 곳이 됐다. 또한 야구 농구 배구 탁구 등 근대 구기 보급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제 100배의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초기 선교를 '근대 선교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이 기초를 언더우드가 놓은 것이다. 한국 교회는 그가 왜 이 땅에 왔는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단 하나의 이유,복음 선교를 위해 왔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역사신학) 교수

김인수 교수 △장로회신학대학 졸업 △미국 유니언신학교 졸업(Ph.D) △전국신학대학협의회 총무,한국교회사학회 회장 역임 △저서 '한국기독교회의 역사'외 다수 
 

제목

John W. Heron

고종황제의 윤허에 의해 의사와 언어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자 조선을 향한 선교사들의 반응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중 제일 먼저 선교사로 반응한 젊은이는 의사였던 죤 헤론(John W. Heron) 이었다. 그는 조선에 의사 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듣고 "의약품과 의료기기 얼마를 준비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겠습니다. 조선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며 조선을 향한 마음을 불태웠습니다. 테네시 종합의과대학 개교 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죤 헤론은 본교의 교수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앞길을 든든히 보장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으며 명예와 부가 보장된 그 넓은 길을 뒤로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병이 득실거리는 낯선 이국땅을 선택했습니다. 그에게는 열방을 품은 주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조선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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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TEE(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는 1963년 중남미에서 정규 신학공부를 하지 못하는 평신도를 기초부터 가르쳐 사역자, 교회지도자, 평신도 목회자로 양육하기 위해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현재 미국, 영국을 위시하여 중남미, 아프리카, 동서남 아시아, 구 소련 각국, 뉴기니아 등 70여개 나라에서 100가지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빅토빌 예수마음교회에서는 2004년부터 시행되게 된다. TEE 프로그램의 장점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TEE의 교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TEE의 교재들, 특히 기초과정인 “풍요로운 삶”의 경우, 한 과를 예습하는 데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며 많은 분들이 “너무 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재의 내용은 너무 쉬울 정도이지만 학생들 각자가 집에서 공부한 것과 주어진 실천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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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CAL GOSPEL - 6. 믿음으로 살아라!

사무엘 상 15장 22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내가 믿지 못하므로… 홍기영 목사님의 책 [더, 더 가까이]에 아주 의미 있는 말씀 해석을 보게 됩니다. 사사 기드온이 불림을 받고 사역하기 전에 양털 실험을 하는 장면입니다. 사사기 6장 36~37절을 보세요.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참 재미있는 관점인데, 여기에서 기드온이 양털 실험을 한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안 믿어져서 한 것이라는 말씀이죠. 믿어지지 않는데 믿어진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기드온은 믿어지지 않으므로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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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wood, Horace Grant 1859~1916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제물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4살 때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선교사의 삶을 준비하며 살았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우리 민족에게 온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민족을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주신 표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도를 위해 준비했던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셨고 조선으로 그의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선교보다 언어가 더 어렵다" 는 말이 있을 만큼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지만, 언더우드 선교사는 어려운 조선말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 마음을 아시고 언어의 은사를 허락하셔서 선교사님 중에 가장 조선말을 잘 하는 선교사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문법과 한영사전을 편찬하였으며 성경번역 위원으로 참여하여 조선어 성경을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잘 알다시피 그는 근대 한국 교육사업에도 큰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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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Scarth Gale 8163~1937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은 미국에 견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 이라고 부르는데 견미단 일행은 항상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면서 미국의 아름다움과 근대화된 모습을 관람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날, 견미단이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마침 그 기차 안에 고우처 목사와 게일이라는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쳐다보고 웃으며 지나쳤지만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과 고우처 목사님과 게일은 남다른 관심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그 나라에 선교사가 들어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문은 열렸으나 복음은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고우처 목사님은 즉시 가지고 있던 유산 2000달러를 선교부에 드리면서 조선 복음화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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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race N. Allen 1858~1932

우리는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가장 먼저 조선 선교사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오신 선교사는 알렌 선교사 입니다. 그렇다면, 알렌 선교사가 어떻게 우리 민족에게 가장 먼저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당시 알렌 선교사님은 미 북 장로교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을 받은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중국 해안가에 정착하여 의료선교사역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해안가에는 이미 많은 선교사님들이 들어와 정착하여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곳도 정착하기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엘렌 선교사는 8개월 간 상해와 남 경 일대를 헤매고 다니다가 조선의 문이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1884년 6월, 바로 미국 선교부에 편지를 썼습니다. "나의 조선 입국을 허락해 주세요. 그렇지 않다면 단신으로라도 들어가겠습니다." 그해 7월 22일, 선교본부는 해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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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CAL GOSPEL - 5. 성공이라는 우상!

베드로전서 1장 8-9절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던 적이 있습니다. 지난주 같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며 교제하는 창조교회 홍기영 목사님으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더, 더 가까이] 1년간 안식년을 마치고 온 목사님의 신앙고백이 들어있는 책입니다.?하나님과 친밀함을 위해 고뇌한 흔적이 있는 책. 이런 소제목이 있더군요. "주님이 주님인가?"이런 질문으로 시작합니다.?"만약 램프의 요정 지니가 실제로 존재하고 내 앞에 있다면 지니에게 소원을 빌겠는가? 주님께 기도하겠는가?"물론 우리는 주님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런데 지니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 지니는 비비면 나오지만, 주님은 간절히 기도해도 침묵하시는 경험을 하기 때문. 둘, 지니에게는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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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CAL GOSPEL - 1. 복음이 없다면!

사도행전 10장 1-48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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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선교사의 한국사랑 ⑴ 복음 선교]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주소서." 1885년 이 땅을 찾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의 고백이다. 그는 복음 전파 외에도 교육과 사회개혁 운동 등을 전방위적으로 펼치면서 통전적인 선교모델을 제시한 최고의 선교사였다. 특히 언더우드의 한국 사랑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4대 12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이에 본보는 '언더우드 전문가' 김인수(장로회신학대학) 교수를 통해 3회에 걸쳐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앞으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편집자 수천년 동안 질곡의 나날 속에서 방황하던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복음을 허락하시고 희망의 내일을 약속해주셨다. 이 나라의 개신교회는 우리 조상들의 구도(求道)에 의해 시작됐지만 하나님은 미국을 비롯한 호주 캐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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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bert, Homer Bezaleel 1863~1949

1884년 의료사역과 교육사역에 대한 고종황제의 허락 이후, 조선에 정보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선교사들이 조선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고종황제는 영강 가운데 살아가야 할 조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영어선생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그 요청에 따라 3명의 젊은이들이 언어교사로 오게 되는데, 그 중 한 분이 바로 헐버트 선교사입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던 중,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는 아픔을 겪지만 결코 조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당시는 을사보조약이 강제 체결될 무렵이었는데 고종 황제는 조선의 비운과 국권위협의 상황을 세계에 간곡하게 전달할 사절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헐버트는 고종황제로부터 밀사의 요청을 받고 즉시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편지를 들고 워싱턴으로 향했지만 백악관 문 앞에서 거절을 당하고 맙니다. 당시는 미, 일간의 카츠라 태프트 밀약이 맺어져 있었는데 그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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