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에 복음의 큰 빚을 졌다. 19세기 후반부터 언더우드 선교사를 비롯해 수많은 선교사가 한국 땅에 묻히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영적 지형도를 그렸을 것이다. 우리가 일제의 식민치하에서 창씨개명이나 신사참배로 얼마든지 민족정신이 변색될 수 있었음에도 그 뿌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이 순교의 각오로 전한 순수복음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로부터 받은 복음의 빚을 조금씩 갚고 있다. 세계 각처에 파송된 1만7000명이 넘는 우리나라 선교사들이 복음을 심는 수고를 통하여 선교지의 영적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어려움을 겪은 후 한국 교회는 해외 선교의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더 이상 물량적인 선교나 가시적인 선교로는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일로 한국 교회가 해외 선교를 둘러싼 미숙함과 세속성의 더께들을 벗겨낼 수 있는 힘과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은 산고(産苦)의 귀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좋은 구호나 열정만으로는 선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없음을 가르쳐준 것이다. 역사는 좋은 목적보다는 지혜로운 실천 방법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18세기 후반 한·중·일은 각각 갑오개혁, 무술정변, 메이지유신이라는 개혁을 일으켰다. 모두가 나라를 열고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나라를 살리겠다는 좋은 목적을 가졌다. 그러나 일본은 비교적 성공한 반면에 한국과 중국은 실패하였다. 역사가들은 그 이유를 목적이 아니라 방법에서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이것은 개혁의 성패가 좋은 구호보다는 치밀한 방법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영적인 원모심려(遠謀深慮)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열정은 튼실한 목회철학으로 보완돼야 하고, 구호는 치밀한 선교전략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에서 질적 도약을 이루는 길은 무엇일까? 한 사람의 목회철학에 기초한 제자훈련의 국제화와 새벽기도로 대변되는 한국 교회 영성의 세계화이다.
특별히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문화와 관습 속에서도 충분히 실행될 수 있는 제자훈련의 국제화이다. 한 사람에게 목숨을 거는 제자훈련은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의 질적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검증된 목회철학이다. 이미 사랑의교회에서 25년의 제자훈련을 통해 3000명의 순장들이 작은 제자로 파송을 받고 다락방에서 섬기고 있다. 지난 22년 동안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통해서 훈련받은 목회자들이 1만6000명이 넘는다. 이 중 일본 중국 대만 등의 해외 목회자들이 2800명에 이른다. 제자훈련이 어렵다는 농촌이나 지방도시, 심지어 제자훈련의 터가 될 수 없어 보이는 교포 교회에서도 가능하다면 전 세계 어느 교회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제자훈련의 목회철학을 국제화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이번 4월 말에 남미 브라질에서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여는 것은 제자훈련의 국제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자훈련의 국제화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 터가 닦여 있다. 세계 178개국에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2세대, 3세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고, 언어의 장벽을 돌파한 이들은 제자훈련을 국제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 제자훈련의 국제화를 통해서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가 세계의 곳곳에서 세워짐으로 세계의 영적 지형도가 바뀌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