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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 8시면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린다. "목사님, 훈련생 다 모였습니다." 매번 빈틈도 오차도 없다. 제자훈련실에 들어서면 이번 기수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제자훈련생으로 선정된 열여덟 명의 형제들이 간단한 식사를 앞에 놓고 기다리고 있다. 같이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밤 열한시 가까이 되도록 말씀을 앞에 놓고 씨름하는 제자훈련이 시작된다.


아내의 마지막 카드, 제자훈련

지난 주 과제물 중 하나는 '아내에게 편지쓰기' 였다. 제자훈련에 임하는 각오, 그래서 아내의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을 편지지에 쓴 후, 봉하지 말고 가져오도록 하였다. 모두가 닥터 얄롬(Irvin D Yalom)이 언급한 소그룹 치료의 요소인 '한 배를 탔다'(Universality)는 인식이 이미 자리잡고 있기에 편지를 공개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때문에 아내에게 쓴 편지를 돌아가면서 읽도록 했다. 그 중에 한 형제를 소개하고 싶다.

이 형제는 캠퍼스 커플이다.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남편은 무교였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종교가 무슨 걸림돌이 되랴'는 생각에 결혼에 골인했고, 가정을 이룬 후 아내와의 약속대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성가대에도 앉았다. 하지만 평소 사학(史學)에 관심이 많던 그는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저) 전 15권 전체를 무려 열 번 이상 탐독하는 등, 반기독교적인 서적들을 접하면서 성경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모태신앙이었기는 했어도 남편의 해박한 논리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혼생활 15년 시간이 흐를수록 보이지 않는 영적 간격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가기 시작했고, 언쟁 또한 잦아지면서 주일날이면 아내는 자녀들과 함께 교회로, 남편은 배낭 속에 김밥 몇 줄을 넣고선 북한산 골짜기를 온종일 방황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때부터 부부 사이에 흐르기 시작한 냉기류는 집안 분위기를 적막강산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이혼' 이라는 심각한 단어를 아내와 남편 모두의 뇌리에 꽃아 버렸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남성 '제자훈련' 광고가 주보에 실렸다. 순간 아내는 눈이 뻔쩍 뜨였다. '그렇다. 마지막으로 저 훈련을 한번 받도록 시도해보자. 그것도 싫다면 이혼할 수밖에.' 아내는 남편과 의논도 하지 않은 채 훈련지원서를 임의로 작성하여 일단 제출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남편은 노발대발하며 훈련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여 지원은 본의가 전혀 아니었으니 훈련생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 결국 그가 제외된 채 입학식과 함께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그렇다면 당신과 이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최후의 카드를 꺼냈다. 아내의 비장한 표정을 읽은 남편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훈련에 대해 재고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저토록 원하는데, 소원 한번 못 들어주랴. 죽는 셈치고 부딪혀보자' 하고선 어렵게 목양실의 문을 두드려 그간의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며 늦었지만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 정중한 요청을 해왔다. '한 가정의 존폐가 달린 문제구나' 생각하고선 훈련 중간에 참여토록 허락했다. 이 형제도 그날 밤 역시 아내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써왔다.


남편을 영적 제사장으로 세우라

그가 쓴 편지의 내용을 보며 벌써 어떤 서광이 비취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편 16장 8~11절을 중심으로 제출한 그의 QT는 벌써 회복의 단계를 뛰어넘어 성숙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결단과 적용' 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결단과 적용 |
오늘 시구에서 다윗이 누리는 여러 기쁨처럼 그러한 부분들이 나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도록 체험하는 자가 되자. 그러한 기쁨이 없을 때에는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자. 또한 아이들의 신앙생활에도 도움을 주어야겠다. 공적 예배에 항상 지각하고, 교우들과의 친교를 믿음생활보다 우선시하는 아이들의 신앙생활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자. 마지막으로 항상 비판적으로만 일관했던 부정적인 나의 신앙생활도 앞에서 쳐다보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예뻐 보이지 않을 듯하다. 가끔은 무조건적인 믿음도 기뻐하실 듯하다. 제 앞에서 저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날 야기되고 있는 가정 위기는 대부분의 경우, 남성이 그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왜 남성이 '문제아(?)' 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각종 유혹으로 가득한 영적 최전방이다. 이곳에서 뭇 남성들은 사탄의 이빨에 입은 상처(벧전 5:8)를, 밤에 가만히 와서 뿌린 가라지(마 13:25) 불씨를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와 가정을 이끌어가고 있다. 어찌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교회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별 문제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심각한 갈등구조 속에서 가족구성원들이 모래알처럼 제각각인 경우를 수월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가정을 치료하는 유일한 길은 남편을 영적 제사장으로, 축복의 통로로 세우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남성 제자훈련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이 사역에 올인 하다시피 했기에 이젠 어느 정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예와 비슷한 경우들을 제자훈련을 통해 치료되는 것을 수 없이 경험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이 가정을 회복시키는 이유

제자훈련이 왜 가정회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첫째, 무엇보다 제자훈련에는 말씀이 있다. 훈련을 통해 말씀을 정독한다. 그리고 귀납법적으로 말씀을 나눈다. 매주 자신의 생활에 꼭 적용해야 하는 QT를 작성해야 하며, 이를 실천했는지를 체크한다. 말씀을 외운다. 다음 주에 배워야 할 말씀을 혼자서 예습을 꼭 해야 한다.

그야말로 한 주 동안 쉴 새 없이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좌우에 날 선 검'보다도 더 예리한 말씀(히 4:12),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딤후 3:16) 말씀 앞에서 꼬꾸라지는 영적 체험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비슷한 처지의 형제들을 보며 가정에 적용한다. 물론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신들도 모르게 '어어' 하면서 놀란다. 어쩌면 그렇게 서로가 비슷한 처지에 놓였는지,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때부터 우선 마음에 평정을 찾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격려자가 되기 시작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harry's window)한다. 이 타인을 위한 이해도는 훈련 받는 형제들 간의 담을 뛰어넘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에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아내를 이해하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엡 4:32; 벧전 3:8)까지 생기면서 가정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소그룹이라는 환경 속에서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들을 비추는 과정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이다.


끊임없는 중보의 기도가 있다

훈련에 임하는 형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거의 90%가 먼저 훈련을 받은 아내들을 둔 경우이거나 함께 훈련을 받는 경우이다. 남성 제자훈련의 리더는 훈련에 임하는 남성들에게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가정에서 아내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훈련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훈련기간 중 부부가 자주 함께 모인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 격려하는 - 장점을 칭찬하는 - 시간을 갖는다. 가정을 돌아가면서 오픈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훈련 받는 남편에게 편지를 쓰도록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남편을 위해서 끊임없이 중보 기도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남편보다 더 긴장된 자세로 2년의 훈련 기간을 보내도록 만든다. 놀라운 것은 이 과정을 통해서 아내도 함께 변하더라는 것이다.

가정의 문제가 꼭 남편만의 문제이겠는가. 아내가 조금만 더 지혜롭게 처신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문제들도 얼마든지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함께 치료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 회복의 꽃이 피어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오늘도 남성 제자훈련을 통하여 가정이 새롭게 회복되며, 나아가 영적 군사들로 재무장된 이들이 중심축이 되는 역동적인 교회를 꿈꾸며 저녁 8시에 변함없이 울릴 책상 위의 인터폰을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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