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살아야 가정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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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패닉계로 첫 번째, 여성으로 세 번째 소냐 소토마요르(Sotomayor·54)가
미국 법조계의 최고의 자리인 대법관으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녀는 뉴욕 브롱스 빈민가 출신의 푸에르토리코 이민가정의 딸입니다.
빈민가의 병약한 소녀를 대법관으로 키운 것은 홀어머니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연장 공장에 다니는 동안
어머니는 병원 전화 교환수로 일하면서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합니다.
소토마요르가 9세 되던 해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나
어머니는 무너지지 않았답니다.
"이곳은 미국이다. 교육만 잘 받으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낮밤 두 개의 직장에서 일하며 자녀를 양육했다고 합니다.
생업에 치이면서도 소아 당뇨를 앓고 있던 딸을 위해 손수 음식을 마련했고,
자녀 교육을 위해 동네에서 유일하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주변은 온통 범죄, 약물중독, 폭력으로 얼룩진 빈민가였지만
자녀들에게 공부에 전념하게 했고,
유명한 사립학교 카디널 스펠먼 고등학교로 보냈답니다.
소토마요르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프린스턴대에 입학하여 최우등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로스쿨 졸업 후 뉴욕지방 검찰청에서 일하며
자신이 자랐던 브롱스 지역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어머니 힘이 빈민가 딸을
미국의 대법관으로 만들어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하였습니다.
그녀를 대법관으로 지명한 오바마 대통령의 어머니도
현대판 맹모삼천지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는 어머니에 대하여 "흑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둔
어린 이혼녀라는 주변의 시선,
월세를 내기도 벅찬 생활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부재가 아들의 마음속에 분노를 심어주지 않도록
항상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회상합니다.
소에토로의 교육열은 이미 알려진 대로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할 당시 학교에 입학하기 전
아들을 새벽 4시에 깨워 영어공부를 시킬 정도로 뜨거웠다고 합니다.
엄격한 자유주의자로 진실의 힘을 믿었던 그녀는 우선 자녀들에게 정직할 것과,
직접적인 대화를 할 것, 그리고 넓은 세계관과 도전정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성경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10, 28,29,30)"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고난이 다가와도 어머니가 중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일어서면 가족은 함께 일어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