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교회에 부임하여 4년을 지내오면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목사 시절에 제자훈련 목회가 주는 사역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또한 제자훈련이 사역의 본질이요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이렇게 바쁜 담임목회를 하면서 제자훈련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본질적인 사역에 집중하고 싶다고는 하지만 목사가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기도를 비롯한 수많은 예배와 설교 준비, 심방, 상담이 넘칠 뿐더러, 담임목사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행정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미 주어진 목회패턴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기본도 못하면서 여기에서 어떻게 제자훈련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목회철학을 가져야 한다
제자훈련생들과 훈련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3~4시간이지만, 훈련을 준비하고 과제물을 점검하고, 그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만나다 보면, 제자훈련 한 반의 8~12명을 위해 하루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또 제자훈련을 하려면 훈련 전 양육반이 필요하고, 그 전에 새가족반도 필요하고, 제자훈련이 마친 후 사역훈련까지 하려면 훈련시간은 점점 늘어난다. 거기다가 교회의 형편에 따라 제자훈련반도 2~3개반 이상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벌어진다.
부교역자에게 사역을 전수하기 전까지는 담임목사 혼자 이 일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제자훈련 목회가 목회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니라 목회의 본질이라는 확실한 목회철학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교회론에 근거하여 제자훈련은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역이라는 성경적인 확신이 없었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분명한 목회철학을 바탕으로 제자훈련을 제대로 하게 되면, 교회는 반드시 모든 영역에서 변화하게 된다. 설교는 물론이요 예배, 전도, 교육, 교회 내 모든 직분에 대한 인식, 사소한 교회 전통이나 제직회나 공동의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심지어 교회 건물에 대한 개념까지 달라진다.교회론이 달라지고,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훈련을 통한 사람의 성숙과 변화를 최우선 가치에 두면 다른 변화는 추구하지 않아도 변하게 된다. 당연히 변화에 따른 고통들도 있고, 감당해야 할 산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말씀대로 제자훈련 목회를 통해 변화될 한 영혼, 그리고 훈련 받은 한 사람을 통해 변화될 가정과 교회와 온 세상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제자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하기에 앞서서 담임목회자가 분명한 목회철학을 갖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훈련 받는 사람들의 열심, 활성화된 소그룹, 전도하는 성도, 교회의 양적인 부흥 등 제자훈련에 성공한 교회의 열매만 보고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이것이 본질이요, 목회철학의 원리라고 생각되어야 그 어떤 난관이 있어도 제자훈련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자훈련 목회의 성경적 근거를 확인하는 것이 제자훈련의 구체적 방법을 제시 받는 것보다 몇 갑절이나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도들과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제자훈련이 목회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니라 목회 자체와 교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면, 제자훈련 목회철학의 비전은 반드시 성도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한다면, 당장에 목회자의 시간 씀씀이가 다르다. 목회자가 1년 가까이 10여 명의 사람들과 매주 서너 시간을 보내는 것을 훈련받지 않는 성도가 본다면 그들은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또한 제자훈련에 집중하게 되면 제한된 시간과 제한된 체력으로 인해 자연히 심방이나 다른 목회 프로그램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다. 목회 전반에 있어서 집중하는 일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회 계획에 있어서 많은 변화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목회자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할지라도 제자훈련 목회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모르는 성도들 입장에서는 불만의 소리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의 대상인 성도들에게 반드시 제자훈련 목회의 중요성, 제자훈련 목회의 비전을 나누어야만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훈련에 동참하지 않아도 담임목사의 목회비전에 공감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평신도를 동역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훈련 받은 평신도가 작은 목사가 되어 목회자가 하는 그 본질적인 목양사역을 함께하고, 그 기쁨 또한 함께 나누는 것이다. 제자훈련을 하기에 앞서서 이 비전을 성도들로 하여금 갖도록 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제시하는 꿈을 공유해야 하고, 제시 받은 꿈을 보고 성도들도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과정은 힘들지라도 같은 공동체, 같은 식구들이 그 꿈을 귀히 여기고, 동의하며 동조하고 싶어해야 한다. 함께 마음을 먹어도 훈련을 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기도 하는데, 애초에 이 꿈을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훈련을 시작한다면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비전 공유, 자연스럽게 신뢰 쌓아가기
비전을 공유하는 방법에는 어떤 철칙이란 없지만,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담임목사가 공예배시간에 "이제부터 우리 교회는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가지고 제자훈련을 실시할 것입니다. 먼저 앞장 선 장로님들부터 훈련받아야 합니다"라는 식으로 선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진심으로 성도들을 목회 파트너로,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그런 식으로 갑자기 선포하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먼저 목회자 자신이 제자훈련 목회의 추구하는 바인 '한 사람의 중요성' 에 대해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그래서 굳이 담임목사가 '제자훈련 목회'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성도들이 목회자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있어야한다.
"우리 목사님이 나를 통해 변화될 세상을 꿈꾸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 귀히 여기시는구나"라는 신뢰감이 목회자와 성도 간에 형성되어야 한다. 이런 확신은 주일 강단이나 각종 기도 모임, 심방 등 성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드러날 수 있다. 강단 메시지를 통해서 '훈련의 필요성', '소수 정예와 소그룹의 중요성', '평신도 한 사람의 가치', '연역적 가르침이 아닌 귀납적 연구와 나눔의 중요성'들을 자연스럽게 알리고, 교회의 특권,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전할 필요가 있다.
강단을 통해서 제자훈련의 목회철학을 전함과 동시에, 교회의 핵심 그룹에게 그 가치와 비전을 상세히 나눠야 한다. 나도 부임 전부터 장로님들께 제자훈련 목회의 비전을 말씀드렸고, 그 결과로 장로님들이 먼저 훈련받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런 약속을 받았다 해서 바로 제자훈련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강단을 통해 전 성도에게 말씀의 중요성, 인격적 성장 성숙의 중요성, 한 사람의 중요성 등을 설교했고, 장로님들과는 제자훈련 목회철학의 핵심인 '교회론'에 대해서 따로 교재를 만들어 함께 공부했다. 그럼으로써 제자훈련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그리고 새가족 성경공부부터 시작하여 제자양육, 제자훈련, 사역훈련 등 모든 훈련에 있어서 장로님들이 솔선하여 제 1기로 받으시기를 부탁했다.
"장로님들이 첫 훈련을 어떻게 받으시느냐에 따라 우리 교회 부흥의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이 훈련장에서의 장로님들 모습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훈련 이후의 삶이 중요합니다. 훈련 이후에 예배드리는 모습, 봉사하시는 모습, 언어생활, 가정생활, 전도생활 모든 것이 훈련의 열매로 성도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절대 훈련수료증 받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 주십시오."
장로들이시기에 조금 강하게 거룩한 부담을 드렸다. 물론 모든 분들에게 만족할 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느낄 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장로님들의 변화된 모습과 간증은 담임목사의 설교 이상의 큰 영향이있다.
또 중요한 핵심 그룹은 교역자였다. 교역자들과는 토요일 새벽마다 두 시간씩 모여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 제자훈련 목회철학에 대해서 세미나를 하고, 서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역자들도 제자양육, 제자훈련을 담임목사로부터 직접 경험하면서 제자훈련 목회의 중요성을 습득했다. 교역자들은 직접 제자훈련의 몫을 나눌 자들이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비전 공유의 가장 확실한 장은 제자훈련 현장이다. 제자훈련 하는 그 시간에 제자훈련의 큰 원리와 원칙들이 계속 나누는 것보다 더 확실한 비전공유의 자리가 없을 것이다.
비전 공유, 조급증을 버리고 계속 나누라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코 단시간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제자훈련 목회의 비전이 사전 교육으로 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직접 제자훈련, 사역훈련을 거쳐 소그룹 지도자가 되어 자신이 다른 영혼을 섬기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제자훈련 목회의 중요성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목회자인 나 역시 제자훈련에 대해서 이론적 강의를 들을 때 가슴은 뛰었지만 평생을 바쳐 이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아니었다. 제자훈련을 한 지 4년 되었을 때, 훈련된 평신도의 섬기는 모습,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변화되는 다른 성도의 모습을 보면서 "제자훈련이 정말 강력한 것이구나. 평생 목회하는 동안 해야 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평신도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이 직접 훈련을 받아 변화를 경험하고 평신도 지도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리에 나가기 전까지는 담임목회자의 제자훈련 목회비전을 온전히 공유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비전을 나눌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조급증을 버리는 것이다. 몇 번의 설교, 몇 번의 만남으로 사람을 설득시키고, 교회 체질을 바꾸는 일은 해서도 안 되고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각도에서 목회비전을 나누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담은 '교회 사명선언문'을 만들어 주보에 게재하고, 성도들이 수시로 그것을 보게 할 필요가 있다. 기도회, 교사 훈련, 각종 헌신예배, 제직 세미나, 제자훈련 개강예배 등 중요한 때마다 제자훈련 목회철학에 근거한 말씀을 전했다. 비전은 훈련 시작 전부터뿐만 아니라,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나서도 3~4년 계속 나눠야 한다. 왜냐하면 훈련을 시작해도 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숫자는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제자훈련이 교회의 문화가 되기 전까지 비전 나눔은 계속되어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비전을 이야기하다 보면 부딪치는 문제들이 많다. 먼저 훈련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수 있다. 또 훈련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괜히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자연히 교회의 평신도 리더십이 기존 직분 중심에서 훈련받은 자들 중심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많은 말들이 있을 수 있지만, 목회자 자신이 제대로 훈련을 시키고 훈련생들이 제대로 변화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제대로 제자훈련을 받으면 그들은 권위를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더 잘 섬기는 자들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을 봐도 훈련받은 순장들로 리더를 세우고 구역을 다락방으로 재편하면서 훈련받지 못한 기존의 구역장들이 소외될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하지만 훈련된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3년 이상을 지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은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훈련받은 분들을 귀히 여기는 분위기가 됐고, 자신들도 훈련에 참여해야 한다는 거룩한 부담감과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갖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또 제자훈련을 하다 보면 기존의 목회 프로그램이나 사역들 중에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일들이 생긴다. 당연히 그 일들에 집중하던 성도들은 자신이 홀대받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들도 너무 급격히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바꾸기보다 훈련을 해나가면서 교회가 무엇이고, 교회 사역에서 본질적인 일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중에 서서히 변화를 가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도들의 관심이 비본질적이거나 덜 중요한 사역에서 옮겨지게 되었다.
비전 공유의 핵심요소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이야기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모으려고 할 때, 꼭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목회자와 성도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 교회 성도들은 '그것이 성경적인가'를 굉장히 중시한다. 실제로 성경을 깊이 모르고, 성경 해석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경전에 대한 경외감' 이라고 할까, 성경을 귀히 여기고,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일이라고 하면 믿어주는 것을 보았다.
제자훈련 목회철학도 하나의 조류가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한 본질적 사역임을 성도들이 스스로 느끼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적으로 옳다는 판단이 서면 성도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전통적 신앙관습과 다르더라도 스스로를 고쳐나간다. 하지만 목회자의 기호로 선택한 목회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잘 따라오지 못한다.
둘째, 지도자에 대한 신뢰감이다. 아무리 제자훈련 목회가 성경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가르쳐주더라도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의심하게 된다. 목회자 스스로 모든 권위를 내려놓고, 말씀에 늘 굴복하는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항상 정직하고 신실하고 늘 변화를 추구하며, 주님을 닮으려고 애쓰고,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며, 주님께 전적으로 위탁된 종임을 성도들이 확신한다면, 그가 하는 일, 제시하는 비전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제자훈련 목회를 말하려는 지도자는 스스로가 더 온전한 제자가 되려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셋째, 제자훈련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이 일이 교회 부흥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며, 하나님이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임을 성도들 스스로 확신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주님께 위탁된 자로서, 복음을 증거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 일을 위해서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받는 일은 복된 일임을 성도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목회철학이 지도자의 삶 전반과 사역 전반에 면면이 배어 있어야 한다. 평신도가 사역자라는 확고한 의식으로 항상 평신도를 귀히 여기기, 목사가 권위를 내려놓고 몸에 배인 섬김의 도를 보여주기, 자연스러운 대화 중에도 권위적으로 지시하기보다 늘 질문하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말 듣기를 즐겨하기, 사람의 변화가 한순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림을 알고 기다리고 참아주기, 훈련된 평신도 지도자를 통해 성도가 변화받을 때 자신이 아닌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주고 그들을 격려해 주기. 이런 것에 늘 마음이 열려 있고 준비되어 있다면 제자훈련 목회철학은 성도들과 충분히 공유될 것이며, 그 비전과 꿈을 먹고 함께 달려갈 준비가 충분히 갖춰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