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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아픔을 덮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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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아픔을 덮어라!
창 9:18-27
이 세상에 자녀 없이 사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가 없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부모의 얼굴을 알든 모르든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생물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부모의 도움을 받아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세워집니다. 비록 부모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시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것과 양육해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물질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람이 주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큰 사랑입니다. 아마 받을 수 있는 사랑은 다 받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부모님입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종합선물세트와 같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도, 보살핌도, 기도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받았습니다.
몇 해 전에 어떤 회사에서 이렇게 광고한 적이 있습니다.
"스물아홉…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일곱…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셋…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여덟…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셋…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봤습니다.
예순하나…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곧 이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스물하나…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 시집온 지 오 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특정한 사람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름이 아버지, 어머니입니다. 인생이 힘들 때마다 아들은 "아버지는 이럴 때 어떻게 견디어 내었을까?" 딸은 "어머니는 이럴 때 어떻게 고비를 이겨내었을까?" 그리고 인생이 힘들 때마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만 머무는 고마움을 넘어서서 실제 삶 속에서 부모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천륜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자식을 보호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인륜입니다.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훈련하고 연습해야 가능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네 자녀를 사랑하는 명령은 없어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이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자녀들의 응답입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사랑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응답할 때 더 깊은 사랑이 오고갑니다. 부모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을 효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우리에게 사랑만 준 것이 아니라 아픔도 주었고, 상처도 주었습니다. 원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처럼 어쩌면 나에게 아픔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부모일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그분이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는 부모의 약점이나 성격에서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는데, 우리는 부모님을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약점과 상처까지 받아들이는 넉넉한 효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구약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홍수 뒤에 노아가 가족들과 함께 포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포도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노아는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홍수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노아에게 무슨 세상 친구가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먹고 마시는 것 이외에 무슨 낙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노아는 포도주를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너무 많이 마셔버렸습니다. 노아는 그만 인사불성이 될 정도 술에 취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 장막 안에서 하체를 드러내놓은 채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이때 둘째 아들 함이 방안에 들어와서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보았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얼른 이불로 아버지의 하체를 가려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흔들어 깨워서라도 옷을 입혀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함은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자마자 장막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자기들의 형제 셈과 야벳을 찾아가서 아버지의 허물을 들쳐 내며 흉을 보았습니다. 소문을 내었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흉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있어, 아버지가 요즘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
아마도 함은 형인 셈과 동생인 야벳이 자기의 생각에 동조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달랐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그들은 얼른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다가갈 때에 정면을 향하여 가지 않고 얼굴을 가리고 뒷걸음질 하여 다가갔습니다. 옷으로 아버지의 하체를 가리고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깨서 자기의 세 아들이 자기에게 한 행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들들이 보여준 효성에 따라서 그들에게 복을 주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에게는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킨, 아버지를 흉본, 함은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대를 이어서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노아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에 발생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자녀인 우리가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의 부모님도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녀 앞에서 완벽한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노아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까? 창 6:9의 말씀을 보십시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성경에서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라 칭찬을 받은 사람은 노아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노아가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선택했습니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때에 노아만은 예외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만 구원받았습니다. 이토록 훌륭했던 노아였지만 그에게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잘못이 있었습니다. 허물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아보다 훌륭하지 못한 우리의 부모님은 훨씬 많은 실수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역시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입니다. 약점과 허물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일방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부모님을 완벽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얼마든지 허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의 눈앞에서 무엇인가 잘못을 범할 때라도 "아니, 그럴 수가?"라는 생각을 가지기에 앞서서, "그래, 우리의 부모님도 연약하시니까 얼마든지 실수하실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가져야 마음으로 부모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녀가 부모님의 실수와 약점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고스란히 상처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사람들 마음 속에 가장 오래 남는 상처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이고,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입니다. 문제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멋지게 쓰임 받은 노아도 실수했고,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부모님은 노아보다도 더 많은, 더 큰 실수를 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부모님이 완전할 줄 생각합니다. 사랑만 주고 상처나 아픔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흉터로 남깁니다. 그러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훈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부모로부터 상처 때문입니다. 특히 아버지와 관계에서 자녀들은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하면서 부모 된 도리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아버지를 피합니다. 자꾸만 피하다보니 그것이 습관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로부터 상처와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관계에 막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관계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처음 맺는 관계인 부모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관계가 왜곡되기 쉽습니다. 한 사람의 관계는 만인의 관계입니다.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부모님을 기꺼이 마음으로 받아들려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에게 사랑도 주시지만 때로는 미숙하여 우리에게 상처도 주십니다. 저 역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상처 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토록 훌륭했던 노아에게도 실수는 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부모님에겐들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우리의 부모님이 어떠한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우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효도의 출발점이고, 자녀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둘째로, 부모님에게 허물이 보일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덮어드려야 합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그러나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흉을 보았습니다. 그는 형제들을 찾아가서 소문을 내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습니까? 여러분, 모든 인류가 홍수로 다 심판 당할 때 함이 누구 때문에 살았습니까? 전 인류가 물로써 심판 당할 때 아버지 때문에 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일백 이십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다 살아남았습니다. 훌륭한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살아남았다면, 비록 아버지에게 허물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덮어주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똑 같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샘과 야벳은 그것을 덮어드렸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사건을 보고 함은 아버지의 약점을 드러내고 흉보고 다녔습니다. 함은 그런 면에서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친구도 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혼자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내가 이제부터라도 내 아버지의 말상대가 되어 드려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어야 자식 된 도리일 것입니다. 인생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흉을 많이 보고 다니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흉보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 갑니다. 반대로 부모님을 자랑하면 자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부모를 자랑해야 우리의 인생이 건강합니다. 좋은 점을 닮을 수 있습니다.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주정뱅이가 되고 한 아들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무책임한 모습과 보기 싫은 모습을 비난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된 아들은 나도 잘못하면 아버지처럼 될 수밖에 없겠구나! 하면서 자기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비록 주정뱅이지만 아버지의 좋은 모습을 닮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셈과 야벳의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함의 모습으로 살았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셈과 야벳처럼 살지 못했습니다. 함처럼 살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모든 잘못을 돌이키고 셈과 야벳처럼 부모님의 허물을 덮어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릴 때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르셨습니까? 부모님은 우리를 덮어주시면서 길러주셨습니다. 옷으로 우리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잠을 잘 때 이불을 발로 차고 잠을 자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사랑으로 이불을 덮어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부모님의 속을 얼마나 많이 썩여드렸습니까?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장성했으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덮어드릴 차례입니다. 실수도 덮어드리고, 잘못도 덮어드리고, 허물도 덮어드려야 합니다. 따뜻한 이불도 덮어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효자 집안에서 언제나 효자가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 앞에서 진정으로 부모님을 존경하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본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우리 또한 자녀들로부터 효도를 받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한 그대로 내가 복을 받습니다. 함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25절입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함은 자기의 잘못 때문에 자기 아들 가나안까지 저주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주가 대물림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허물을 잘 덮어드렸던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6-27절입니다.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잘 공경한 결과 번영과 창대의 축복을 대대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함 쪽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셈과 야벳의 쪽을 택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유일하게 조건부 복을 약속하신 계명이 제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증언한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가끔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충성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께 돌아가야 할 효도의 몫을 저버리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했으니 하나님이 아실거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르반"이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부모님에게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모습을 신랄하게 꾸짖습니다. "너희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우리가 부모님에게 마땅히 해야 할 효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잃어버린 계명 고르반이 되어 주님 앞에 책망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충성해야 되지만 부모님에게도 효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갈릴리 가족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은 완벽한 분이 아니라 허물과 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그를 존경하십시다. 부모님의 허물이 보일 때 그것을 덮어드립시다. 그리하여 성경이 약속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