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종교개혁과 그 사상적 특징이 한국의 개신교회안에서 어떻게 이해, 수용될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교회와 그 현실을 보는 이러한 시각과 견해차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서 한국교회에 관한 시각은 주로 필자의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
필자가 보기에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안에 서로 상반된 두개의 경향이 혼재해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두 경향 때문에 칼빈의 종교개혁과 그 사상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와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점을 차례로 살펴본다.
첫째로, 하나님의 임재나 축복을 세상의 현실 안에서 추구하고, 그 안에서 확인하려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칼빈의 시각에서 본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고 이루어 가는 세상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다.
지젤이 지적한 바, 하나님은 언제나 {주어진 실제}, 즉 그의 작품인 현실의 어떤 것들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며,
또한 그것을 통해서 영광받기를 원하신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특히 칼빈정신을 유산으로 받고 있는 장로교회는
이제까지 민족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왔다.
가령, 한국 근대사와 공유하는 기독교사 백년 동안, 목회와 교육과 의료사업등을 통해,
사회에 신문명을 전파함과 동시에 거기에 맞는 인재들을 많이 배출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을 앞당겨왔다.
지난 30년간의 후진국형 군부독재 동안에는 국민의 인권과, 특히 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생존권과
기본권의 신장을 위해서 투쟁함으로써 사회의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기여했으며,
또한 조국통일의 과제를 가지고 현재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특히 70년대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룬 것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경향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현실적인 가치, 외형적인 성장과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
이 민족을 향한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적인 성공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외형적인 큰 성장을 이룩했던 것이다.
칼빈정신의 관점에서, 그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로부터 더 나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현재의 가시적 성장이나 부와 동일시하고,
그 속에 가두어 놓을 때,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써,
하나님의 것과 지상의 것을 {혼동}하는 {우상숭배}의 오류이다.
만일 한국교회가 이루어 놓은 업적에 안주해서 그것을 자랑하고,
언제나 그것만 되풀이 하면서 자기 만족 속에 빠져있다면,
칼빈의 종교개혁을 무엇보다도 오늘의 싯점에서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은 이세상의 것으로 표현되지만, 그러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과 현실의 것들을 언제나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함으로써,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성서에 드러난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복종시키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여기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칼빈의 종교개혁은 바로그런 교회를 세우고, 그런 신자들을 양육하기 위한 종교개혁이었다.
두번째 경향은, 이세상이나 현실을 개의치 않는 경향이다.
우리가 보았듯이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나, 그의 위엄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의 것으로써 하나님을 표현하려는 것은 우상숭배로 귀착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것과 거리를 취하고,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원한 하나님과 그 나라를 구한다. 이런 점은 이제까지 특히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하는 권력에
맞서왔던 칼빈주의 교회들의 그 빛나는 전통들, 가령 {한 왕, 한 국가, 한 종교}를 표방했던
루이 14세가 상징적인 그 절대군주체제와 맞서 싸웠던 프랑스 개신교도들이나,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에 항거했던 칼 바르트와 독일 고백교회의 투쟁들에서 매우 잘 드러난다.
그 전통은 6-70년대 이후 권위주의적 군부독재체제에 맞서 싸웠던 일부 한국교회들,
특히 장로교회들의 투쟁 속에서 이어져 왔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교회들은 언제나 세상을 넘어서는 하나님에게 영광돌려야 한다는 점을 많이 오해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상 한국교회는 이제까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것은 세상일이고, 우리는 하늘의 것만 추구하고,
하나님만 섬긴다는 식의 현실도피적인 교회와 교인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군부독재하에서는 교회가 현실의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일은 위험하고
희생을 수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경향은 더욱 굳어졌던 것 같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이 많이 바뀐 현재에도 역시 같은 풍조가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김필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