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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성경대학

Heart of Christ Bible College & Christian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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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과.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백성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교회론'이다.  이 단원에서 우리는 교회는 무엇이고, 교회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크로스웨이 전체 교제 가운데 오늘 살펴보는 이 단원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을 한다.


 

에베소서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모든 교회에 대해서 선물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있다.  에베소서 4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에베소서 1, 2,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성취하시고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하나님께서 1, 2, 3장에서 이미 이러한 일들을 행해 놓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주 안에서 너는 그러한 자녀답게 살아라는 말로 4장 1절에서 권면하고 있다.


 

그림 25는 여기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모든 일을 성취하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모습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육체로 하늘에 올라 가셨지만 영으로 모든 성도와 함께 하시고 통제하신다는 사실을 빨간 화살표가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셨지만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은사를 남겨 놓으셨다고 했다.  이 은사라고 하는 것은 소위 수정이라든지, 에머랄드와 같은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뜻을 가르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준비가 된 주의 종들을 말한다.


 

그림을 보면, 목에 신부 칼라를 한 사람이 있고 뒤에 선물 꾸러미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가르친다는 것을 상징해 놓았다.


 

그런데 이 은사, 내지 선물은 어떤 결정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주는 자의 뜻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우리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아래의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 그 답을 던져주고 있다.  이 자세는 겸손과 희생, 그리고 순종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를 섬기는 종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섬기듯이 섬겨야 한다.  단순히 인간들에게서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고 교인들을 섬긴다고 했을 때 다른 교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대접만 받으면서 게으르게 해서는 안 된다.  교인들로 하여금 무장을 갖추게 하고 남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쳐야 한다.


 

간혹 우리는 대화 속에서 그 일은 당신의 일일뿐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자세이다.  당신의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라 당신과 내가 힘을 합해서 주님의 일을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함께 감당함으로 해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교회라는 말을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한다.  이 말은 희랍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단어이다.  ακκλησια는 'ακκ'라고 하는 '∼에부부터 밖으로'라는 뜻이고, 'λησια'는 '부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본래 종교적인 연관성을 가진 단어가 아니다.  이 말은 본래 시의회와 관계된 단어였다.  그러니까 시민들이 선출한 대의원들이 시의회에 모여서 그림 25A의 가운데와 같이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의논하게 된다.  가령,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관리를 임명한다든가, 국방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라든가, 건물을 세우고 보수하는 것, 그리고 재정적인 문제들을 토의하는 것이 에클레시아이다.


 

그런데 화살표를 보면 알겠지만 이 화살표는 양쪽에 서로 연관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의회에 선출되어서 이러한 일들을 의논하기는 하지만 그 결정된 것을 가지고 자신의 선거구로 돌아가서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을 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약 성경은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을 자세히 보시기 바란다.  이 그림에서 교회의 건물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것을 건물이라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 건물은 교인들이 모이는 하나의 집합소가 될 수는 있어도 건물 그 자체가 교회는 아니다.  교회라고 하는 건물이 없다면 모임의 구심체가 없고, 또 교제를 나누고 훈련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건물이 필요하다.  성경은 교회라는 것이 가시적인 건물이 아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했다.


 

그러므로 가운데는 하나님의 상징인 그림이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소유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상징이신 무릎꿇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복음의 내용이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 끌어 모은 그의 백성들에게 주님 자신에 대한 예배를 포함해서 예수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시고, 또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이웃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야 하는데, 화살표가 양쪽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의해서 부름을 받고 파송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 생활의 목적이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울러서 교회 생활의 목적은 부르고 파송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적용해 보아야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은 과학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일꾼, 내지는 사찰의 직분을 맡고 있다.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는 농부이고,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다루는 일을 한다.  여기에 공백이 남겨져 있는데 이것은 내가 지금 감당하고 있는 자신의 직업을 적어 넣어라.


 

그림을 보라.  여기에 사람이 두 손을 들고 있다.  이것은 찬양하는 삶과 남을 높이는 삶을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떠한 직업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가운데 모시고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남을 위한 봉사자로써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그는 주님을 찬양해야 하며, 항상 남을 높이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세사에는 이러한 선의의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가 하면, 악의에 넘치는 가짜 교회도 있다.  다음 그림(그림 25C)이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사탄적인 교회이다.  사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공동체가 만든 교회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세속적이다.  세속적이라는 말은 종교와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일들을 말한다.  여기에서 종교라는 것은 기독교를 말한다.


 

그림을 보라.  여기에 보면 손을 들어 찬양하는 자세가 아니다.  전부가 무관심을 표방하고 뒷짐을 지고 있는 모습들이다.  사탄이 얼마나 영리한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는다.  "야, 와라.  오면 너희가 악독하게 될 것이고, 또 남에게 악을 행하는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너희가 어떠한 직업에 있든지 간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말고 너희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라"고 아주 교묘하게 접근한다.


 

사탄 교회의 목적은 죄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 만족한다.  사탄 교회의 중심은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세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데, 남을 낮추는 것과 자기 중심적, 그리고 남을 깔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탄적인 행동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세상에 사탄 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에는 버젓이 십자가 대신에 사탄을 상징하는 것을 내걸고, 이름도 사탄교회라고 붙인 그런 교회들이 있다.  그래서 미국의 광고에는 이런 광고가 나온 적이 있다.  "어린아이들의 유괴를 조심하라.  왜냐하면, 사탄의 교회에 재물로 바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 두 개의 그룹 가운데 한 곳에는 소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인가?  아니면 사탄 교회의 교인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교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사탄 교회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사탄의 세력들을 내 쫓으면 뒷문으로 조용히 들어와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땅위에 살아가면서 두 개의 진영이 서로 싸우는 전투의 중간에 끼어서 많은 고난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은 승리자 이상의 승리자가 이미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싸움이 있는데 그것은 땅 위에 있는 교회로서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싸움으로 인해서 우리가 왜 이렇게 싸워야 하느냐? 라고 고민하고 근심해서는 안된다.  왜 싸우느냐 하는 것은 기쁨의 근원이 되어야 하고, 승리에로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진정한 구주로 모시게 될 때에 이 싸움은 오히려 승리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절대로 뒷걸음질을 치지는 않는다.


 

다음 그림(그림 25D)을 보도록 하자.


 

사탄의 모습을 관찰해 보라.  굉장히 영리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보면, 밑에 웃는 모습이 나온다.  이처럼 사탄은 웃는다.  사탄은 악한 모습이나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아주 부드럽게 다가온다.  사탄은 우리에게 "오라.  너희가 나에게 오면 고약하고 못된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너라.  오면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고, 이 세상에서 즐기는 방법을 알게 해 주겠다"고 유혹한다.


 

그림을 보라.  이 원이 자아 중심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 원은 이기주의의 나를 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죄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그림 가운데 보면, 1이라고 하는 숫자가 있다.  이것은 내가 제일이라고 하는 자아 중심에 사로잡혀 있는 죄인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1은 높은 데로 올라가려는 마음으로 이것은 사탄의 미소의 유혹이다.


 

이 사람은 교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실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 방식에 참여하도록 초청한다.  "오라, 내가 너희들에게 완전한 생활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마.  내 말을 들어서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될 리는 전혀 없다.  더욱이 법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제일인자다.  어디 한 번 최고의 자리로 올라가고 싶지 않느냐?  그리하여 성공을 함으로써 비로소 모든 일들을 즐기고 싶지 않느냐?"  사탄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성전의 꼭대기에 올라가라고 유혹한다.


 

그림에 보면 돈이 있고, 가족이 있다.  그리고 회사와 일이 있고, 교육이 있으며 먹는 것이 있다.  정부와 권세가 있고 여가 선용이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에게다.  모든 사람에게 향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에게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왜 교회의 건물은 보이지 않는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교회 안에 들어와서는 교회 자체보다는 교회 안에서 내부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것이지 교회 건물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교회 내부가 분열되어도 건물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그림 25E를 보라.  이 그림은 요한일서의 내용이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한 참 뜻은 무엇인가?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하라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다.  피조된 세계는 악하지 않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세상"은 사탄의 명령을 따라 행동하고 있는 이 세상의 피조물들을 언급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다.  필립스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세상으로 하여금 너희를 그 틀 속에 몰아 넣지 못하게 하라"


 

이 그림이 필립스의 번역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 보면 이기적인 사탄교회의 교인이 가운데 있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압축기의 핸들이 있다.  이 핸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면 그것이 나를 무겁게 눌러서 점점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오직 두 가지 대상, 즉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거나 섬겨야만 하는 이유 때문에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방식으로 세상을 사용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무엇이 성공인가?  일반적으로 성공의 여부는 "나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얼마나 잘 행하였는가?"에 기준을 두고 있다.  그래서 내 집은 보다 더 큰 집이어야 하고, 내 차는 볼보와 같은 제이어야 한다.  그리고 높은 사교계에서 인기를 독차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등 이러한 것들을 열거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적을 쌓느냐에 따라서 성공이라고 하는 세상의 기준에 대해서 주님은 단호하게 거부하신다.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과 우리에 대한 분부는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잘 섬기고 종노릇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악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서와 같이 압축기를 잘못 사용하면 그것이 우리를 누르고 무거운 짐이 된다.  가령, 물이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지만,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  누가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칼이 나쁜 것도 아니다.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세상의 것도 이와 같다.  어떻게 사용하느냐? 가 중요하다.  그것은 곧 이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어떤 곳인가?  예수님의 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25F를 보도록 하자.


 

간혹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해서 말할 때 얼핏 숫자나 통계치를 내세워서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숫자나 통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을 감당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 번 실습을 해 보도록 하자.  손을 뻗어 보라.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라.  여러분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손을 긁어 보라.  되는가?  오른손가락으로 어떻게 오른손가락을 긁을 수가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엄지손가락으로 대신해 본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섬김을 주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각기 다른 지체들도 다른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가령, 엄지손가락이 아프다고 한다면 다른 모든 신체의 부분이 그것 하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치료가 되어 간다.  그런데 아프던 엄지손가락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면 모든 육체는 평온하게 되고 비로소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고통이 사라졌으니까 정상적인 상태에서 더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림을 보라.  이 그림이 우리 교회 교인들이 서로간에 주고 받는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머리 부분에는 그리스도가 있다.  우리의 지체가 되고 우리의 머리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신다.


 

그림에서처럼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름대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가 어떠한 일에 종사하든지 간에 그것은 종의 형태로 굽히고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종됨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직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좀 전에 말했던 것처럼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아프다고 한다면 집중적으로 그 부위를 완쾌시키는 일에 매달려야 하겠고, 건강해진 후에는 그 지체를 가지고 다른 외부적인 일들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의 펼쳐진 지체들이다.  팔이요, 다리요, 그리스도의 지체가 연장된 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자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에게' 봉사를 해야만 한다.


 

마지막 그림(그림 25G)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신약에서 말하는 성전의 개념을 그림으로 표시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천막을 짓는 이야기라든지, 성전을 짓는 이야기들이 언급되어져 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구약에서의 이러한 가시적인 건물과는 달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적인 건물이 완성되었고 이것이 구약의 건물과 대치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약이 구약의 성전 개념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더 진보적인 개념으로 대치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은 신약성경이 어떻게 신약성경적인 성전을 개념화하고 규격화하느냐를 말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모퉁이 돌이 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모퉁이 돌을 어떻게 정확하게 앉히느냐에 따라서 다른 건물들의 방향을 놓을 것인가가 결정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퉁이 돌로서 신약의 공동체의 나가는 방향에 대해서 정확한 제시를 해 주고 계신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도들의 역할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 하나의 돌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돌들이 서로 연결될 때에는 은혜라고 하는 시멘트로 돌과 돌을 연결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이 없는 딱딱한 돌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산 돌들이 모여서 이러한 신약적인 건물을 건축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새로운 건물이 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성령으로 임재하시고, 말씀으로 임재하시고, 성례전으로 임재하신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이 성전에 살아있는 벽돌은 민족이 어떻고, 얼굴의 색깔이 어떻고는 문제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교회에는 세상적인 구별이 없어졌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모두가 화목해야 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를 아름답게 짓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살아있는 성도들이라는 돌을 짓는 영적인 교회도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칼빈은 참된 교회란 그리스도가 계시고 생명의 말씀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곧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선포와 성례전의 정당한 집행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신약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례를 통해서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의 한 공동체를 일컫는다.  그의 백성은 그들이 믿고 행하는 바를 통하여 그의 임재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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