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과. 새 출애굽 ― 새 백성
하나님께서는 모든 개인의 가옥마다 다 허물어지게 하셔서 평지가 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지금까지 축적하고 쌓아놓았던 부와 삶의 터전이 다 허물어지고 평지가 될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가시덤불과 엉걷퀴와 잡초만 무성하게 만드셨다.
이사야 34: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시랑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그리하여 드디어 이스라엘 민족은 그의 사랑하는 조국과 사랑하는 가족을 멀리 떠나서 머나먼 나라에 포로 신세로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이러한 바벨론에 의한 경험은 이스라엘 민족이 완전히 패망해서 그 조국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바벨론 포로의 결과로 그들에게서는 과연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이것에 대한 대답이 바로 오늘 11과에서 공부하게 되는 내용이다. 11과는 포로 후기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성경으로 말하면 에스라, 느헤미야에 관한 부분이라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격언에 보면, "당나귀를 잘 길들이려면 몽둥이 찜질을 하는 것 밖에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은 오늘 공부하게 되는 포로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잘 적용되는 말이다 라고 생각을 해 본다.
사실, 바벨론의 경험이 참혹하기 짝이 없고 비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을 그저 단순히 고난을 당하게 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실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 같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은 그들이 이렇게 해야만 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필요악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하였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은 그대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고, 바벨론 나라에 거주를 하게 되면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난날의 삶을 되돌아보고 회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잘못을 하나 하나 곰곰히 되돌아보기 시작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 70년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에 많은 변화가 있게 했다. 더구나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자기들이 포로가 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신앙에 상당한 갈등을 일으켰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들의 내일의 장래성을 무엇으로 판가름할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도록 그분을 왕좌에 모셔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가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수 많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기는 들었다. 그러나 그 예언자들의 말에 대해서도 반기를 들어왔다는 사실을 뉘우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대하여 너무나도 불복종했던 지난날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늦게 나마 깨닫게 된 내용들이었다.
여기 그림을 보라.
그림에 있는 61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돌비석과 그 옆에 있는 조그마한 돌비석들과 두루마리들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들은 바벨론 당시, 그리고 포로 시대 이후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자각하기를 자기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불복종해 온 민족이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나라가 패망했고, 민족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모진 수난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적인 재난을 되풀이하는 일만은 제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율법에 불복종했던 자연스런 결과가 자기들을 포로의 신세가 되도록 했다고 한다면, 이제 그들이 그 옛날 아름다웠던 시절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절대적인 복종을 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귀를 막았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한 꼴이 되었다면,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전적인 순종을 하게 되면 옛날의 좋았던 상태로 돌아갈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전능자에 대한 순종의 개념적인 파악을 서둘러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순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시시콜콜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적인 결과입니다만은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그들은 율법 자체에 대한 하나의 연구와 그 연구한 것을 법제화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의 결과로서 613조항이라고 하는 해석 조문을 법제화하고 고정을 시켜버렸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다음에 이 일을 법제화했다고 하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여기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이 왜 이렇게 법제화를 서둘렀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선조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는 이방 민족들에게 포로로 잡혀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이와 같이 율법의 법제화를 서두르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여기 그림에 보면, 큰 것이 있는가 하면 조그마한 계명판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소위 '구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말로서 어떤 율법 조항이 전해진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랍비들의 주장을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기록된 것만 선조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귓속에다가 대고 소근소근 말씀하는 말로써 전달되는 그러한 율법 조항도 많이 주셨다 라고 주장을 한다. 그러니까 귓속에 소근소근 전달해 준 율법적인 말들이 입에서 귀로, 또 귀에서 입으로 전해져 가지고 수백년 동안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랍비들이 말하는 이야기이니까 그것이 과연 신빙성이 있느냐 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로 넘어가자.
그러면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이렇게 구전을 많이 전해 왔는가?
그리고 이렇게 많은 구전들과 두루마리가 있다는 것은 사실은 성경 자체 안에 있는 율법을 어떻게 하면 보다 완벽하게 지킬 수가 있겠는가 하는 것을 방비책으로 보조해 주는 의미에서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령, 하나의 예를 든다면, 우리가 안식을 지킬 때 언제부터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가 있다. 그랬을 때 그들은 해가 뚝 떨어질 때부터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구전에 의할 것 같으면 사실은 해가 뚝 떨어진 다음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해가 떨어지기 30분 전부터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을 보다 엄밀하게 지키려면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각종 구전을 참작해 가지고 이렇게 완벽하게 지키자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율법을 연구하고 조문화시키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전에 대해서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또 이것을 고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데는 2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이 율법을 다 준수하게 될 때에는 그 민족이 다시는 포로로 잡혀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첫째 이유이다.
그리고 둘째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에 절대 복종을 하게 되면 메시아가 생각했던 시간보다 단축해서 빨리 오시게 될 것이다 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생각에는 메시아가 이미 이 땅에 와 가지고 약속의 땅 어디엔가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데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율법을 다 지키자, 그러면 그 메시아가 우리들 앞에 홀연히 나타날 것이다 라고 주장을 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율법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 앞에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진지하게 지키자. 온 민족이 하루만이라도 좋으니까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한다면 그때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다" 라고 그들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어떤 일부분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그들이 이렇게 두 번을 연속적으로 안식일을 잘 지키면 메시아가 나타나실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엄청난 충격, 내지는 반항을 불러 일으켰던 이유를 여러분은 아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안식일을 준수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에 반기를 드셨다. 따라서 예수님이 행동하시는 이러한 방식을 관찰해 볼 때에 바리새인들의 결론은 무엇이겠는가? "저 사람은 우히려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들이 소망하는 메시아가 오시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취할 행동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못 잡아먹어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시겠는가?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그들의 생각의 결과로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3번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돌판이 있다. 이것은 사실은 법 조문에 있는 것도 아닌데,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꺼집어내어 가지고 "제 3의 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 혹세무민하던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요. 너를 애굽 나라에서 건져낸 하나님이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다.
"그러한 고로 너희는 나의 계명에 순종할지니라" 그래서 그들은 포로로 잡혀 간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계명을 어찌나 확대하고, 어떻게나 중요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이렇게 계율과 율법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강조를 하다보면 은혜가 약해진다. 은혜가 뒤로 물러간다. 하나님의 은혜가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율법 이전에 은혜가 앞서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에 그들은 포로된 생활에서 귀환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포로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멀리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은 그것을 다 지킬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달력에는 613가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하루에 2가지씩(하라, 하지 말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선행을 하려고 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돕기 위해서 성전에 거지를 두게 된다. 이것은 허가받은 구제인데,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구제할 대상이 없어서 선을 행하기가 어려울까 봐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지키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지키도록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보신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아직도 죄인이다.
여기에 등잔이 있다. 위에 불꽃이 있고, 그 밑에 등잔이 배경으로 나타나 있다.
유대 사람들은 그 당시에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던 성경, 곧 구약 성경이야말로 등과 같은 것이다 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구약 성경은 또 어디에 견주어서 말을 했는가 하면, 그것은 '지혜 중의 지혜서이다' 라고 말들을 했다. 그러니까 지혜 중의 지혜는 이 모든 우주가 조성된 내력까지 포함해서 모든 비밀을 밝혀주는 것이다 라고 했다.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은 지혜서인데 이 지혜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라는 것에 비유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을 히브리 사람들이 알고 했는 말인지, 아니면 모르고 했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뱉어 버린 그 말이 예수님이 오셔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심으로 그 말이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바울이 "예수님은 지혜다"라고 하심으로 그 말이 또한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흥미있고 놀라운 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또 예언자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의 등불과 같은 국가적인 존재인데, 온 세상을 비취는 존재이다 라고 예언한 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국경이라고 하는 좁은 땅덩어리 안에다가 히브리 민족을 가두어 놓는 것으로 만족하실 수가 없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민족으로 하여금 밖으로 나가기를 원하셨다. 세상을 비취는 등불과 같은 민족이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언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종된 민족이 되어야 한다"라고 거듭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