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과. 왕들, 왕국들, 그리고 포로생활
이제 우리는 왕이라는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할 단계에 이르렀다.
9번에 나오는 여러 가지 그림 설명을 먼저 하겠다.
이 얼굴은 다윗의 얼굴을 상상해서 그려놓은 것이다. 우리가 이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화가는 다윗이라는 사람이 아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굉장히 지성적인 모습을 그려놓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에 왕관이 여러 개가 겹쳐진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다윗에게서 이어진 왕통이 그 이후에 계속해서 지속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징해 주고 있는 것이다.
먼저 다윗이 등극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스라엘 전부를 통치한 것이 아니고, 다만 자기가 거쳐하는 예루살렘이나 헤브론이나 유다를 중심으로 한 조그마한 지역만을 통치하고 있었다. 북쪽까지 정복해서 자기의 통치하에 넣기까지는 7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북쪽을 합해서 통일한 다음에 그는 원래 해브론이 수도였는데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겼다. 또 그는 기럇 여아림으로부터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말하면 남북이 서로 맞붙어 있는 중립지대였다. 남쪽에도 북쪽에도 소속하지 않는 중립지대였었다. 다윗은 거기에다가 도읍지를 만듦으로 해서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게 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만든 다음에 다윗은 그 수도의 명칭을 '다윗의 도읍', '다윗의 성'이라고 고쳤다. 우리가 신약성경에 예수님의 성탄 기사의 내용에 보면 이 성읍의 이름을 더 이상 예루살렘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다윗 성'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윗성은 지금은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이름을 부르고 있다.
왜 그와 같이 바꾸었는가? 사실 우리가 신약 성경에 볼 것 같으면 예루살렘을 다윗성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하여 전적으로 반기를 드는 반역의 도시로 퇴화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전적으로 반역의 도시가 되었고, 주님께 대하여 반대하는 성읍으로 타락하고 말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보면 다윗이 자기의 국경선을 확장한 것이 나와 있는데, 노란 바탕의 색깔은 다윗이 자기의 국토, 영토를 확장한 그림이다. 역사상 다윗만큼 자기 동족에게 보다 광대한 국토를 허락한 왕이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윗이 아직도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보면, 아주 놀라운 사태가 전개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이 바로 자기 백성에게 왔건만 그의 백성들이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선조 다윗이 그러했듯이 광대한 영토를 회복할 만한 정치적 메시야를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이신 그분이 왔을 때에는 그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도 이와같은 일을 하라고 권고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국수주의적이고, 소위 말하는 애국적인 그러한 국토회복에 대한 제안과 아우성 소리에 등을 돌리시고 그러한 외침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한 성경이나 그림을 보면, 다윗은 일종의 영웅으로, 훌륭한 위인으로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좀 더 깊이 성경을 읽어야 되겠고, 얼핏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소개하듯이 다윗을 소개하는 문제에 대해서 제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심각하게 내사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왜 예수님께서 자기의 동족들에 대해서 크나큰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그러한 수난을 자초하실 수 밖에 없었느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77에 써 놓은 내용은 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추대되었고, 왕이 뽑혀서 통치하게 되었는가 하는 전후 사정을 간략하게 약술해 놓은 내용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왕을 이스라엘 민족이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반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억지로 했다는 면을 강조하고 있다. 왕의 제도를 이야기 할 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게 한 마디의 말에 붙힐 정도로 그런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사들이 통치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올바로 모든 것을 했느냐고 했을 때 그렇지 못했지만, 그러나 사사가 통치하던 시대에는 상당히 정돈된 삶을 살았다고 볼 수가 있다. 사사 시대 때에 만약에 그들이 뭉쳤다면 살았을 것이고, 반대로 뭉치지 않고 흩어졌다면 그들은 후퇴를 하고 망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사기에 보면 여러 사사는 독특한 자기 나름대로의 족속들을 거느렸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러 개의 분산된 족속들을 사사들이 통치하는 것도 좋지만 전 민족을 하나로 통치하는 통일 정부와 주권자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p. 77의 2 단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통치할 왕의 통치 문제가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 보면 성경 구절들이 나와있는데 이스라엘의 왕이 임명되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백성들이 찬성했지만,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대한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다.
영어 성경에 보면, 통치하는 사람을 일컬어 어떤 때는 '왕', 'King'이라고도 했고, 또 어떤 때는 'Prince', 'Prince'라고 하는 말은 '공'이라고 할까. 그렇게도 번역해 놓았다. 그리고 통치자에 대해서 호의적인 심리로 묘사할 때는 의레히 '공', 'Prince'라는 말로 표현해 놓았다. 땅에 있는 통치자가 어떤 주권자, 공이라는 이름으로 일컬어진다면 진정한 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King이 되시는 것이다. 그런데 왕, King이 땅 위에서 좌정해서 모든 것을 다 지배하고 통치하게 되면 어디까지 통치권이 가는가 하면 심지어 하나님까지 배제해 버리고 하나님 없는 통치자가 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특별히 사무엘상 11장 7절을 찾아서 읽어보자.
삼상 11:7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 사자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경에 두루 보내어 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같이 나온지라.
여기에 보면 사울이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징집해 가지고 온 나라를 방위하는 문제로 그들을 총동원했다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길르앗 야베스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을 위해서 출정하는 것을 읽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때에 소를 각을 떠 가지고 만일에 소집령에 응하지 않으면 각을 떤 소와 같이 될 것이다고 말한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전투에 참여하기를 기피한 자는 이 소처럼 각을 띄워서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을 한다. 만약에 오늘 김대중 대통령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러니까 사울이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단합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강권을 발동했다는 것을 성경 가운데서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하는 사울은 성경에 의할 것 같으면 오랫 동안 민족의 사랑을 받지를 못했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께 불손종한 것을 비난한다. 사람들은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할 때 이러한 말을 해 주었으면 했을 것이다. 즉, 이제는 더 이상 히브리 사람을 위해서는 왕을 두지 않겠다는 말을 할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고, 사울을 이어서 다윗을 왕으로 세움과 동시에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베냐민 족속에서 나온 왕통은 이제는 대가 끊어져서 가야하지만, 유다의 족속에서 나온 왕통, 다윗의 왕통이 대를 이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래의 모든 기록들을 살펴볼 것 같으면, 사울과 다윗이 숨바꼭질을 하다가는 나중에 사울은 자기 칼에 엎드려 스스로 죽고 마는 비극으로 끝장을 냈다.
다윗의 성격에 대해서 몇마디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여기에 기록은 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것을 기억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윗과 사울이 이와 같은 투쟁을 벌이게 될 때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되는데, 그때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은 다윗을 향해서 '결국은 그대가 네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이 될 것이다'라고 솔직히 고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절대로 우리의 후손은 죽이지 말아달라는 사실을 다윗에게 간청한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렇는가? 왜냐하면, 그 나라의 습관은 그 나라의 임금이 되었을 때 먼저 임금과 그의 속한 모든 3족이랄까, 그에 속한 모든 혈족은 전부 멸절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비가일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의 남편이 다윗을 모욕했을 때 다윗에게 간절히 소청해 가지고 그 사태에서 피흘리는 사태를 피해달라고 하는 요청을 볼 수가 있다.
다윗이 후에 남북조를 하나로 합해서 통일하게 되었을 때,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갔다 놓는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법궤를 이전하는 행렬에 앞장서서 그것을 인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내려다보고 있던 그의 아내 미갈은 왕이 된 자가 그와 같이 흩어진 자세로 행진하는 것을 보고 멸시하는 자세로 그의 남편을 내려다본다. 남편을 비난하는 그 결과로 다윗은 그를 내몰게 되고, 다시는 그 여인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은 사울의 가문이 딸까지라도 남아서 끝까지 자기에 대해서 반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때에 사울의 가문에 차제에 아주 깨끗이 말소가 되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아내를 내 보낸 것이다.
사무엘하 11∼12장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7계를 범한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그 아래에 모든 기록들을 보면, 다윗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과연 누가 다윗을 이어서 왕이 되겠느냐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집안 싸움에는 다윗의 4 아들이 관련이 되어 있는데, 첫째로 장남인 아들 암논은 자기의 이복누이 동생인 다말을 겁탈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 오빠인 압살롬은 자기 누이동생이 살해된 것에 대한 원수와 더럽힘을 받게 된 원수로 암논을 살해하게 된다. 그는 한 때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피해서 도망을 갔지만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그가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아 가지고 잠시동안 임금이 된다. 그래서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좌를 탈취하게 되고 온갖 것을 다해서 자기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이때 아히도벨이라고 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압살롬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데, 사실 압살롬으로 말하면 그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사람이고, 아히도벨은 그 당시에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압살롬과 아히도벨, 두 사람은 완전히 합의를 보게 된다. 더구나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 격이 되는 사람이다. 다윗의 외척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오히려 다윗의 왕좌를 무너뜨리는 반역에 가담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다. 물론 다행히도 이런 반역은 나중에 진정이 되어 가지고 압살롬은 살해되어 평정이 된다.
그리고 사무엘하 21장에 보면, 다윗은 이러한 뒤에 일어나는 그의 후손들 가운데서 반역적인 요소가 있는 무리들을 처치함으로 말미암아 그의 왕권을 견고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왜 그렇는가? 이것은 역시 사울의 가문이 씨도 없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사후조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 죽이는 가운데서도 '므비보셋'이라고 하는 요나단의 아들만은 친구와의 정에 입각해서 죽이지를 않고 살려 놓는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밥 먹는 식탁에 나오게 함으로 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언제나 자기의 눈앞에 있게 함으로서 사태를 안전하게 처리해 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은 자기의 가문이 어려움이 없이 평안하게 유지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조치가 강구가 되는 것이다.
열왕기상의 초장들에 볼 것 같으면 다윗이 상당히 고령이 되었고, 또 남자 구실을 할 수 없을 만큼 늙었다고 하난 사실이 거기에 기록이 되고 있다.
그런데 '아도니야'라고 하는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왕위를 탐내어 가지고 왕위를 계승할려고 하는 음모를 꾸미는 내용이 거기에 나온다. 그런데 밧세바하고 선지자 나단이 서로 제휴를 해서 아도니야의 음모를 분쇄하는 일을 하게 된다. 밧세바가 자기의 남편인 다우시에게 가서 말하기를, 만약에 아도니야로 왕이 되게 한다면 나도 죽고 자기의 아들 솔로몬이 죽고 자기의 모든 가문이 죽게 된다는 비참한 사실을 호소한다. 그래서 드디어 자기의 아들 솔로몬이 왕통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해 가지고 결국 솔로몬이 왕이 된다. 솔로몬이 왕이 되자 역시 아도니야로 하여금 사형을 당하도록 솔로몬이 조치를 해서 그 문제도 깨끗이 처리하게 된다.
다윗이 죽음이 병상에서 유언하기를 요압과 시므이, 두 장군을 역시 처치해 버려야만 후환이 없을 것이라는 유언을 하고 죽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그것은 성경 가운데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고, 이러한 것을 잘 이해를 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게 되고 얼마 안 있어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세 되는 그러한 원인적인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말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께서도 옛낫의 다윗과 같이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의 국위를 떨치는 일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갈릴리에서 온 예수가 어떤 사람의 발을 씻겨 준다든지,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위대한 조상인 다윗이라고 할까, 다윗과 그 위대한 후손인 예수님과의 사이에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구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왕관에 대해서 몇 가지 설명을 드린다면, 이것은 사무엘하 7장 이하에 설명이 나와 있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 큰 왕궁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하나님을 모실만한 성전을 지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러한 친절한 마음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은 나에게 필요가 없다고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구태여 너의 손을 빌려서 내가 거하는 신전을 짓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사실은 너를 통하여 너의 후손 가운데 누구를 시켜서 내가 거할 성을 짓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울의 가문은 멸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범죄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러한 왕조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갈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지금까지 이렇게 다윗의 영토 문제를 가지고 장황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활동하심에 있어서 예수님이 그의 위대한 조상 다윗과 어떻게 그 사역이 다른가 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대조시키는 의미에서 길게 설명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의 전체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주인공, 가장 우대한 주권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다윗 다음에는 솔로몬이 등장한다. 그러면 솔로몬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냐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의 자기 나름대로의 이상적인 묘사를 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그는 특별히 성전을 지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점과 관련해서 솔로몬을 아주 위인으로 생각을 하고 묘사한다.
이것은 그가 통치할 때에 어떠한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아버지에게서 그 나라를 물려받은 다음에 솔로몬은 북쪽에 보면, 또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를 거대하게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솔로몬의 이야기를 소개한 성경의 여러 장 가운데 자그마치 9장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로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솔로몬이 성전의 여러 건물들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자기가 자기의 화려하기 짝이 없는 왕궁과 성전을 짓는데 있어서 어떻게 건축을 했는가 하는 건축 방법을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문에 볼 것 같으면 여기에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백성을 하나의 노예로 부역을 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 79 네 번째 행에 보면, 그가 어떻게 그의 백성을 혹사시켰는가 하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특별히 그는 건축을 함에 있어서 옛날에 가졌던 모든 족속들의 지역적인 단위로 이러한 일을 시켰다고 하는 것도 발견하게 된다. 옛날에 12족속의 각 지역마다 지역의 행정 책임자를 한 명씩 임명을 해서 이것을 통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북쪽에 있는 여러 족속들의 영토에는 12사람의 행정 책임자를 임명하였던데 반해서, 남쪽에는 오직 한 사람만 임명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사람들의 책임이 과연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날마다 왕궁에서 먹는 식량이나 온갖 진미를 공급해 주는 그러한 일을 이들이 직접적으로 통괄하고 관할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솔로몬은 자기가 살아가는 생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러한 감독자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백성들을 착취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여기에 보면 성전의 지적도인 단순한 그림이 나와 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는 20년 가까이 들었다. 성전 하나만 짓는데 7년이 걸렸고, 자기의 궁전을 짓는데는 13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한 가지 얻게 되는 것은 솔로몬은 그 나라의 종교 생활을 자기의 왕권과 자기의 부귀를 얻기 위해서 그것까지도 좌지우지하고 통제했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왕궁을 짓기 위해서 외채같은 것을 많이 들여다가 집을 짓다보니까 이것을 갚기 위해서 자기 영토의 일부를 쪼개어서 그 외채를 빌린 나라에 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지어서 우리 예수님께서 땅 위에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셨느냐 하는 것을 대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 빌리도 앞에 서 계신 사건이 요한복음 19장에 나와 있다. 그때 빌라도가 예수님께 "그대는 무슨 일을 했는가?"라고 묻는다. 다시 말하면, "왜 밖에 있는 저 유대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대에 대해서 반항을 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왕궁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땅위에 있는 이러한 왕국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으시고 그저 관심이 있다면 하늘 나라에 있는 그것에만 관심이 있다고 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풀이하는 것이 온당치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빌라도여, 그대는 내가 무엇을 했느냐 라고 묻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 나는 내 백성을 위해서 바꾼 잘못된 왕의 정부를, 잘못된 왕을 쓰러뜨리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늘에 있는 12영의 천군천사를 불러다가 이러한 못된 왕을 쳐부술 수도 있다만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일을 하려 하지 아니하고 사실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 또 발을 씻겨주는 일을 위해서 내가 왔노라"고 했을 때에 이 말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리스도쯤 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 대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고 또 발을 씻기는 것 등의 행동을 하시는 그런 모든 행동은 히브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야 답지 않다는 의미에서 상당한 충격을 그의 민족에게 주었다 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이러한 발을 씻기는 일과 봉사를 하지 아니하고 세상의 권세에 편승을 해서 엉뚱한 일을 한다고 하면, 그 때에 히브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외치는 것과 같은 결과가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윗 당시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까지에 이르는 동안에 자기의 백성들이 메시야에 대해서 가졌던 메시야 관에 대하여 등을 돌려대시고 그들의 모든 예상을 뒤엎어셨다는 것이다.
여러분께서 아시듯이 솔로몬이 세상을 따난 다음에 영토는 둘로 갈라져서 파란쪽과 노란쪽으로 양분이 되었다. 그 후에 양분된 두 토막은 다시는 하나가 되지를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의 왕국이 아니라 두 개의 왕조, 내지는 왕국으로 갈라져서 히브리 민족의 역사가 전개될 것이다.
여기에 이 그림이 지금 말씀드린 내용을 요약해 주고 있다.
여기에 보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나오고 있다. 위에 있는 12개의 조그마한 네모꼴들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12개의 족속으로 분파가 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는 그림이다.
베냐민 족속에게서 나온 사람으로 사울이 최초의 임금이 되었다. 그 다음에는 다윗이 이어 받았고, 그 아래에는 솔로몬이 왕으로 이어 받았다.
다윗의 후손들이 남쪽 왕국을 계속해서 통치했고, 한 사람만이 다윗의 후예가 아닌데, 그는 바로 아달랴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다 다윗의 후손들이다.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다윗의 핏줄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그가 죽은 다음에 계속해서 왕통이 이어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북쪽에는 9개의 왕통이 그 나라를 각각 다스렸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색깔이 각각 다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 왕통은 결코 한 핏줄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끊임없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통해서 끊어졌다는 사실이다.
전부 9개의 왕조가 다스렸는데, 9개의 왕조 가운데 7개의 왕조는 암살에 의해서 쓰러진 다음에 왕권을 휘어잡은 사건이다.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여기에 7개의 칼이 있고, 핏방울이 묻어 있는데 이것은 암살을 의미한다.
여기에 보면, 시므리만은 살해당하지 않고 오므리가 왕이 되었는데, 이것 하나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가 다 암살에 의한 찬탈이다. 시므리가 살해당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자살을 했기 때문인데, 이렇게 본다면 남의 손에 의해서 죽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스스로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9대가 피로써 이어진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 9대가 끝난 다음에 갑자기 함락이 되고 그 왕통이 끊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왼쪽에 보면 ∨한 표시들이 나와 있다. 열왕기에 볼 것 같으면 이렇게 첵크가 된 것은 좋은 왕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p. 81 끝에 그 내용이 나와 있다.
이러한 좋은 왕들은 주로 예루살렘 성전을 뒷받침하고, 또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선정을 베풀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남유다에 속한 왕들은 다 좋고, 북이스라엘에 속한 왕들은 다 나쁘다고 하는 그런 일률적인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남유다나 북이스라엘 할 것 없이 거기에 속한 성경을 우리가 자세히 읽어 가면,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을 막론하고 바알 숭배 때문에 얼마나 오염이 되었고 분열상태를 빗었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 말하면, 솔로몬이다. 솔로몬과 같은 현군도 그 주변 국가에서 많은 여인을 아내로 채택해서 그에게는 처첩이 많았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들이 솔로몬에게 올 때에는 으레히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단지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알 숭배가 유대 민족에게 끼친 영향]이라고 하는 박사 논문에 보면, 저들이 각각 남유다나 북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97%라고 하는 선민이 바알 숭배를 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가 그 선민들을 향해서 이방의 모든 창녀들을 따라가는 것과 같이 이방신들을 따라 간 것으로 책망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림 9C 에 보면, 이 두 개의 왕조가 궁극적으로 망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언자는 거듭 그 민족에 대해서 경고를 내리고 위협적인 어조로 말하기를 "만일 너희들이 계속해서 행위를 개전하지 아니하고 바알 숭배를 하고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면 너희들의 운명의 마지막은 이렇게 포로가 된다든지 비참하게 될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을 해 왔다.
그런데 구약에 있는 성경의 내용을 읽어보면,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을 보게 된다. 그것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이렇게도 안타깝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소위 선민이라고 하는 그 민족이 목이 곧고 완악해서 그 말과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선지자는 탄식하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너희들은 막창이 막혔느냐? 왜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않느냐?"라고 하는 호소를 계속해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드디어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그런데 앗수르를 말할 것 같으면 잔인하기 그지없는 나라였는데, 그들은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나를 완전히 황폐화하게 했다. 모든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대부분 포로로 잡아가고 난 다음에 고국에 조금만 남겨 놓았는데, 그 남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는 거기에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잡아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겨 놓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빈 공간에 다른 나라에서 포로로 잡아온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그리고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들을 서로 동화시키면서 혼인하게 하여 혼혈을 낳게 하고, 거기에서 제 3의 민족이 나오게 되었는데 이들을 일컬어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는 종족이 여기에서 나오게 된다.
그 다음에 140년쯤 뒤에 된 일이지만 남유다에도 이러한 포로가 잡혀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들은 결국 바벨론으로 잡혀갔고, 그들의 조국은 황폐화가 되었고, 완전히 폐망하게 되었다. 바벨론의 포로라고 하는 것은 구약 성경이 말한대로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놓은 그러한 포로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남유다를 공격해서 597년과 587년에 걸쳐서 그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제 1차 공격을 했던 597년에는 그렇게 완전히 남유다를 멸망시키지 않고 그저 민족 가운데 부분적으로 포로를 잡아간 것에 그쳤다. 그런데 남아 있는 남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대해서 반기를 든 것을 알게 되자 두 번째 공격을 했을 때에는 말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을 잡아가게 되었는데, 그대가 587년이다.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평지가 되도록 갈아 뭉갰고, 성전을 다 파괴시켰고, 말할 수 없는 학살을 감행하고 잡아가게 되었다.
여기에 끌려갔던 포로들이 어떻게 느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은 유대 나라에만 계시는 분이라고 언제나 생각해 왔었다. 그들은 이렇게 멀리 조국에서 떠나 왔는데 우리들의 신세가 이것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성전이 다 허물어진 이 마당에 과연 하나님은 어디에 내주하고 계시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여호야긴이 바벨론으로 잡혀온 이 마당에 있어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왕통은 도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일련의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과연 다윗에게 약속하기를 다윗의 왕통이 계속해서 오랫동안 지속되리라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바벨론으로 잡혀 갔을 때, 바벨론에는 웅장한 신전들이 즐비하게 건축되어 있었고, 많은 바벨론 사람들이 거기에서 우상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히브리 사람들은 절대로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