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좋았다(6)-다섯 번째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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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박사 (생리학, 창조과학선교회)
각 깃털은 새 몸통의 다른 부분에서 다른 길이로 자라났는데 어떤 재주로 그렇게 완벽하게 통일된 모습을 할 수 있게 되었을까? 볼수록 생각할수록 더욱 신기(神奇)하기만 하다. 창가에 앉아 있던 참새는 눈 깜짝할 사이에 ‘뿅’ 하고 날아가 버린다. 생명과학을 전공한 나로선 수정란 한 개의 세포 속에 이런 가공할 엄청난 정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대면하며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1). 이 말이 맞다! 하나님께서 하신 거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위해 단지 말씀으로 명령하셔서 그런 기기묘묘하고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물에 사는 생물들과 공중에 나는 새들을 창조 주간 제 5일에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로마서 1:19-23에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마음이 어두워졌고, 스스로 지혜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바보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피조물로 바꾸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2000년 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대에도 진화론으로 자기만 어리석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어리석게 만들고 있다. 진화론은 지식이 적은 사람도 바보로 만들고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더욱 더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버클리대학교 학생의 87%가 사람을 진화된 동물로 믿고 있다는 2005년의 조사 결과가 그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만약 진화가 사실이었다면 진화 과정에 있는 즉 기능이 완성되지 않는 구조를 가진 중간모습의 화석들이 무척추동물과 어류 사이, 어류와 양서류,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어류 내에서도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등등 각 진화 단계마다 한 두 개가 아니라 부지기수로 많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기는커녕 단 한 개의 제대로 된 중간화석이 없기 때문에 점진적인 진화론은 이미 오래 전에 종언을 고했다(Evolutionary theory under fire. R Lewin, Science 21 November 1980: 883-887.) 진화론은 새의 조상으로 공룡을 지적한다. 그러나 조류와 파충류는 나는 것 것과 기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 차이가 실로 엄청난 것이란 것을 직감하고 있다. 새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파충류의 비늘이나 피부가 깃털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깃털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공기 흐름을 제어하기 위한 섬세한 디자인이 들어있다. 파충류의 뼈는 속이 꽉 차 있지만 새에서는 마치 골다공증 증세가 가장 심한 환자처럼 뼈 속이 비어야 하고 그 강도는 훨씬 높아져야 한다. 파충류의 양방통행의 허파구조는 일방통행의 허파 구조로 바뀌어야 조류가 되는데 어떻게 이런 진화과정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두 무시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유물론적인 자연주의자들은 증거가 없는데도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우연으로 주장하는 진화를 믿는 믿음의 뿌리는 창조자를 부인하는 믿음일 뿐이다. 창조 5일 째에 드디어 하나님은 생명체(생명을 가진 피조물)들을 창조 하셨다. 창조 3일째 식물을 창조하셨는데 성경은 식물을 생명체로 간주하지 않는다. 식물들은 동물과 사람이 먹을 식품이 가장 큰 역할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듯이 창세기 2장에 의하면 땅 위의 짐승들과 각종 새들도 흙으로 지었다. 그러므로 이 육체의 운용 방식이 비슷하다. 뼈가 있고, 근육이 있고, 무엇보다 생명이 들어 있는 피가 돌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창조 5일째 사람들을 위하여 물고기들과 새들을 창조하시고 “좋았더라”고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 때부터 십자가를 넘어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류는 범죄 하지 않았던 처음이 더 좋았다. 이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