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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과 한국 교회 
-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의 시각에서 본 한국 교회의 평가 


1984년 한국 교회 선교 100주년을 기점으로 지난 25년 동안, 한국 교회의 자화상을 평가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동안 교계의 신문과 잡지들은 한국 교회의 목회와 교회 성장의 공과(功過)를 여러 각도로 평가했다. 대부분의 논자들은 한국 교회의 목회 현장을 보면서, 더러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기도 했지만, 대개는 매섭게 한국 교회의 부정적인 현실을 고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것을 다시 논하는 것은 다소 진부한 이야기가 될 듯싶으나, 다시 점검코자 한다. 


1. 한국 교회의 현주소 
 
캐나다의 프람스마(Praamsma) 박사의 지적대로, 오늘의 세계는 세속주의, 유물주의, 무신론주의, 과학만능주의 등이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데, 미래는 그것이 더욱 심화될 것이며, 사람들의 성적,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해서 말세적 현상이 더욱 확산되리라고 전망했다. 결국 교회도 이런 시대적 풍조에 휘말리면서 세속주의가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 올 것으로 내다보았다. 
 
교회가 교회답게 성장하려면 철저한 자기반성과 회개가 필요한데,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런 논의는 주로 <月刊牧會>가 주축이 되어 기획시리즈나 기고자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제기한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80년대의 회고와 90년대의 전망> <한국 교회와 여성 신도> <부흥 운동과 부흥 성장> <한국 교회의 신학을 진단 한다> <21세기 한국 교회의 사명> <교회의 물량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목회 윤리 그 현장을 본다> <목회자의 권위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등등 수없이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여기에서 다루어진 한국 교회의 문제들을 몇 가지로 간추려 보면 첫째, 교회의 물량주의에 대한 자기반성이 그 대종을 이루었다. 한국 교회의 목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마다 평신도나 교역자 할 것 없이 교회의 성장에 따른 성숙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서로 엇갈린 반응이 있는데, 어떤 이는 한국 교회의 성장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예찬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은 한국 교회가 무리한 성장 위주로 가다보니 엄청난 문제점과 부작용이 일어났음을 비판하는 시각이다. 

둘째, 이른바 거룩한 실용주의가 아무런 신학적인 정리가 없이 한국 교회에 침투해 버렸다는 지적이다. 즉 잘 먹혀들어가는 방법인 실용주의와 목적이 수단을 신성시 한다는 반기독교 사고방식이 한국 교회 안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사회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최근까지 한국 교회의 목회 현실을 비판할 때마다 단골로 지적되는 것은, 그동안 한국 교회는 개교회의 부흥과 성장에만 치우친 나머지 사회 여러 분야의 구조 악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넷째, 한국 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윤리적 이완 현상, 탈 현세적이고 기복주의 형태에 대한 지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구체적 개혁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내어 놓지 못했다. 


2. 교회의 개혁자 요한 칼빈 
 
금년은 때마침 칼빈이 탄생한지 500주년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칼빈은 종교 개혁자라고 말하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의 개혁자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당시 서양에서 종교란 곧 로마가톨릭이었음으로 종교 개혁이란 말이 타당하겠지만,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많이 나와서 종교와 기독교를 같이 보려는 시각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굳이 칼빈을 교회의 개혁자로 부르려고 한다. 그러면 교회의 개혁자로서 요한 칼빈 목사의 개혁의 핵심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사도적 교회는 환란 가운데서도 이단과 싸우면서 순수한 성경적 교회를 지켜 왔고 교리 체계를 세워왔다. 교부 시대는 어거스틴, 터틀리안, 암부로스, 아타나시우스, 크리소스톰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나와서 역사적 기독교를 지켜 왔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즉 신앙의 자유를 찾은 후, 로마의 고급 관리와 고급 장교들 그리고 지성인들이 교회에 몰려오자, 변화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던 성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기보다는 새로운 대중들에게 아부하기 시작하고, 서서히 세속화되어 의식적, 형식적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즉 정권을 이기기 위해서 교황제도를 만들고, 교권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성경적인 것을 거리낌 없이 시행했다. 그래서 온갖 인본주의적인 방법이 동원되고 이교들의 예배의식과 미신을 아무 통제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른바 가톨릭교회가 되어 혼합주의적 종교, 비성경적 교회가 되어 교황을 정점으로 한 교권사수에 모든 정치력을 동원하게 된다. 이러한 세속화의 과정이 천년이 넘도록 이루어졌으니, 로마 가톨릭은 전혀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니고 일종의 유사기독교, 변종기독교, 가짜기독교로 전락했다. 그래서 1517년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이른바 95개조를 비텐베르그 정문에 붙이고 종교 개혁의 불길을 지폈다. 그러나 루터는 제대로 된 교회의 개혁을 마무리 하지 못 했고, 왕권에 복종함으로 결국 그의 영향력은 독일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 불란서 출신의 요한 칼빈(John Calvin)은 1536년 그의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Institute of Christian Religion)를 출판한 이후에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조직신학자, 성경 주석가, 목회자, 교육자, 교회의 개혁자로서 오늘 우리가 믿는 개혁주의 신학을 성경적, 논리적으로 체계화하고 조직화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의 모토가 그러했듯이,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는 칼빈의 교회 개혁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한국 교회 안에 실현했으면 좋겠다. 


3. 교회의 개혁자 요한 칼빈의 교회 개혁의 방법 
 
오늘 한국 교회의 식자들은 대개 한국 교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교회의 세속화를 탄식하면서도 정작 교회의 개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의 개혁자 요한 칼빈 당시 교회 개혁의 기준은 무엇이며, 또 그 원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한국 교회에 적용하는 것은 칼빈 탄생 500 주년을 맞아 뜻 깊은 일이라 하겠다. 

① 칼빈의 교회 개혁은 성경에 기초했다. 

당시 개혁자들의 정신이 그러하듯 칼빈의 개혁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었다. 이방 종교와 미신에 감염되어 있던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는 교황의 칙령이나 전승(Tradition)에 매여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초로 하지 않는 교회는 그 때나 지금이나 세속화 할 수밖에 없고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져 갈 수 밖에 없다. 

칼빈 목사는 천년동안 잊어졌던 성경을 대중들에게 자세하게 강해하였다. 칼빈은 위대한 조직 신학자이자 성경 주석가였지만 그는 목사로서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 칼빈은 성경만이 신학과 신앙과 생활의 절대적 표준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하면서 오리겐 이후 당대에까지 유행하던 풍유적(allegorical) 해석을 버리고 성경을 문법적, 역사적으로 해석하되, 구속사적인 시각에서 연속 강해 설교를 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교회는 칼빈의 교회 개혁과는 사뭇 멀어지고 있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평신도의 문제가 아니고 결국 목회자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것은 강단의 문제이다. 한마디로 오늘의 한국 교회의 강단은 성경의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곳이 많지 않다. 많은 설교자들이 신학의 빈곤으로 자의적 설교에 매여 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바로 성경의 재발견이며 강단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 교회의 근본 문제도 바로 강단의 회복 없이는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될 수 없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목회자치고 자기 설교가 비성경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의 강단은 엔터테인먼트식 설교, 자기 선전, 대중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이른바 강단 꾼(Pulpiteer)들이 교회 성장을 지상 목표로 삼아 모든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교회의 개혁의 대상이다. 한국 교회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으로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시기 위한 웅장한 계획이 성경이며, 그 성경의 배후에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섭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설교를 할 때 교회는 바로 되리라고 본다. 

② 칼빈의 교회 개혁은 철저히 오직 믿음(Sola Fide)의 진리를 붙잡은 것이다. 

종교 개혁 당시의 사람들은 자기의 공로나 의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숭상하고 그것이 복을 주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성자숭배, 성물숭배를 했다. 즉 공적을 많이 쌓으면 거기에 대한 보상으로서 구원과 복을 받는 줄 알았다. 자기의 선행을 통해서 구원에 이른다는 보상 개념이 지배하던 시절에 루터와 칼빈과 개혁자들은 성경으로부터 오직 믿음로만 의롭게 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는 루터가 오기 전 100년 전에 존 후스도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는 진리를 설교하다가 순교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은연중에 비뚤어진 축복관을 설교해서 인간의 노력과 헌신 여하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되는 듯이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구원은 내 하기 나름이란 사상을 주입시키므로 헌신과 순종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결국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설교는 내가 선택하기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한국 교회는 믿음을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성경적인 신앙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신앙보다는 자기중심적 신앙, 축복을 전제로 한 조건적 신앙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손과 같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교도나 미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성경이 계시한데로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말씀에 의지하는 것이다. 

③ 칼빈의 교회 개혁은 오직 은혜(Sola Gratia)의 진리를 붙잡았다. 

오직 은혜 즉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의 교리는 칼빈 신학의 핵심인 동시에 개혁 신학의 핵심이다. 또 성경의 핵심이요, 바울 신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칼빈은 당시 어거스틴 이후 천년 이상 잠자던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의 진리를 힘 있게 증거함으로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체계화했다. 
 
그러나 도리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오직 은혜의 진리를 버리고 있다. 강단은 어느새 프로이드의 사상이 들어와서 심리적인 방법이 설교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인간은 결국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엇이던지 할 수 있다고 설교되고 있다. 적극적 사고방식,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고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자기 마음을 개발하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등으로 설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다 인본주의적이며, 유물주의 세계관이다. 

강단에서 전해지는 이런 종류의 설교들은 다 미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목회 성공자들의 메시지라고 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듣기에 좋은 것이 결코 복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이야 말로 오직 은혜(Sola Gratia)의 진리를 힘 있게 붙잡을 때이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만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죄를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을 힘 있게 가르쳐야 한국 교회가 바로 갈 수 있을 것이다. 

④ 칼빈은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a Deo Gloria)을 목표했다. 

칼빈은 교회의 개혁자로서 목회자로서, 엄청난 도전과 박해를 받았다. 그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맞았고 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칼빈은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만 영광이란 목표를 가지고 싸워서 오늘 우리가 믿는 신앙체계를 세웠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늘 겸손하고 진실하고 자기를 숨기었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때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칼빈은 20년의 연구와 준비 끝에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웠으나 자신이 학장으로 취임하지 않고 10년이나 후배인 데오도르 베자를 학장에 임명하고, 자신은 평교수로 일했다. 특히 칼빈은 목회자로서 말하기를 「목사를 망하게 하는 것은 바로 <야심>이다」라고 경고했다. 즉 야심을 갖고 일하는 목회자는 반드시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교역자가 야심을 가지면 목회에 실패하고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바로 교역자의 야심이다. 주의 일은 인간의 욕구충족을 위한 야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요즈음 한국 교회  많은 지도자들은 복음 그 자체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의 꿈과 비전이란 명분으로 <야심>을 가지고 일하는데 이는 성경에 맞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세상적으로 성공을 못 이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제일순위로 살아가면서 목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이 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정착될 때 한국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⑤ 칼빈은 건강한 기독교 교육을 통해서 교회를 교회되게, 은혜를 은혜 되게, 말씀을 말씀되게 하였다. 

칼빈 목사는 제네바를 개혁해 나가는 중에 제네바의 셍 삐에레 교회에서 평생 설교하면서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즉 어린이 교육, 청년 교육 그리고 신학 교육이 그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20년의 준비 끝에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웠다. 그런데 이 제네바 대학은 신학 교육의 센터이자 전 유럽을 향한 선교 센터이기도 했다. 제네바 아카데미는 목회자와 신학자만을 교육한 것이 아니고, 개혁의 신앙을 가진 건실한 평신도 지도자들을 양성해서 성공적인 교회 개혁을 이룩했다. 

우리가 칼빈에게 배우는 것은 신학 교육을 철저히 시킬 뿐 아니라, 진실한 평신도 지도자를 동시에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의 문제는 전혀 신학적 체계가 없는 사람이 허영으로 신학교를 세워서 야심을 갖는 것도 문제려니와, 전혀 준비되지 않아서 교역자가 되지 말고 다른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교역자로 나서는 것도 문제이다. 

실제로 한국 교회의 부실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신학교를 너도 나도 세워서 마치 새로 가게를 차리듯 하고 본인도 신학 이해가 없는 무자격한 사람이 속성으로 키워낸 목사들은, 지금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바르고 철저히 준비되고 소명 있는 영적 지도자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고, 동시에 각계 전문 분야에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평신도 지도자를 키워야 건강한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 

필자는 위에서 칼빈과 오늘의 한국 교회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다. 결국 종교 개혁자들의 구호처럼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한국 교회도 칼빈 탄생 500 주년을 기념해서, 그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삶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교회의 변화를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개혁해 가야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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