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과.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섭리
사실, 이것은 좀더 복잡한 그림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난 주에 공부했던 5과를 한 곳에 종합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림에 보면, 노란 선이 점점 커지는데 이것은 인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로부터 사람이 점점 불어났다. 그러나 인간이 이렇게 점점 더 많아졌지만 그들은 마침내 분산되고 흩어졌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선하고 아름다웠는데, 왜 그들이 분산되고 흩어져야만 했는가?
그것은 지난 주일에 우리가 배운바와 같이 죄 때문이다. 창세기 3장에서의 선악과 사건, 창세기 4장에서의 살인 사건, 그리고 창세기 11장에서의 바벨탑 사건이 인류가 범한 대표적인 죄악들이다. 이러한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이렇게 거리가 멀어진 것을 볼 수가 있다.
가운데 노란색 안에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아브라함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을 이 그림은 말해 주고 있다. 여기 그림에는 아홉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당시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이 지상에 아홉 사람만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있는 이 그림은 하나의 상징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아담 이후로 이 땅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 한 사람을 불렀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그림에서와 같이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이들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림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도 다른 사람들과 그 모양이 똑같다.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가 특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도 우리와 똑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도 거짓말을 했다.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아내를 포기했던 사람이다. 죄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렀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의 부르심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왜, 아브라함을 들어 쓰시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아브라함을 소명하는데서 나타난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만일, 어떤 교회에서 저에게 "우리 교회에 와 주십시오" 라고 청빙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나에게 초청장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초청하는 편지에 교인들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어서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좀 더 긴 편지를 나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여러 가지 아름다운 자랑거리를 좀더 자세하게 그 편지에 기록을 할 것이다. 물론 내가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그런 사람을 초청한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기 12장 1∼3절까지의 내용에 보면, 조금 전에 2가지 종류의 초청장이 있었다고 했는데, 1∼3절까지의 내용은 그들의 공적인 편지와도 같은 성격의 기록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이 속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제 우리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되겠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어떻게 부르셨으며, 그 이후에 삶의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왜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아브라함을 불렀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림을 보도록 하자.
여기 노란 그림의 사람은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의 팔이 어떻게 되어져 있는가를 잘 보시기 바란다. 그가 두 손을 들고서 하나님을 찬미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의 손을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형태로 놓여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우상 문화권의 아브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설명하도록 하겠다.
여기, 여러분들이 보시듯이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그 뒷 배경을 보면 조그마한 땅들이 보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에는 3가지 내용의 언약을 맺으셨다. 첫째는 땅을 주겠다. 두 번째는 자손을 주겠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을 주시는 축복의 수단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을 했다.
창세기 12장 1∼3절까지를 함께 보도록 하자.
창 12:1∼3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조금 전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3가지 약속하신 것들이 1∼3절에 기록되어져 있다.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바로 그를 선택하셨는가? 하는 것이 여기에서 중요하다. 이것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의인이었으니까 택한 것이 아니었겠느냐? 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그가 지도력이 있으니까 그의 지도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를 택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책에 보니까,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우상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택했다고 설명하는 책이 있다.(탈무드)
P. 51에 보면 아주 중요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그것은 여호수아 24장 2, 14, 15이다.
여호수아 24장 2절 :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여호수아 24장 14절 :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장 15절 :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우리가 이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에 사실은 아브라함이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구절을 읽고서 굉장한 충격을 받는 그런 분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왼쪽 상단에 있는 그림은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는가? 하나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다. 참고 계시는 하나님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위대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은 하나님을 발견했느냐?"라고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하고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택해 주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봉사하도록 그렇게 만드셨다. 그리고 이러한 아브라함에게서 나타난 이와 같은 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아브라함 이후에 모든 성경 전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와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 당시에 중동에 있었던 사람들, 특별히 목자와 같이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땅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고 굉장한 기쁨이다.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이고,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가 65세라고 하는 사실이다. 제가 여기에서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 점을 특별히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여러분들의 나이가 75세이고, 여러분의 아내가 65세인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희들에게 자녀를 주겠다"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녀를 갖게 된 것은 이로부터 25년 후에 마침내 자녀를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해서 인류 전체에 축복을 나누어주시겠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인류들이 아브라함과 교통함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그 하나님을 통해서 저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과연 그 이후에 신실하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12장 초반을 보게 되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가나안으로 갔다. 그리고 중반부 이후에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간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당시 애굽에는 논과 밭에 물을 대는 관개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농작물이 풍성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곳에 갔을 때 애굽의 아비멜렉 왕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 대해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였고,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려는데 급급했다. 그가 이러한 위기를 면하기 위해 취한 행동은 그렇게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행동이 12장에서 한번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장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의 예식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몇 마리의 동물들과 새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둘로 쪼갤 것을 명령하신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셨다. 여기에서 풀무와 타는 횃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고 계시는 동안에 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언약예식이라는 것은 쌍방적이다. GIVE AND TAKE,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주고받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세상적으로 말하는 언약체결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는 언약예식은 일방적이다.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시고, 그가 거부를 해도 주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 지향적이 아니라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다. 그런데 그 부르심은 일방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내가 거부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면서 나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내 과거가 어떠했느냐를 묻지 않으시고 언제나 미래에 복된 삶을 살아갈 나를 생각하신다.
이 그림은 창세기의 기원들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족보의 왼편에 있는 계열은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자주 괴롭혔던 이웃 나라들의 기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계열은 의로운 백성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기록된 숱한 전쟁의 사건들은 실상 따지고 보면 친척들간에 있었던 극심한 갈등과 불화에서 빚어진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교재 p.55의 맨 밑에 있는 단락, 5번을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