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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성경대학

Heart of Christ Bible College & Christian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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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과. 광야와 유랑생활

 

이 그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노정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여기에 보면, 아라비아 숫자가 나와 있고, 또 그들이 잠정적으로 머물렀던 장소의 이름들이 나와 있다.  아래에 빨간 줄로 노정을 표시해 놓은 곳과 대강 번호가 맞기 때문에 참고를 할 수가 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내용을 일일이 다 기록하자면 상당히 큰 지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 기록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이 그림을 보면 대략 어떤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보면, 미술가가 그려놓은 실루엣으로 된 그림들을 보면 광야에서 기나긴 여정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왼쪽에 의문부호가 나와 있다.  이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느 쪽으로 건너왔느냐에 대해서 정확하게 그것을 꼬집어서 말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의문부호를 찍어 놓았다.

또 의문부호 바로 아래에 보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상징적으로 나와 있다.

맨 끝에 보면 시내산의 상징인 산과 하나님의 십계명의 상징인 돌판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 라고 하는 한 장소에서만 무려 38년 동안이나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림을 보면, 이렇게 갔다가 다시 밑으로 내려와 가지고 방황과 방황을 거듭한 끝에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게 된 것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 족속들이 사는 땅으로 통과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는데, 사실을 말한다면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예들이고,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혈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 다음에는 모압으로 해서 동쪽으로 우회를 해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13번과 14번에 나와 있다.

그 다음에는 아모리 족속의 끈질긴 반항에 부딪혀 가지고 거기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 전투가 끝난 다음에야 여리고로 건너가기 전에 여기에서 멈추게 된 것을 보게 된다.

사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여행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면 우리는 놀라운 영적인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광야의 여행 도중에 참으로 놀랍고 장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쉽게 따라가게 되는 바알 숭배에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알 숭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개입하지 않은 까닭은, 바알이라고 하는 신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신인데 그들은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바알 숭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광야 여행 도중에 아주 단순한 유목민 생활을 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때때로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때에는 거기에 모여서 과일 열매를 먹는다든가, 그들이 몰고 온 양들에게서 젖을 짜 먹는다든가 하는 정도의 아주 단순한 생활을 해 왔다.  그랬기 때문에 훗날에 호세아 선지자나 예레미야, 그리고 다른 여러 예언자는 "너희들의 과거의 생활 가운데 광야의 생활이야말로 그대들의 신앙을 보수하고 지키기에 꼭 알 맞는 좋은 시기였다"라고 회상까지 했던 것이다.

사해 바다는 깊이가 4,000피트나 되는데다가, 10-15㎞나 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는 강이다.  따라서 이러한 깊은 계곡을 직선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동쪽으로 나가서 넓은 광야를 우회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사정을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을 통과하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가나안으로 향해 왔던 노정들은 울퉁불퉁한 돌들과 황무지, 그리고 사막으로 전개되어 있는 것을 보며 놀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에도 그들이 회상하기를 광야로 여행한다든지, 그 길을 가로지른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기간에 있었던 사건들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즉 백성들은 불평을 하고 있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로 여행을 할 때에 하나님 앞에 많은 범죄를 저질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4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를 했다고 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그들이 하는 행위로 보아서는 도저히 그들을 건질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의 연속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이 광막한 사막에서 건져내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이 지나온 행적들을 가만히 회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걸어 온 것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살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영적으로 적용된다.  우리가 광막한 사막과 같은 세상을 지난 다음에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온 행위나 행적을 본다면 도저히 약속의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영적인 그림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통솔과 지휘 하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오늘날 이스라엘 성지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요단강을 가 보게 되면 기껏해야 8m 정도 밖에 안 되는 좁디좁은 여울목이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그 넓이는 비록 그렇게 넓지는 않다고 해도 상당히 깊기 때문에 여인이나 어린아이들은 헤엄쳐서 단순히 건너갈 수 없는 강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을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하셨는데, 그들이 광막한 광야 40년의 여행이 끝날 시점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될 때에도 다시금 요단강을 열어서 저들로 하여금 들어가게 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세례 요한이 한 그의 사역에 대한 의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 1장 28절에 의할 것 같으면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베다니 위에 있는 요단강 사역은 바로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이 건너간 장소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세례 요한은 요단강 동쪽에서 세례를 주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지 밖에서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지 밖으로 불러내어서 세례를 준 다음에 다시 성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고 하는 것은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끼칠려고 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그들을 다시금 불러내어서 세례를 받게 해서 새롭게 되어 가지고 성지에 들어가게 한다고 하는 영적인 뜻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첫째로 길갈에 자기들의 기지를 구축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길갈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의 의식을 행했다고 하는 사실이다.  하나는 애굽을 나온 이후 처음으로 할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가나안에서 첫 유월절을 지켰다(수 5장).

그 다음에는 여리고를 정복했다.  그리고 여호수아 7장과 8장에 보면 아이성을 점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9장에 보면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맹을 맺은 이야기가 나와 있다.  10장에 보면 남쪽에 있는 여러 성듭들을 여호수아가 정복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1장에 보면 하솔과 그 주변 성읍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전격적인 공격과 정복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사실 12장∼24장까지 지속되는 여호수아의 나머지 장에 볼 것 같으면 여호수아가 땅을 정복했다, 싸웠다고 하는 이야기보다는 그 성지들을 어떻게 여러 지파들에게 분할하는가 하는 땅 분배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다.  여호수아는 전부 24장인데,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압축해서 줄인다고 한다면 고작해야 4장 안에 집약이 될 수가 있다.

이러한 땅을 분배하는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우리는 하나 하나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오른 쪽에 보면 화살표가 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전에 거기에 거주하고 있는 이방 민족들을 정복했다고 하는 표시이다.

또 남쪽에 있는 화살표와 북쪽에 있는 화살표도 역시 이방 민족들을 정복한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에 나와 있는 그림은 이스라엘의 여러 군인들을 규합하기 위해서 소라 나팔을 이용하여 끌어 모으는 그림이다.

가운데 보면, 법궤가 나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칼이 있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이 정복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싸우시는 데 앞장서신 분과 주도권을 장악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그림이다.

사실 12장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러 이방 민족들을 정복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거기에는 상당히 많은 이방 민족들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거기에 보면 가나안의 잔족들이 여기 저기에 무리를 지어서 잔존 세력들이 남아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져 있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바알 숭배가 아직도 여기 저기에 남아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이다.  사사기에 가 보면 바알 숭배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히 자주 언급이 되는데 그때 가서 자세하게 살피게 될 것이다.

그림 8b를 보라.

이 그림은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 사이에 약속의 땅이 어떻게 분배되어 졌는가 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사사기에 의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이 그들에 대해서 여러 차례 공격을 시도해 왔는데, 여기에 보면 공격 시도의 방향이라든가 출처 같은 것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 검은 화살표들이다.

사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들에게서 공격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우연히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라고 사사기에서 말하고 잇다.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러한 공격을 당해야만 했는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버리고 바알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종함을 인하여 그들을 연단시키고 그들이 회개하여 그 패역한 길에서 돌아서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이웃 나라들의 공격을 허용하셨다고 사사기는 증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벌로서 이러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사기 2장 1∼3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왼쪽에 보면, 바알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그림이 나와 있다.  여기에서 이 그림은 굉장히 큰 거인상으로 그렸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큰 것이 아니고 아주 조그만 것을 확대해서 그린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것을 호신구 모양으로 만들어서 각자에게 나눠주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아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을에 타작을 하는 그림이 나오는데 바알 신 앞에서 타작을 하고 있다.  그러면 이들이 바알 신 앞에서 타작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모든 농사는 바알 신의 덕택으로 된 것이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상징으로 그 앞에서 타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바알 신이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바알 상을 어디에다 모셔놓았는가 하면, 대부분이 사람들은 자기 가정에다가 모셔놓곤 했다.  이들이 바알 상을 가정에 모셔놓았다고 했을 때, 어떤 돌하루방처럼 돌을 갖다 놓은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이것은 굉장히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신으로 그들이 믿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바알 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10∼15m나 되는 거구의 상이 아니라 기껏해야 손아귀에 들어가는 조그만 상이다.

지금도 레바논에 가게 되면 바알에 대한 상을 볼 수가 있고 체험할 수가 있다고 한다.  특별히 바알 신전에 올라가는 계단은 높이가 우리의 천장만큼이나 높고, 넓이로 말하면 15m쯤 넓이의 계단을 돌로 쌓아 놓았다.  5∼6m나 되는 통돌, 갖다 맞춘 돌이 아니라 그냥 통돌을 깎아서 만들었다.  어떻게 산더미 만한 돌을 깎았으며, 어떻게 그렇게 큰 돌을 갖다 옮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또 기둥으로 말하면 80피트나 되는 것도 있다.  그리고 기둥 꼭대기에 얹은 대들보도 통돌을 그냥 갖다 놓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바알 신전을 묘사하는가 하면, 바알 숭배라고 하는 것이 뒷마당에서 아무나 대충 대충하는 그러한 사사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한 국가적인 대사요, 온 국민이 달라붙어서 숭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얼마나 종교적인 위협이 되었고 악영향을 끼쳤겠는가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것을 말씀한 거다.


 

p. 73에 보면, 여러 사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사기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그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형벌로 심판하셨다.

셋째, 그들이 그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고 있었다.

넷째, 그들의 신원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구원자, 사사를 세우셨다.

다섯째, 이스라엘은 그 사사가 통치하는 동안은 평안하였다.

여섯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하는 것은 사사가 통치를 하고 다스려 나갈 때에 사사는 전국적인 규모로 통치를 했다기 보다는 어떠한 특수한 몇몇 지파들 내지는 한 지파를 다스리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은 하나로 단합된 민족으로, 국가로 행동했다기 보다는 여러 지파로 갈라져서 각자가 조그마한 독립적인 정치체제로 유지해 나갔다고 하는 것을 결론지을 수가 있다.


 

따라서 각 지파들이 지파 나름대로 사사들이 관할을 하고 나가다 보니까 전부 하나의 나라로써 뭉치지를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외세가 넘본다든지 침입해 온다면 단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막아낼 방비가 전혀 되어 있지를 않았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국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은 아무래도 이러한 모든 지파들을 하나로 묶는 단일체가 필요하고, 또 한 사람의 통치자가 있어서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야겠다는 필요를 절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에 국민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외세가 침입했을 때에 한 곳, 두 곳이 무너져 나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결국에는 민족이 와해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파들을 끼리를 정신적으로 굳게 연합시켜 줄 어떤 정부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었고, 그 해답으로 그들은 왕을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이방 민족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괴롭힘을 당했던 궁극적인 원인은 그들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힘이 없었다.  그들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민족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셨다.  그런데 그들이 그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셨다.

그들이 왕을 바랐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의 힘을 더 의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졌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게 나아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를 하는데,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버렸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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