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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성경대학

Heart of Christ Bible College & Christian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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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과.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론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기독론은 매우 어렵고도 중요하다.  조직신학을 보게 되면 기독론에 관한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2배 이상이나 더 많다.  따라서 기독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면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 그림은 지난 단원인 18과에서 사용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표식에 기초하여 작성되고 있다.


 

먼저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성경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이셨다.  그림에서 검은 선이 양쪽에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시작도 없으시고 끝도 없으신 분,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보면, 신성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신성'이라는 말의 뜻은 그가 완전히 하나님이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서 잉태될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었고 완전한 하나님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라면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왜 안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다, 없다는 말을 유한 자인 우리 인간이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는 참된 하나님이시면서 참된 사람이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그림에 나와 있는 것처럼 영원토록 인성을 가지신 분이셨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소위 영지주의적인 사고방식이고, 양자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창조 이전부터, 그러니까 영원 전부터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은 영원히 인성과 신성을 가지고 계신다.  그렇다면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마찬가지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오실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 있는 그림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①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의 전생애를 통해서 종으로서 봉사하셨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사셨다.  그는 그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봉사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했다.  자신만을 사랑하는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셨다.  죄와 죽음에 머물러 있는 인간을 사랑하셨다.


 

성경은 말하기를, 특별히 신학자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든지 간에 그것은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단순히 모범을 보여 주시기는 사역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섬김의 삶을 사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역사를 십자가 사건 하나에 모으셨고, 그리고 모든 인류의 문제를 한 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해결을 하셨다.  그림에서 보시는 데로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묻히셨지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옛날의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①과 ②를 구분해서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섬기는 것을 능동적인 순종이라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수동적인 순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물론 이 용어 자체가 모호하고 어렵기는 하지만 신학자들은 그렇게 표현을 한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은 우리를 위해 하신 것이고, 우리를 그의 선택된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


 

다음 그림은 좀 더 복잡하게 되어 있다.(그림 19A)


 

그러나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처음부터 영원 전부터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가 육신의 몸을 입으셨던 것이다.  문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신 분이, 그리고 또 보통 사람과 같이 생활하신 분이 어떻게 하나님일 수가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것을 '비하'라고 하는 용어로 설명을 한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그때부터 시작을 해서 그가 부활하기 이전까지를 소위 '비하'라고 하는 말로 표현을 한다.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인간으로 비하되셨다.  물론 이때의 비하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그의 신성을 버리시고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시고 단순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반만 하나님이셨다는 그런 뜻도 결코 아니다.  여기서 비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 기간동안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시고 계셨지만 그것을 언제나 사용한 것이 아니고 그는 겸손하게 모든 일을 수행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통해서 온 우주로 하여금 그것을 본받도록 하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도록 하셨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큰 교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은 온 우주를 만드신 그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우리에게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다.  물론 그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서 신성이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처럼 돌을 굴려놓게 하셨던 것이다.


 

그는 부활하신 다음에 하나님의 면전에 가 계신다.  여기에는 구름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을 'shekinah(셰키나)', 그러니까 자연적인 현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고 승천한 뒤부터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승귀'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그가 부활하기 이전까지는 비록 그가 하나님셨지만 그의 신적인면을 다 사용하지 않으셨는데 이때부터는 그가 온전히 신적인 능력을 다 발휘하셨다는 뜻이다.


 

구름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승천에 관해서 자세히 기록을 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에도 예수님의 승천에 관해서 기록을 하고 있다.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을 하셨고, 또 그들을 축복하셨다.


 

사도행전 1장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행전 1장을 보면 그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상당히 혼돈하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어느 때입니까? 라고 질문했기 때문이다.(보충 설명하기)


 

그들은 십자가를 보면서도,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면서도 여전히 생각하기를 메시아 왕국이 일어나면, 그 왕국은 유대라고 하는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하늘에 계신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을 했겠는가?  왜냐하면 유대 땅에서 메시아 왕국을 이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승천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얼마나 당황을 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이것에 대해서, 즉 메시아 왕국을 유대 땅에서 이루는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셨다.  이들의 마음 속에 과연 그 당시에 예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을 그들은 분명히 깨닫지를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셰키나'라고 하는 구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구름, 그러니까 비가 오게 하는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면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학적인 문제입니다만 겸손한 종이신 바로 그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서로 다른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며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음 그림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단계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그림 19B)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구유에 잉태된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받으신 그림이 나온다.  그 다음에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리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  여기까지가 비하되심의 예수님이다.


 

그 다음에 우리 사도신경에는 없지만 영어 사도신경에는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가셨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리고 사흘만에 그는 다시 부활하셨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셨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때에는 양과 염소를 나누듯이,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듯이 그렇게 심판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 가셨다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예수님께서 지옥에 잠깐 갔다 오셨다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문제이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무덤에 묻히게 되고 거기에 일단 들어가게 되면 부활하거나 나오지 못한다고 믿고 있었다.  특별히 시편 88편을 보면 이와 같은 내용을 볼 수가 있다.  죽음이 다가오는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염려하는 기록을 시편에서 볼 수가 있다.  그가 음부에 묻히게 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잊어버리시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염려가 시편에 나온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가면 더 이상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는 염려가 나온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설명하기를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셔서 죽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머지 않아서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 가셨다고 설명을 한다.  그런데 그것에 관한 어떤 자세한 구절도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역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어진 것이다.


 

다음 그림을 보자.(그림19C)


 

이 그림은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것을 보여 주는 그림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사역을 생각할 때 첫째로 그는 예언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이 예언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하셨다고 할 때 그것이 미래에 있을 이야기만을 예언했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다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언자라고 할 때에는 바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랍비들의 말을 인용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실 때 '율법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하노니'라고 하면서 늘 권위를 가지고서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선지자로써 말씀하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언약에 대해서, 아버지와 우리와의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셨다고 했을 때 이것이 과거의 언약과 다르다는 의미에서의 새롭다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서 그의 구원의 방법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는 은혜 가운데서 일관성 있게 구원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따라서 여기에서 새롭다는 말의 의미는 시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새로운 사건이라는 의미로서 이것은 신약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종으로서 섬기게 하시고 그 다음에 십자가를 지시게 하셨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게 하시고 마침내는 거기에서 사흘만에 부활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점에서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어졌다.  그것으로 완전히 끝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종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4, 5, 6은 15과 p.138에서 우리가 공부를 했다.


 

두 번째 그림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이 쓰는 모자이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신다.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님의 대제사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① 구약의 제사장은 양이나 동물들로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희생제물을 드렸다.  ② 구약의 제사장은 죄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으시고 죄도 없으셨다.  ③ 구약의 제사장은 1년에 1번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다.  ④ 구약의 제사장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제사를 드린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해 주신다.


 

세 번째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의미한다.  신학자들은 예수님은 우주의 왕이시고, 모든 만물의 왕이시면서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말함에 있어서 은혜의 왕, 영광의 왕,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능력의 왕으로 증거하고 있다.


 

네 번째 그림은 우리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인데, 이것은 현인으로서의 예수님, 지혜자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말하고 있다.  그림에서 불은 지혜를 상징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종이시면서 왕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올려도 놓고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지혜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  구약 성경에 보면 지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옛날 고대 사회에서는 지혜란 것을 무엇으로 이해를 했을까?  그들은 우주 전체의 하늘에 신적인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가령, 우리가 어떤 악기로 노래를 한다고 가정을 해 보자.  만약에 우리가 같은 노래를 한다고 하면 똑같은 곡조를 가지고서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서로가 다른 곡조로 노래를 한다고 하면 전혀 화음이 맞지도 않거니와 듣기가 아주 거북할 것이다.  반면에 모든 사람이 한 곡조로써 노래를 한다면 그것은 아주 조화롭고 듣기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지혜에 대한 개념은 지혜를 갖게 되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것은 윤리적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세상 전체가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항상 지혜를 찾았고, 그 지혜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지혜에 따라서 살게 될 때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다른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 모든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난 다음에 랍비들은 지혜가 무엇이냐? 라고 했을 때 이것이 바로 구약성경 말씀이고,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라고 이해를 했다.  따라서 그들이 열심히 구약 성경을 배우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 성경을 지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신약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 결국 하나님과 다른 모든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 이웃과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들은 이 지혜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살피지를 않고 있다.


 

다음 그림을 보자(그림 19D).


 

이 그림은 요한복음 14장에 있는 말씀을 그린 것이다.  요한복음 14장에는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사이에 있었던 의미 깊은 대화를 기록하고 있다.


 

한 번은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와 함게 오랫동안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하셨다.  "네가 만약에 나를 안다고 하면 아버지를 알았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눈은 우리의 눈이다.  우리가 만약에 밑에 있는 종으로서의 예수님,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가 어떤 일을 하신 분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단순히 예수님을 영광스러운 주님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인격과 그의 전체를 바로 보아야 된다.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큰 도전을 받아야 한다.  과연 예수님의 생애가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나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에 큰 도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를 보게 되면 단순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될 때 나의 모든 사고방식이나 행위전체를 그것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가 있다.


 

여기에 있는 구름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셰키나 구름이다.


 

우리가 땅위에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바로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이해할 수가 있다.


 

다음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자(그림19E).


 

바울이 흔히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다.  특별히 이 그림은 옛날 사람들의 관습을 가지고서 묘사한 그림이다.


 

먼저 그림부터 살펴보자.


 

우리는 사실 하나님의 보좌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람이 사용하는 보좌처럼 그리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가정을 해 보자.


 

그 보좌 위에 지금 하나님께서 앉아 계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  그 예수님은 영광의 승리자로서, 왕으로서 계신다.


 

여기에 잇는 그림은 넓은 우주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동그란 것은 지구를 의미한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은 땅과 바다, 그리고 우주 전체를 지배하시는 분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가? 하는 문제는 지난 2과에서 살펴보았다. 


 

이 우주가 얼마나 크냐고 했을 때, 몇 가지 통계적인 것을 말씀드린다면, 미국의 우주 항공사가 지구의 둘레를 돌 때는 1시간에 18,000마일의 속도로 회전한다.  1968년도에 미국의 우주 항공사가 이러한 속도로 여행을 했다.  그러니까 1시간에 25,000마일의 속도로 우주를 돌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 우주 항공사는 1시간에 40,000㎞의 속도로 적도를 돌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우주의 어느 곳에 여행을 할려고 하든지 간에 광속의 빠른 속도로 여행을 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1시간에 한 번씩 이러한 속도로 돈다면 적도를 돌 수가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것은 1/72이라는 속도로 빛이 우주를 도는 속도를 나타낸다.  빛이 1초에 300,000km를 가고, 1년 동안 빛은 1광년의 거리를 간다고 한다.  우리가 우주의 어느 구석에 가려고 하든지 적어도 그만한 속도가 아니면 갈 수가 없다.  우리가 은하계를 가려고 할 때에는 1억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 도저히 거기에까지 갈 수가 없다.  우리의 갈 수 있는 우주의 극한에까지 갈려면 140억년이 걸려야만 거기에 갈 수 있다고 천문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특별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우주는 1억개 정도라고 한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는 능력의 주님은 지금 이러한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으로서 계신다.


 

지난 시간에 다루었던 문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다고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다고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우주에 대하여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은 왕이시면서 또한 종이시다고 하는 사실이다.


 

우주에 있어서 참된 의미를 예수님이 왕이시면서 종이시라고 하는 사실에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에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여러 가지고 노력을 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해답을 찾을려고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서 해답을 찾을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우주에 있어서, 창조에 있어서 존재의 참된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을 수가 있다  만약에 이 세계가 서로 싸우거나 약탈하거나 하는 그릇된 행동을 중지하고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서로 섬기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하면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의 역사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도 그렇게 흘러갈 것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사람들 안에 있는 죄악 때문이다.


 

독일의 '마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2차 대전 때 독일의 잠수함의 지휘관이었다.  후에 그는 루터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 루터교회의 총회장이 되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역사에 또 나타날 것입니까?"  그랬더니 그는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질문한 사람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를 나는 잘 안다"


 

우리는 좀더 실제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유토피아와 같은 이상적인 세상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영원한 세계에서만 가질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꼭 해야 할 사명은 이 세상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도록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얻을려고 하지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들을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님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선포할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데로 우리는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왕권 밑에 우리는 모두가 순종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발 밑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 그림에서 볼 수가 있다.  발에 있는 왕관은 예수님이 왕권을 의미한다.


 

옛날에는 다른 나라를 점령했을 때에는 정복자가 피정복민의 목 위에다가 발을 올려놓는 그런 관습이 있었다.  그 목을 발로 밟는 것이 그 당시의 관습이었는데,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리품이라든지, 기타 모든 것들을 발 밑에 놓는 관습이 있었다.


 

여기 있는 말씀은 에베소서 1장 21, 22절에 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엡 1:21-22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 그림의 내용은 온 우주의 왕은 예수님이시고, 온 우주는 예수님의 발 밑에 있다고 하는 의미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 우주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신다.


 

여기 있는 그림은 죄의 권세를 말한다.  이것은 율법의 권위를 상징한다.  심판의 권위를 말한다.  사탄적인 여러 가지 권능을 말한다.  그리고 공중의 권세, 즉 하늘의 여러 가지 권세들을 말한다.  이것은 사망의 권세를 말한다.


 

어떤 권세이든지 간에 온 우주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의 발 밑에 있다고 하는 것이 신약 성경의 증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이러한 모든 권능들이 예수님의 발 밑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p. 196을 잠깐 살펴보자.


 

여기에는 예수님의 인격에 관한 여러 가지 성경 구절들을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에게 과제물을 하나 드리겠다.  집에 가서 P. 196의 a∼n까지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찾아보고 거기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하여 기록해 보라.


 

한 가지를 살펴본다면, d에 있는 누가복음 19장 1∼10절에 있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난 내용이 나온다.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가 뽕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모습이 굉장히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키득키득 웃었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구절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떠한 행동을 하셨느냐? 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에 사람들에게 가서 어떤 율법적인 것만을 강조한다고 하면 그들에게는 어떤 기쁨도 없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죄인 됨만을 강조한다면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을 것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너는 죄인이다'라고 경고하신 일이 없다.  예수님께서 말하지 않으셔도 그들은 죄임 죔을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대하여 말씀할 때마다 그들의 마음 속에 사랑을 심어 주었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고 예수님을 찾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님을 소개해야 한다.  이것을 그들에게 바로 가르쳐줄 때 그들도 스스로 예수님을 찾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스스로 현명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지적인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아야 한다.


 

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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