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출산 경쟁에 말려든 두 여성, 억눌린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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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낳은 아들들은 모두 12명이다. 그리고 그들은 르우벤으로 시작해서 베냐민으로 끝나는 한 형제들이다. 그러나 야곱은 이 열두 아들을 네 여인, 즉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에게서 낳았다. 레아와 라헬은 라반의 두 딸, 자매였다. 실바는 라반이 레아에게 준 몸종이다.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창 29:24) 빌하는 라반이 라헬에게 준 몸종이다.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창 29:29) 그런 실바와 빌하가 어떻게 야곱의 아이들을 낳게 되었는가?
레아와 라헬의 여종이던 실바와 빌하가 야곱과 동침해서 아이들을 낳는 치열한 경쟁에 말려든 사연을 살펴보자. 라헬은 레아가 아들을 연이어 넷을 출산했는데 자신은 임신이 안 되는 것을 보고 야곱에게 억지를 부린다. 그러자 야곱은 라헬에게 성을 낸다.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창 30:2). 그 말을 듣고 라헬은 예전에 사래가 사용한 방법을 활용한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창 30:3) 이렇게 빌하는 야곱과 동침해서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라헬이 빌하를 야곱의 아내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야곱도 빌하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빌하가 낳은 아이가 야곱의 아이인 것은 분명하지만, 빌하의 아이가 아니고 자신의 아이인 것으로 여긴다. 라헬은 사래가 하갈을 대하듯이 그렇게 빌하를 대한 것이다. 야곱과 레아, 그리고 라헬이 보기에 빌하는 여전히 라헬의 여종이었고, 그저 대리모였을 뿐이다. 라헬이 보기에 빌하는 진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 진정한 어머니는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빌하가 출산했는데, 그 이름을 라헬이 짓는다. 라헬은 빌하가 낳은 아들 이름을 단이라고 지었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창 30:6~8) 여기서 보듯, 라헬은 갓 태어난 아이들을 축복하기는커녕, 오히려 제 한풀이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두 아들을 임신하고 출산한 것은 빌하인데, 빌하는 자기 자식의 이름을 짓는 데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이것은 라헬이 두 아이를 빌하의 자식이 아니고, 자기 자식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 기자는 빌하가 어떤 심정이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하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빌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한다.
이것은 레아의 시녀 실바도 마찬가지였다. 레아는 아들 넷을 내리 낳고 출산이 멈추었는데, 라헬이 빌하를 야곱에게 주어 두 아들을 낳으면서 자신을 추격해 오자 불안했던지 실바를 야곱에게 주어서 역시 두 아들을 낳게 한다. 실바도 제 자식을 낳으면서 자식 이름을 짓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못한다. 실바가 낳은 두 아들 이름을 모두 레아가 짓는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창 30:11~13) 성경 기자는 실바가 어떤 심정이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빌하와 마찬가지로 실바에게도 말할 기회를 전혀 주지 않는다. 빌하처럼 실바도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한다.
야곱과 두 아내 레아와 라헬. 그들이 얼마나 자식 경쟁에 골몰했는지는 레아의 첫째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자귀나무)를 가져다 어머니에게 주는 것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르우벤이 들에 나가서 양을 치며 여러 가지 약초들을 캐서 집으로 가져왔을 텐데, 성경 기자는 다른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유독 합환채에만 주목한다. 르우벤이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서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다는 것은 출산 경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레아와 라헬 사이의 출산 경쟁은 계속되었는데, 라헬은 레아에게서 합환채(자귀나무)를 얻어서 임신하려고 애를 쓰고, 레아는 귀한 합환채를 라헬에게 주고 대신 야곱과 동침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렇게 해서 레아는 다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데, 아이들 출산에 레아가 부여하는 의미가 매우 특이하다.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창 30:18~20)
우리는 레아가 다섯째 아들을 낳고 하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한다. "레아는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실바가 낳은 두 아들을 레아는 제 아들들로 여겼지만, 자신이 잇사갈과 스불론을 낳으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지 못해서 입양을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제가 낳은 아이처럼 애지중지하다가, 막상 자기 자식을 낳으면, 입양한 아이를 남의 아이 취급하는 것과 같다. 아니, 레아는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저 남편 사랑을 얻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바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종록 / 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