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과. 주기도문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주기도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의 방법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시작을 하면서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그림 26B를 보시기 바란다. 이 그림은 주기도문에 있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림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오늘날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라고 하는 복수형으로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공동체로서의 우리, 가족으로서의 우리를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 오늘 먹을 음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가?
그리고 언제나 여러분은 주신 바 음식에 대해서 감사를 하시는가?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 않겠는가? 아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먹을 것을 주신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를 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기도를 하든, 안 하든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면 도대체 그 기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는 중요한 진리가 있다. 오늘날 주기도문을 드리지 않고도,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고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양식을 받고 있다. 그들은 그저 당연히 주는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서 받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기도를 하는 이유는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이것을 주시는 분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단순히 하시는 그 말씀 속에 아주 깊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사탄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하는 전투병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주기도문은 더욱더 의미가 있는 말씀이 되어 진다. 우리는 영적으로 최전방의 군인이다. 우리는 이 전쟁을 회피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뒤에서 공급해 주신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전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외치는 것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 과는 사탄과의 전투를 주기도문에 비추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과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사탄은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그림 27'에서 살펴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그림 윗 부분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내용이고, 아랫 부분의 그림은 사탄의 나라에 관한 내용이다.
그림 맨 위의 왼쪽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 가운데서 계시하시고 역사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른쪽의 그림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삶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분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사신 것과 같은 종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원하신다. 물론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기를 원하고 계신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말씀에 의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직통 성령에 의해서 해결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성령께 응답 받는다고 한다면 자짓 잘못하면 신비주의에 빠지고 결국에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응답을 찾을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받는 성령의 계시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의 다른 왕국이 있는데 그것은 아랫 부분의 그림과 같이 사탄이 왕국이다. 이것은 곧 육체의 왕국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랫 부분의 왼쪽 그림은 육체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마음의 그림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언제나 생각을 하고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곧 사탄의 생각이다. 사탄은 피조된 세계를 수단으로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데 그들로 하여금 자신만을 위하여 살도록 유혹을 한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작은 마음들을 진리의 척도로 삼아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따라서 사탄은 말하기를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위한 힘", "자신을 위한 위치", "자신을 위한 이익", "자신을 위한 쾌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말고, 오직 나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라고 유혹을 한다.
과거 로마 카톨릭에서는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육체적인 소욕은 단순히 성적인 범죄만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이라는 것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사는 삶을 말한다. 모든 것을 내가 가질려고 하는 생각이 육체의 소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탐욕이 바로 우상 숭배라고 가르쳤다. 탐욕을 가진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라는 것이다.
이 그림을 중심으로 좀더 간단하게 주기도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뜻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우리의 생활이 남들을 위하여 섬김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중심으로 육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또 어떤 영광이나 죄의 권능 아래에 살지 않는 것을 말한다.
p. 283의 두 번째 간구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씀도 주기도문에 있어서 중요한 내용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의 왕국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왕국이기 때문에 그렇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이다. 또 사탄의 뜻에 순종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우리의 육체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 바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의 뜻이기도 한다.
앞의 두 기도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는 말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이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라는 말은 단순히 미래에 있을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왕국이 힘있게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어떤 인간적인 소욕을 다 버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다스려지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쓰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영적으로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이 싸움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그러니까 우리의 욕심을 따라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일용할 양식에 급급해 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봉사와 섬김의 삶을 제대로 할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자칫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인 자세를 비판하기가 쉽다. 예수님께서 실제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보다 중요한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수 있을까? 이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 사람을 창조하시고 부르신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 자녀됨이 타당한가의 자격심사를 위해서 어떤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셨고, 있는 그대로를 용서해 주셨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점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섬기도록 원하고 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점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두 가지 주기도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나 이 두 기도는 둘로 나뉘어져 있지만 사실은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우리는 얼마나 자주 유혹을 받고 있는가?
사실 우리는 매일 이와 같이 시험을 받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매 순간마다, 매 초마다 우리는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다.
이제 문제는 우리가 주님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사탄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이다.
결국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하나님, 우리의 영의 눈을 뜨게 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섭리의 손길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또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기도문의 마지막에 보면,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다른 번역으로 말하면 "악한 자에게로서부터, 사탄에게로서부터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뜻이 된다.
어떤 사람은 이 내용을 "하나님께서 불쾌한 것들이 내게 다가오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이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떤 문제도 없이, 어려움도 없이 항상 편안한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들에게는 매일 매일 여러 가지의 어려운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면 할수록 우리들에게 많은 시험과 환란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너희가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한다고 말씀하신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도 한국교회가 그동안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겪어왔기 때문이라고 교회 학자들은 말한다. 사실 교회가 너무 편안하면 영적으로 잠들기가 쉽다. 서구의 구라파 교회가 침체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주기도문에서 끝 부분에 "대개"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헬라어로 "왜냐하면"이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발견해야 할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주님께서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계셨을 때 해결하셨듯이 우리들도 그와 같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될 때에 주기도문은 보다 의미있는 기도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