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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응답받는 기도로

믿음 소망 사랑

기도로 물질로 손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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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 대부분이 강단에서 목회자들(특히 부흥강사들)이 말씀선포 때 말씀 대목마다 "할렐루야"를 연발하여 청중의 '아멘'을 유도하는 것을 늘 볼 수 있게 된다. 물론 회중을 '아멘'을 하게 하므로 말씀을 확신시키고 말씀을 시인케 하고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을 법하다. 그러나 "할렐루야"라는 말의 본래의 뜻을 왜곡하고 그 용도를 부적합하게 영탄법적으로 무절제하게 남발하는 것은 말씀선포의 본 뜻에서 보거나 강단 기능으로서도 적합치 않고 또한 "할렐루야"라는 말의 뜻으로도 바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원래 "할렐루야"는 히브리어 음역으로 '하랄'(halal:찬양하다)과 '예호바'(Yhvh)의 단축형인 '야'(Yah:여호와)의 합성어, Hallelujah로서, 그 기본형은 "여호와를 찬양하다"(Praise the Lord)(시119:164, 대상 16:36, 시117:1)인데 시편 135:3, 147:1에 핵심적인 표현이 기술되어 있고 신약에는 계시록에 몇 군데 볼 수 있는 이 용어는 예배의식의 형식이었으며 성전 예배에서 사용된 찬송들의 모음에서 유래되었다(시106:48)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할렐루야"는하나님을 찬양(송축, 칭송)하는 시가적 관점에서 사용되었고 오늘날도 그렇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씀선포(강론) 중에 "할렐루야"를 연발하여 '아멘'을 유도학 인위적으로 말씀의 수용을 강제적으로 촉구하는 듯한 용법은 잘못이다. 설교는 영감된 말씀을 감화력을 가지고 선포할 때 성령님의 역사를 포함한 말씀의 영감성은 회중이 믿음으로 말씀을 시인하고 겸손히 수용할 때 영적 감동이 전이되어 자연적으로 말씀 앞에 "아멘"으로 화답의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절마다 "할렐루야"를 호창하여 말씀의 선언적 성격에 맞지 않는 "하나님을 찬양하자"(할렐루야)라는 말을 돌발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 설교는 말씀의 선언이며 강론으로써 예배의 구성요소로는 하나님의 임재적 요소이다. 반면에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응답적 또는 반응적이며 환호적으로 조물주를 향한 화답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씀선포는 신적요소이며 찬양은 인적요소이다. 이러한 두 차원이 일정한 단위 시간에서 말씀선포와 찬양이 동시적으로 교차 시행될 수 있겠는가. 예배 구성요소의 논리적 기능으로 보면 설교는 오직 말씀선포이고 찬양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환호적 송축으로서 그 전개에서 구분이 되어야 하고, 따라서 "아멘"은 말씀 앞에 회중이 자원적으로 영적 교감을 고백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말씀을 통한 성령님의 전적 역사를 신뢰하지 않고 인위적, 작위적으로 감동과 반응을 유도하는 것은 회중의 흡인충동성에 호소하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청중의 "아멘" 소리가 적거나 작으면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중복 호창하여 격앙된 소리로 "아멘"토록 연동시키는 것은 종교심성적 욕구에 성취감을 주려는 기복신앙의 발상에 기인된 것으로 볼 수 있기에 시정되어야 한다.

교인간의 대면시에 "할렐루야"로 인사말을 하는 경우와 또는 초빙강사를 설교단에 안내하며 소개할 때 손을 들어 "할렐루야"로 환영하자는 제안을 하는 경우나 또한 전화를 할 때 수신자의 첫 말이 "할렐루야"로 응답하는 예를 겪을 때가 있다. 이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굳이 합리화 한다면 신앙심 깊은 사람이 모든 말에 앞서 대인 관계에서 "할렐루야"(하나님을 찬양합시다)를 제안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사법은 대인관계의 윤리적 행위이고 "할렐루야"는 대신적 관계에서 신앙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인사말 대용어로나 설교자가 설교단에 설 때 "할렐루야"를 호창하여 환호적 표현을 하는 것은 윤리의 차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그 분만이 영화로워야 할 자리에서 사람을 환호하고 높이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불경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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