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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성도의 교제(내용)

 

 

212, 246, 483.

 

 

"(1:4-6)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전날 술을 마시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은 화가 난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함께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서가던 남편이 갑자기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지나가던 트럭 운전사가 깜짝 놀라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 이 바보, 멍청이, 얼간이, 머저리, 쪼다야! 길 좀 똑바로 건너!"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아내 "당신 아는 사람이에요?" 남편 "아니." 아내 "그런데 당신에 대해 어쩜 그렇게 잘 알아요?" 성도 여러분들은 배우자에 대해서 무시하려는 이런 마음이 깔려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가정은 참으로 암담한 것입니다. 교제는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교제는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진정 교제를 원한다면 상대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복음 안에서의 교제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서의 교제에는 그리스도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는 사랑의 교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제를 말하면서 그리스도를 뺀다면 그것은 사기꾼이나 이단들의 교제뿐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성도가 행하는 교제의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예배하는 모든 자들과의 아름다운 교제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모든 성도들끼리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만 합니다. 교파의 벽을 헌 사랑과 이해의 관계는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모든 성도들과 모든 교단들이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 서로 사귐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 교제 속에서 서로간의 충분한 이해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상대의 상처를 덧내기보다 싸매고 감싸서 치유를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세속적 수준의 교제를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은 성도의 참다운 교제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제(koinwniva)'에는 '공동의', 또는 '공유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제는 내가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내가 받음으로 이루어지는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픔은 치유 받고 기쁨은 나누는 것입니다. 교제의 본질은 주고받음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받음으로 함께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2:42)"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모여서 정담을 나누고 차를 나누고 같이 여행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것이 신약이 보여주는 교제입니다. 곧 서로의 관심과 나눔, 그리고 기쁨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둘 사이에 쌓인 악은 제거되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서로에게 풍성하게 채우는 교제입니다.

 

저는 우리와 협력하고 있는 교회나 선교사들과도 이런 아름다운 교제의 꽃들을 활짝 피어내기를 원합니다. 이 일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리스도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결코 쉬어서는 안 되는 주님의 일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성도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담임 목사에게 한 푼이라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여러분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체면유지도 될 것이지만 그러나 없는 교회 살림에 다른 교회를 돕고, 선교사를 돕자는 일에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따라 주신 것은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는 시작입니다. 그러나 조금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제를 나누고 있는 분들이 한국에 있든 소련에 있든 어디에 있든 다른 성도로부터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그들로 느끼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께서 주신 산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께 가까이 가며 그를 따르는 자들임을 서로에게 증거해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에서와 같이(3:10) 그리스도의 수난과 몸과 피의 신앙으로 참예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10:16). 그리하여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닌 성령님께 우리 모두가 온전히 지배되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성도 상호간의 교제와 기도와 감사가 넘치는 교제가 저의 소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 서로간의 밀접한 교제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1:7-8,2:2,4:2).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이시며 모든 성도의 교제의 출발(첫날)이고 마침(이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떠나서는 어떤 교제도 생명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를 잘 대해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억울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손해 보게 하는 그런 사람들과의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고 게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악한 중에 사랑을 입고 그리스도 d나에 들어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손으로 재판에 붙이고 정죄 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뿐만이 아니라 구원하시고 또 사랑의 교제를 이끄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염치를 아는 자라면, 자신이 그에게서 생명을 부여받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아는 자라면, 그가 가리시는 십자가의 길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사랑의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그를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그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상한 이웃들에게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비판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면 내가 먼저 죽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죽이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자기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어떤 대상을 닮는 "적대자와의 동일시 현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악당이라고 비판하고 정죄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그 악당보다 더 악당이 돼있는 것입니다. "저 놈은 죽일 놈이다." 미워했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그 악당을 닮아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생 딸은 자라서 기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면 그리스도를 닮습니다. 그것은 신분과 계급을 초월하는 교제입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자들은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1:24)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늘 가까이 함으로 그리스도의 생각이 자기 자신을 지배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로 살고 부활한 자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와 함께 우리는 천국시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3:26). 그러므로 이전에 우리 서로를 갈라놓았던 미움들이 흔적 없이 지워져 버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 교제를 통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해 끊임없이 자라가게 돼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제를 소중히 여기며 우리 삶의 시시콜콜한 일들을 모두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나와 이웃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나도 함께 기뻐하며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요, 목표요, 내용이 되는 살아있는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제는 서로 돕는 협력의 교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에는 내 마음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교인들을 포함해서 마게도니아 교인들은 기쁨으로 감사와 기도함으로 이 일을 행했습니다(고후8:2, 3). 이 일은 억지로 한다 해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더구나 기쁨으로 한다면 아름다운 은쟁반에 옥구슬 같은 아름다움의 조화일 것입니다. 그들은 형편 이상으로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소유이상을 바쳤습니다(고후8:3). 그들에게 있어 가난함이 그들의 선한 일을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 일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는 것입니다. 내 돈은 은행 금고에 묶어두고 "하나님 부잣집 박 장로의 돈주머니를 풀게 해 주세요" 기도는 악한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 죽기 위해 갔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죠? 그런데 군대에 가보니 군대에서 죽는 것이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가사 제대를 하려고 육군병원에 가서 X-ray 검사를 해보니 결핵균에 정지 상태여서 제대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감사도 잠시였습니다. 며칠 후 한 부대원 가운데 삼대독자가 있어서 입대 6개월 만에 제대를 하게 된 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축하를 해주어야 하지만 제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 "어떤 놈은 팔자 좋아 6개월 만에 제대를 하고. 30개월을 꼬박 채워야 하는 난 뭐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한심한 것은 그것을 끝내 사과도 못하고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교제의 실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불신자들에게 보여줄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믿는 자라면 얼굴을 뜯어 고치기 전에 속사람부터 변해야만 합니다. 특히 말부터 생각 좀 한 후에 밖으로 뱉어내는 훈련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개망신을 당하게 돼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람과 은밀히 한 말이라도 나쁜 말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전해지게 돼있습니다. 앞에서는 같이 흉을 봐놓고도 나가서는 입이 근질거려서 누가 널 흉봤다고 고자질하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교제에서 가장 조심할 것이 입단속입니다.

 

우리의 교제는 주고받는 일에 "참여하는" 교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4:15). 이 교제에서 사탄이 애용하는 것이 성도 서로간의 이간질입니다. 이 이간질에 걸리면 강대국도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돼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사역에 동역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인내하면서 "처음부터 이제까지" 그리스도의 날까지 조심 또 조심하면서 가야만 합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날로 새로워져야만 합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자. 온정을 베푸는 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고자 하는 자, 헌물을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 이런 자들이 결코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성령의 뜻에 순종함으로서 가능했습니다(1:5). 우리 역시 그러해야합니다. 진정한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며, 실족치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면서도 남의 실족을 가슴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 실족한 이웃이 있을 때 정죄 하거나 비판하기보다 그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함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도록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교제입니다. 세상 가운데 있으면서 세상이 어두움을 버리고 빛을 향하여 나오도록 인도하되 결코 어두움을 따라가지 않는 교제입니다.

 

그래서 '그 첫날부터 그 이제까지'의 의미가 더욱 새롭습니다. 그 첫날은 나로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출발한 역사적 기원을 이루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에 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시작함으로 죄에서 분리되어 죄로부터 영원히 멀리 떨어지게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중지되고 영생이 시작된 날이었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됨으로 내 인생의 새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내게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달림으로 끝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역전의 인생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내 인생 최상의 새벽을 여는 기원이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 ,,부터'의 네 낱말이 가지는 의미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첫날에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은 '그 이제,까지'가 가지는 의미인 '그 때로부터 내 인생의 종점 영원한 현재 속에 살게 될 천국에 이르기까지' 이 불변의 진리를 따라서 그 의미들을 삶으로 증거 해내야하는 삶이 되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된 혼돈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하는 천국시민으로서 우리가 진리요 빛인 것을 증거 해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제는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의 교제요, 천국을 위한 전투하는 교제입니다. 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고는 이 교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속적인 생각, 목적, , 생활 방식 등에서 분리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빛과 어두움 모두에게 좋게 할 수는 없습니다(고후6:14). 그러므로 우리의 교제는 어둠의 세력과의 전투하는 교제입니다. 이것은 죽고서야 사는 교제입니다. 성도들은 서로가 공동의 적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목적은 복음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늘나라 시민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이 있고, 복음에 도전해 오는 외부의 악의 세력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실력으로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은 주님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의 기도를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에 간섭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사소한 나의 시시콜콜한 사건 하나하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며 계속적으로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변화시키셔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끼치도록 사랑으로 설득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사랑할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것과 같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신앙생활이 외롭고 답답하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또 다른 성도와의 이 복된 교제를 멈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땅의 통치를 위임받은 자의 직무유기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시고 맡은 일에 충성하셔야합니다. 우리가 정말 성도라면 성도간의 교제로 인한 기도와 감사가 끊이지 않아야만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에 속한 사랑이 아닌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일의 열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열매를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님께로 돌아 올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제는 성도들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불가항력적인 능력과 모든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세상에 드러냄으로 세상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으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에 의존해 사는 자들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역사 하시며 또 우리가 사랑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분과의 교제를 지속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죽고 순종하는 곳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교제입니다. 그 모든 것을 함께 모으시며 일을 이루시는 분은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성도의 온전함의 능력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묶어 두신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된 그리스도의 뜻을 헤아리고 그를 따르는 순종만이 성도의 복이요 지혜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 중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지한 우리와의 교제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한다.'는 말씀 속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그 신비를 완전하게 이해하고 깨우친다는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게다가 그를 배신한 죄인인 우리들에게 그분과의 교제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은혜요 기적입니다. 더군다나 그 교제를 통해 그분이 만족과 기쁨을 얻으신다는 것은 더욱 놀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자신과의 이 놀라운 교제를 원하신다는 깨달음으로 순간마다 자신을 사로잡는 인생보다 더 지혜롭고 복받은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을 바랄 때까지 계속해서 기다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이 복된 교제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당신의 중심에 세우시기 바랍니다. 십자가가 아닌 다른 어떤 조건으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19)."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생명을 소유한 자는 자라가야 합니다. 그 성장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고 성도의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성도의 공격입니다. 이 땅에 대한 정복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세상은 악한 자들이 권세를 쥐고 있고, 속고 속이고 더러움으로 덧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우리를 의와 거룩으로 불러내셔서 성도의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비록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정직과 겸손과 온유와 자비와 절제와 사랑과 생명의 진리와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 유혹과 핍박을 물리치고 의와 거룩과 빛으로 자라가라고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제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공격이요 방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그의 나라를 넓혀 가는 우리의 복된 삶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주로 모신 자로 우리 앞에 닥친 모든 환경과 사건을 책임지고 정복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 사명을 잊지 않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 모진 환난과 시련 속에서도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를 늘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성도들 사이에 아름다운 교제를 통하여 함께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의 구호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여기 모든 성도님들 이 확신 속에서 모두 다 그날까지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교제를 한답시고 친목활동이나 이익집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우리의 교제는 수평적이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수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지체로 묶어두셨고 각각의 지체들에게는 서로 돕도록 각각 다른 은사와 재능들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를 돕고 연락하고 연합하는 이 교제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일가친척은 물론 모든 이웃들까지 이 복된 교회로 불러 모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우리를 그렇게 복되게 부르심이 어찜이니이까!? 어인 은혜가 그토록 크다는 말입니까!? 우리 교회가 이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복된 축제장이 되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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