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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1:1-2)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다른 서신과는 달리, 자신을 '사도'라 말하지 않고 '종'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종(둘로이)'은 문자적으로 '노예'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바울이 이 '종'에 '주'를 대비시키면서 너무나 행복해서 마치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사실 내게 나를 소유한 주인이 있다거나, 내가 남의 종이 됐다면 쿠데타 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굳이 종이라는 말로 죄의 공포로부터 해방된(롬 6:18, 22) 자로서 그리스도께 헌신하려는 의도와 기쁨을 표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의 이 의도성은 1:1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을 강조하는 데서 분명합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는 바울의 주님이시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청지기)이고, 피조물이다.'라 외치고 싶은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극을 달리하면서도 놀라운 신분변화를 뜻하는 복된 낱말들입니다. 이 둘은 깊이 묵상하면 할수록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말입니다.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관계를 '주와 종'의 관계로 표현하면서 은혜와 평강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종'과 '주'가 왜 그리 감격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근원부터 알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의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어있었던 자'라 말합니다(엡 2:1). 여러분 허물과 죄가 뭡니까? 도대체 죄가 뭐길래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창3:에 나오는 선악과의 사건부터 풀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음으로 인류최초의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왜 하나님은 그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심어 놓으셨는가? 처음부터 심어 놓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는가? 왜 열매하나 먹은 것 때문에 인류에게 불행이 오게 하셨는가? 얼핏 보면 별일도 아닌 사건을 갖고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심각해하시는 걸까? 이 문제를 풀게 되면 우리는 죄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갖고 계신 거룩한 성품을 인간에게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만드신 에덴동산의 관리를 아담에게 맡기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물론 그 일은 천사를 시키거나 필요하다면 다른 피조물을 만들어 시킬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획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산을 자신의 성품을 물려주신 인간에게 맡기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통치자인 '주'로 존재하시고 인간은 그의 지배를 받는 '종(청지기)'으로 두신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지으신 세계의 창조질서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그 질서 곧 하나님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가 되시고 인간은 그가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관리할 '청지기(종)'로 존재하는 것이 창조질서이고, 인간의 복이고 또한 영광이었습니다. 그런데 창3:5에 보면 사탄이 하와를 유혹합니다. 그 때 사탄의 말 중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최초의 언약인 절대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창 3:1)..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는 질문으로 하와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불어넣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질시켜서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어기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은 "(창 3:4-5)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유혹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무엇이고, 그것을 따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악의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의 청지기로 명받았습니다. '에덴'은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즐거움, 기쁨, 위로가 있는 낙원'입니다. 그 행복은 하나님은 '주'로 인간은 '종(청지기)'로 존재할 때만 보장된 것입니다. 에덴은 인간들이 이 질서 안에서 살 때 위로와 기쁨과 행복이 영원히 보장된 곳입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볼 때마다 이 사실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종'의 자리에 있어야할 인간이 '하나님의 법이 무엇이든 난 내 멋대로 살겠다.'는 쿠데타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고 인간이 '주'가 되겠다는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주'와 '종'의 관계를 뒤집고 자기가 주가 되겠다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내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겠다는 겁니다. '왜 하나님만이 주가 되냐? 나도 주가 되고 신이 될 수 있다.' 그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 최초의 범죄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스스로 깬 것입니다. 

선하다는 게 뭡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선입니다. 선은 인간이 자기가 마땅히 설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면서 하나님 편에 서면 선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악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축복의 나무였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볼 때마다 자기가 하나님의 청지기인 것을 깨우치고 자기의 설자리를 깨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의 위치를 벗어낫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주와 종의 창조의 질서'를 깨고 인간이 주가 되려고 한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깨우치는 것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바로 원래의 창조질서대로 돌아가는 것이 복음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먹고 안 먹고는 내가 택한다. 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 바로 불순종의 악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마25:26의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은 1 달란트도 남기지 못한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가 장사꾼으로서의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적 이기적 사고입니다. 하나님이 먹으라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왜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심어 놓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앙이니 어디서든 다 보입니다. 그걸 보면 먹고 싶고 탐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데, 하나님께서 괜히 그랬겠습니까? 여러분 그 나무가 주는 메시지가 도대체 뭡니까?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내게는 주가 계시다. 주님만이 내 삶의 법칙이고 기준이다. 그 법 안에만 나의 기쁨과 위로와 복이 있다.'를 늘 잊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안 먹고는 내 자유라는 것은 내가 주가 되고 하나님을 종으로 삼으려는 악이고 자기중심적 이기심'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어찌 됐습니까? 주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서 마귀의 종'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산자가 죽은 자가 됐습니다. 영광의 몸이 썩은 시체가 됐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절대명령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죄의 근원은 이기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범죄가 에덴에서 있은 이후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은 이기심의 종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원죄'라는 것이 우리에게 계속 이어져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것입니다. 이 원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주어진 초자연적인 선물인 위로, 믿음, 사랑, 성결, 의는 소멸되었고 사람과 짐승을 구별할 수 있는 이성과 오성 같은 자연적 선물만 부패된 상태로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시테프 평원에 '스프링버그'라고 하는 작은 체구의 노루가 살고 있답니다. 이 노루는 가끔 대이동을 하는데 처음에는 수십 마리가 발  밑에 있는 풀을 뜯어먹으면서 조금씩 이동하지만 수가 많아질수록 점점 격렬한 행진으로 변해갑니다. 나중에는 으르렁대는 맹수들의 공격이 무서워 많은 무리가 이 이동에 합류하게 되면 앞에 무리가 뒤의 무리를 계속 떠밀어댑니다. 그러면 앞에 있는 무리는 밟혀죽지 않기 위해서 힘차게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뒤에 있는 무리들은 다른 짐승들로부터의 공포가 더해져서 점점 세차게 앞의 무리를 밀어젖힙니다. 그런데 이 수백, 수천의 무리들의 대이동 끝에는 높디높은 절벽이나 소용돌이치는 깊은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뒤에 있는 무리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하여 달리고, 앞에 있는 무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다나 깊은 계곡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각자가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면서 행동한 것이지만 끝내는 무리 전체가 몰살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살려고 행동했는데 결국은 죽음으로 밖에 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선과 의를 행할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의지와는 관계없이 죄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없는 것이 '죄의 종'입니다. 내게는 죄를 거부할 힘이 없어서 죄에 질질 끌려 다니니 죄의 종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망을 면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오직 죄를 해결하는 길 말고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이 죄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 곧, '다 치루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제가 시계를 사러 갑니다. 이 시계 값이 얼마입니까? 5만원입니다. 그래서 5만원을 받은 주인은 제게 '다 치루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노예입니다. 노예는 자기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돈을 영원토록 가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주워도 주인의 것이요, 심지어 결혼을 해도 아내까지도 주인의 소유입니다. 자녀를 낳아도 주인의 소유입니다. 먹고 싸는 것조차 주인을 위해 먹고 싸야 합니다. 싸는 것만 주인에게 싸라면 속 시원하겠지만``. 그래서 노예는 자기 힘으로는 자기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방법은 누군가가 내 몸값을 대신 내주는 것뿐입니다. 누군가가 그리만 해주면 주인은 '테텔레수타(다 이루었다)'라 말하면서 노예문서를 불태우거나 제게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리 능력으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사망의 나라로부터 나를 영원히 건져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죄의 종의 자리에서 은혜가 왕 노릇 하는 곳으로 우리를 빼내오기 위해 우리의 죄 값으로 주님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수고 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에겐 공짜로 허락하신 구원입니다. 우주를 통틀어 가장 존귀하신 분의 피와 생명이 우리의 죄 값으로 지불된 것입니다. 내 편에서는 공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더 할 수 없는 희생입니다. 그래서 죽었던 내가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다 이(치)루었다.'의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고 말합니다(롬6:6). 옛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가 아니라 '죽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이미 지옥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마귀(죄)의 종인 것입니다. 죄가 왕노릇 하는 나라에서 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 죄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던 사람이 바로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죄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우리의 신분이 변화된 겁니다.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 아담에 의해서 깨졌던 주와 종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원상회복된 겁니다. 이걸 성경은 회개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셨을 때 제일 먼저 하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은 이 창조질서를 회복함으로 천국을 소유하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가 되어 나를 다스려 왔습니다. 그래서 실망과 불안과 허무와 좌절 속에서 죄의 종이 되어 지옥백성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회개를 통해 구주 예수를 내 왕국의 왕 곧 주로 모심으로 천국백성이 된 것입니다. 내가 주도하던 통치권을 예수께 넘기고 예수를 나의 주로 모시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셨던 창조질서 즉,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고 나는 그의 종이 되는 창조질서로 원상회복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와 함께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우리도 그와 함께 못 박혔고,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장사지내질 때 우리도 그와 함께 장사지내졌다고 말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이라 말합니다. 전에는 죄의 종이 되어 죄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던 그런 옛사람은 장사지낸바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죄를 이기고 거부할 수 있는 자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내가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라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됐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우리의 찬양주제입니다. 이제 바울의 감격을 조금은 이해가 됐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앵걸이 소년들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자들은 사람이기 전에 흡혈귀들입니다. 앵걸이들이 돈을 구걸해오지 못하면 갖은 매질은 물론 마약에 환각제까지 먹이는 자들입니다. 만원을 벌어오면 이만 원이 안 된다고 매질이고, 이만 원을 벌어오면 삼만 원이 안 된다고 매질합니다. 온 몸은 매를 맞아 찢긴 상처에 퍼렇게 멍든 핏자국으로 얼룩져서 나을 새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앵걸이 소년이 어느 날 자고나서 눈을 떠보니 말끔히 목욕이 돼있고 그가 상상도 못했던 왕자의 옷이 입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빛나는 보좌에 앉으신 왕이 친히 자기에게 '너는 이제 내 아들이라'고 그럽니다. 그게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왕자로 대접해주는 것만이 아니라 왕 자신과 동등한 권한을 가진 한 분을 보증인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어찌 입이 째지지 않겠습니까? 너무 좋아 얼싸안고 방방 뛰면서 함성을 질러대야 맞습니다. 더러운 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내 주가 된 다음에는 내가 의를 행할 자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범죄하고 내 허물이 드러나고 실패할지라도 나는 절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내 편인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셨고, 그리스도가 내 죄 값을 지불하셨고, 성령 하나님이 이를 보증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성삼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어떤 죄라도 이길 것을 확신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가 되신 복음입니다. 이제 마귀는 절대로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다만 조금 겁만 줄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악하고 거슬리는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임하는 곳마다 병든 심령이 치유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승리가 보장된 영광의 미래가 있습니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에서 다시 사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망과 사탄에 대한 우리의 승리이고, 모든 절망과 저주와 고통에 대한 우리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 예수의 지체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사실을 선포하고 누리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가 되었고 우리가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을 사랑하고 기도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이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병든 이 세상을 치유해 놓을 것입니다. 바로 이 감격을 바울이 맛보고 있고 저와 여러분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이 감격에 초대된 자들입니다. 주와 종의 질서, 이것은 우리가 영원토록 지키고 찬양할 창조질서의 원리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와 종'의 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이 복음이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날 위해 죽으심으로 나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고백 속에 담겨있는 놀라운 능력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을 늘 확인하면서 푯대를 향해 기뻐 뛰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는 주가 계시다."는 진심어린 항복 속에서 여러분의 소유와 목숨, 자녀까지라도 그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사셔야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모든 것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나의 주됨을 고백하시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중심으로부터 기쁨과 감격 속에서 드리는 항복이 있을 때 하늘 문이 열려서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거부하고 그가 우리의 주되심을 거부하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악한 행위는 잔인할 정도로 엄격하게 잘라버리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고 그가 원하실 때,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언제 어디서나 목숨까지라도 그에게 드릴 준비를 갖추고 사셔야 합니다. 

성도의 모든 헌물과 봉사조차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 차원에서 우리는 반드시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물론, 오락을 금하고 헌물을 멋대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선을 악으로 갚아오는 자들을 사랑과 인내로 품어야합니다. 이것이 아담이 파괴했던 창조질서, 하나님이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회복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의 작은 표현이요, 그분이 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복된 신앙고백입니다. 나의 시시콜콜한 삶 모두가 그리스도가 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여야 합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나는 죽고 주만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종의 삶이요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입니다. 우리가 행한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보다 우리에게 복된 것은 없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가장 큰 욕망이 되어야합니다.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종의 목표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항로에서 매 순간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가 되게 하셔야 합니다. 이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정의요 선한 것이고, 내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악이요 사탄의 역사라는 악한 생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어디를 다녀오는지 단체로 전철에 올라탔습니다. 전철이 가는 중에 자리가 나니까 선생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저는 좀 언짢기는 했지만 잘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아이들 위주로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이 너무 이기적이 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자리가 또 나니까 다른 어른들은 몰라라 자기 아이들 자리부터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것이면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어야 옳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개탄스러운 지하철문화는 열거할 수 없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주가 명하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 보십시오. 이기심이 가득 차있고 자기 자신만 알고 마누라야 허리가 휘든 말든 남편이야 밖에서 죽든 말든 좋은 것만 사다주면 되고, 이웃이야 굶든 죽든 상관치 않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이라면 어떻게 돈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세상지식이 우릴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자기중심적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되는 허물과 죄를 극복해야만 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참된 자유인으로서 남의 섬김을 바라지 마시고 스스로 종이 되어 먼저 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뜻 이전에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가 나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때로는 사탄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질 때도 있겠지만 이를 악물고 주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의 주이신 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롬8:37)" 이기실 줄로 믿으시고 푯대를 향한 여러분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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