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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성경대학

Heart of Christ Bible College & Christian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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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과. 구원받은 자의 책임

 

오늘 공부하고자 하는 구원받은 자의 책임은 그리스도인들의 구체적인 현장의 삶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림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사도행전에 있는 내용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이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메시아의 왕국은 유대 땅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소망과 꿈을 다 무시해 버리셨다.


 

신약성경은 우리들에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아무런 구별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땅 끝까지 그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이방인들 가운데 구원받게 될 사람들은 유대 땅에 와서 개종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더구나 당시의 랍비들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들의 땅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셨을 때 그것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컸던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 말씀을 용납하지 않았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한 번 생각해 보자.


 

그 당시 유대인들은 생각하기를 메시아가 올 때에는 하늘에서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굉장한 모습으로 올 것으로 기대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사실이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 당시의 목자들의 신분은 죄인들과 같이 소외되어졌던 직업으로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그 당시에 율법을 지킬 수 없었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 뿐만 아니라 목자들은 이방인의 땅에까지 가지들의 양을 몰고 가서 거기에서 풀을 먹이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이유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랍비들에게는 죄인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 먼저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땅 끝까지 가서 나의 증인이 되라고 했을 때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맨 밑에 있는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원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로마에 이르기까지 원이 점점 커져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사람은 무엇을 증언해야 하는가?


 

바로 위에 있는 그림이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람이 증언해야 할 내용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람이 증언해야 될 내용은 왕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음과 그 분이 겸손의 종으로 사셨던 삶,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무덤에서의 부활을 증언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다시 오신다는 이 내용을 증언해야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복음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면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유대인 회당이었다.  왜냐하면 회당에 모이는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메시아에 관한 대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바울은 그런 유대인 회당에 가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아, 그가 오셨음을 설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메시아가 어떤 분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당신들이 기다렸던 왕이 오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가르쳐 주었다.  그는 또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외쳤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죽는다는 것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더구나 소외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우리들 가운데 살아계신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에 대해서 이해하지를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 하나님께서 종의 모습으로 사셨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그분은 부활하셔서 우리들 가운에 살아 계신다.  이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증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사람이 반드시 증언해야 될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로서의 선교이어야 한다.


 

다음 그림을 보도록 하자.


 

p.288에 있는 그림은 우리 성도들의 제사장직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 성도들이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옳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구역에서 보게 되는 제사장의 개념을 보면 이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러나 시편을 보면, 누구나가 하나님 앞에서 찬양을 할 수 있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제사장직이라고 하는 것은 그밖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서 이해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교회라는 개념이 너무 좁다는데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교회에 가서 청소도 하고, 교사 노릇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이런 것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좁게 생각을 한다.


 

우리가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은 좀 전에 이야기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그림이 바로 성도가 제사장 노릇을 한다고 하는 개념을 잘 가르쳐 주고 있다.


 

맨 위에 있는 오른쪽의 그림은 언약의 상징이다.  세 번째 것은 규정들을 말한다.  율법들 가운데는 규정들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에게 봉사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아래의 그림과 같이 해야 한다.


 

아래의 그림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있다. 여기에 보면 여러 나라들의 그림이 나와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왕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림이 있다.


 

주변을 보라.  하나님 중심으로 주위에 노란 것이 있다.  이것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는가?  이것은 교회에서 설교하는 강대상을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 각 그림들을 보면 위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그림이 있다.  가운데를 보면 까만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의 모습이다.  그가 두 손을 들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각 사람으로부터 세 개의 화살이 뻗쳐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위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고, 다른 두 개는 각기 양편으로 공동체 안에 있는 이웃들을 향하고 있다.  그러니까 위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성도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은 기독교의 목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제사장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다.  만인제사장이다.


 

사람들은 제사장이라고 하면 거룩한 것들을 다루는 성직자들로만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이 다 거룩한 것이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은 누구나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찬양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섬기라고 우리를 불러주셨다.


 

노란 것은 구약에 있는 여러 가지의 직업에 관한 것들을 기록해 놓았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직업들이 있다.  이 그림에서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성도로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왕되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위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세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이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놀랍게 변할 것이다.


 

다음에 p.292에 있는 그림 28C를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돈이라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연결시켜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왼쪽에 있는 사람은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이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바퀴를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가 사과를 재배한다고 했을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다.  바퀴를 만든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재료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바퀴를 만든다.


 

만약에 한 사람은 사과를 재배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바퀴를 만든다고 할 때에 그래서 서로 주고받을 때 그들이 실제로 주고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사과와 바퀴를 만들어낸 노력을 서로 교환한 것이다.  노력은 봉사요 노동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그 자체가 섬김이고 봉사라는 것이다.  사실 사과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바퀴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을 때에는 서로를 섬기는 행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랫 부분의 그림에서처럼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의사라고 가정을 해 보자.  의사는 약 20여분 동안 환자를 진찰하고 돌보아 줄 것이다.  그러면 환자는 의사의 봉사에 대해서 상당한 양의 돈을 준다.  여기에서 돈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봉사를 주고받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설명하자면, 여기에 노력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돈이라고 하는 것은 노력의 대가이다.  내 노력도 돈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내 노력이라고 하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노력도 알고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쌓아놓으려고 하지 이 돈을 올바로 사용하려고 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돈이 무엇이냐?  돈의 의미에 관한 문제를 말하고 있다.  돈 그 자체는 생명이 없는 물건이다.  좋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것을 사용할 때 도전과 위험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이 지닌 소유물과 돈에 대해 디모데전서 6장 6절에서 10절까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윤리를 말해 주고 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바울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이다.


 

p. 292에 있는 마지막 그림 28C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주님께 드리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원리를 지적하고자 한다.


 

사실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돕기 위한 헌금이나 헌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천국 사업에 수입의 몇 %를 드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는 돈 문제 이상의 것이 내포되어 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재능 그리고 재물의" 청지기라고 언급되고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몇 %를 드리는 것이 합당한가를 경험하는 데에는 내면적인 갈등과 망설임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경험을 한다.


 

그림에 보면 왼쪽에 있는 그림은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재물 중에서 과연 얼마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그러한 것들이 자신의 소유물이며 또한 그가 실제적으로 어떤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신앙의 문제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드려야 할" 의무들을 다하고 난 다음 그 이외의 나머지 것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엄청나게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유물의 소유주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우리들에게 사용하도록 허락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그 소유권을 주신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바친다는 말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좀더 바르게 표현을 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경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바로 분배하는 것이다.


 

왼쪽의 그림과 같이 사람들은 이것이 다 내  이다.  그리고 내 것 중에서 얼마를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 중에 얼마를 내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른 생각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표현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그의 뜻에 따라서 경영한다, 하나님의 것을 나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오른쪽에 있는 그림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이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질문은 "내 것의 얼마를 주님께 드려야만 하는가? 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 중에서 얼마 정도를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하여 남겨 둘 것인가?"이다.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다같은 것이라도 내 것 중에서 하나님께 드리느냐?  하나님의 것을 내가 사용하느냐?


 

십일조의 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것 중에서 90은 내가 쓰고, 10은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이라든지, 재능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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