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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권오승  


내 신앙의 사춘기는 대학시절이었다. 서울대 법대 69학번. 당시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나의 분노는 교회로까지 향했다. '한국 교회를 대표한다는 목사들이 조찬기도회를 열어 독재자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다니….' 젊은 혈기에 학생운동과 사회과학에 눈을 뜨면서 질풍노도와 같은 반항의 골은 깊어져 갔다. 여섯 살 때 집앞에 들어선 교회에 처음 나가면서 시작된 나의 신앙생활은 고등학생 때에는 교사 직분을 맡는 등 열심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 교회는 낯선 곳으로 변했다. 

대학 1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이화여대 법대생이었던 아내는 모태신앙으로 주일성수는 기본이었다. 교회는 싫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설교를 들어도,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었다. 이런 생활은 결혼 뒤에도 이어졌다. 가고 싶진 않지만,안 가면 불안한 '선데이 크리스천'의 전형이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설교는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예배를 마친 뒤 교회를 나설 때면 나는 설교 비평가가 되어 있었고 아내 앞에서 그날의 설교 내용을 난도질했다. "아까 목사가 말한 그 내용 있잖아. 그건 목사가 사회과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역사의식도 없고 설득력도 없어. 한마디로 오늘 설교는 지나치게 과장됐고 실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얘기들 뿐이야." 설교로 깊은 은혜를 받았던 아내는 나의 독설에 받은 은혜를 도로 쏟아내야 했다. 

불치병 환자가 명의를 찾아나서듯 나는 큰 교회,설교 잘 한다고 소문난 목사를 찾아다녔다. 나의 신앙심이 없는 줄 모르고 무턱대고 '남탓(교회)'만 해댔던 시절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런 발걸음은 헛걸음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꼬박 20년을 살았다. 

1991년초,지인으로부터 한 교회를 소개 받았다.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다. 지인은 "그 교회는 예배당을 짓지 않는다더라. 헌금의 반을 구제비로 쓴다더라"고 소개했지만 나는 그보다 예배시간에 앉을 자리가 남아 있다는것이 맘에 들었다. 그전까지 쫓아다녔던 교회엔 늘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그때만 해도 교회는 내가 '선심 쓰듯' 가주는 곳이라고 여겼다. 자리가 꽉 차면 '내가 안 와도 되는 곳이구나'고 생각하고 발길을 끊어버렸다.

교회를 옮기고 나서도 나의 설교 난도질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목사님의 설교 중에 "신앙은 내 힘으로 갖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터치'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귀에 거슬렸다. 나는 '내가 아직 터치를 못 받았나보다'고 생각하고 터치를 받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목사님은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설교를 마쳤다. 예배 뒤에 목사님을 쫓아가 따졌다. "목사님,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셔야죠. 그냥 설교를 끝내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일 아닙니까?" 목사님은 웃으면서 "당신은 이미 터치를 받으셨습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쭈,이 양반이 나를 꼬시려고 하는구나. 누가 이기나 보자.' 

그해 여름,교회 수련회 기간이 다가왔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당시 경희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나는 모교인 서울대 전임교수 자리로 옮기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경쟁자도 많고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는 잘 들어주실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했다. 그러자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개인적인 문제로는 한번도 남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내게 수련회 참가를 종용했다. 나는 거듭 거절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모교 교수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3박4일 수련회 가는 시간조차 낼 수 없는 거니? 네가 하나님이라면 네 기도를 들어주고 싶을까?' 순간 나의 얄팍한 계산의식이 발동했다. 수련회에 가겠다고 했다. 아내는 또 놀랐다.

하지만 수련회 준비 기간에 귀찮은 문제가 생겼다. 목사님께서 성경공부 팀장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두손을 휘저으며 거절했다. "목사님,저는 대학 입학 이후 성경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리더를 합니까. 못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요청은 간곡하고 집요했다. 결국 나는 "성경 내용 중에 이해하는 부분만 가르치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타협한 뒤 팀장직을 수락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에 각 팀장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경험을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난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혜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기도를 했다. "하나님,내일 모레 간증시간 전까지 은혜를 주십쇼. 은혜를 안 주시면 저야 그만이지만 하나님은 덕 될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은혜거리는 생기지 않았다. 

팀장 교육을 마치기 하루 전 새벽기도 때였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나는 분명하고 확실한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내 아들아,지금까지 내가 너를 지켜준 게 다 은혜가 아니더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무런 은혜가 없다니…." 천둥 같기도 하고,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목소리 뒤로 내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땐 참 다행이었지,운이 좋았지.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였구나,은혜였어. 하나님은 정말 나를 처음부터 사랑하셨구나. 나는 이미 하나님의 '터치'를 받은 사람이었구나.' 주르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평생 그렇게 오랜 시간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 나의 삶은 180도 변했다. 나는 하루종일 법서(法書)를 봐도 지루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법서가 눈에 안 들어왔다. 법서는 그저 종이일 뿐이었다. 법이 바뀌면 내용도 몽땅 바뀌어버릴 것만 같았다. 대신 성경은 읽어도 읽어도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그 전까지 성경책의 용도는 잠이 안 올 때 꺼내 읽는 수면제였다. 

하지만 아내가 나를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일 눈물을 닦으며 성경을 읽는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내가 훗날 웃으면서 "사람이 죽으려면 3년 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는데 당신의 변화가 꼭 죽을 징조였다. 과부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고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나는 '법학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법학에만 매달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제서야 이런 고민을 갖게 하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성경을 묵상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신앙 안에서 학문을 재정립하는 것. 내 연구를 성경적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지금 맡은 일도 그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와 내가 품은 에너지를 이 세상에서 100% 소모하고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권 위원장은 누구… 1950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하버드대와 독일 마인츠대,일본 와세다대 방문교수와 경희대,서울대 법대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경쟁법학회 회장과 아시아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3월18일 제13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했다. 1996년 공정거래질서 확립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부인인 우일강(57) 권사와 2남을 두고 있다. 권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취임 뒤에도 서울 잠실동 주님의교회(문동학 목사)에서 교회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서기장로로 봉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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