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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근현대까지 한국 예수교가 민족사에 끼친 영향 


며칠 전 CBS의 '크리스천 나우'라는 프로그램에 김응교 교수, 김종희 기자와 함께 참여했다. 여러 가지 대화 중, 한국의 예수교가 우리 민족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평소 한국교회에 대해 자신을 비판하는 심정으로 많은 비판을 쏟아냈던 터라, 이 프로그램에서는 격려와 애정의 뜻을 드러내고 싶었다. 최근 한국교회가 너무 많은 폄훼를 당하고 있다. 때로는 실의에 빠진 한국교회가 새로운 희망과 긍지를 갖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광복 후∼1950년대를 제외하고는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교회를 두고 하도 답답한 심정에서 이런 글을 쓰지만, 그 내용이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예수교와 한민족과의 관계는 한말, 일제강점기, 광복 후∼1950년대, 1960∼70년대 군사 정권기,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한말, 예수교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파고가 높던 1870∼80년대에 수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글을 민중의 문자로 올려놓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경 번역을 위해서 어휘를 다듬고 사전과 문법을 만들었으며 주시경 등 예수교인 한글 학자들을 대거 배출했다. 전근대사회와 근대사회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의 하나는 인간관이다. 핏줄에 의한 불평등한 인간관이 평등한 인간관으로 바뀌는 것이 근대사회다. 예수교가 수용될 당시 봉건 말기의 조선 사회는 핏줄에 의한 신분제도를 고수하고 있었는데, 성경의 평등한 인간관은 이를 극복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백정과 양반이 한 예배당에서 예배함으로 불평등한 인간관이 점차 극복되어 갔다. 한말에는 또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했다. 예수교인들은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운동을 벌였다. 평안도 지방관으로 임명받은 한 관리가 '야소교' 있는 고을에 가기 싫으니 영남 마을도 옮겨 달라고 했다[대한크리스도인회보 1899.3.1]는 기사는 이를 반증한다. '야소교인'이 있는 곳에 가면 부정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세례 교인이 1만 명을 채 넘지 않았고 한국의 인구는 약 1200만 정도였다. 지금과 비교해 보면 예수교인들의 부정부패 항거 운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예수교인들이 반봉건 사회 개혁 운동을 벌이고 있을 그때 일제는 한국 침략을 노골화하고 있었다. 1900년대 초, 한국교회는 원산부흥운동(1903)과 평양부흥운동(1907) 그리고 백만명구령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을사늑약(1905)에 이어 고종의 퇴위, 정미7조약과 군대해산이 급박하게 진행되었으며 급기야는 1910년 국망으로 이어졌다. 이때 청년 예수교인들은 행동적인 국권수호운동을 벌였다. 이준·김구를 중심으로 한 을사조약 무효화 운동에는 엡웟회 회원들이 동참했고, 상동교회에서는 구국기독회가 열려 수백 명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정재홍 의사는 국내에서 이등박문을 제거하려 했고, 장인환 의사는 한국 외교부의 고문으로 일제 주구 노릇을 한 미국인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에서 포살했으며, 천주교인 안중근과 함께 이등박문 제거에는 우연준(우덕순)이 가담했고, 매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진회장 이용구를 제거하는 데에는 이재명을 비롯한 청년 10여 명이 동맹하여 거사에 참여했다. 위에 열거된 이들은 모두 예수교인이었다. 

일제강점기, 민족사적 과제는 무엇보다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이다. 일제하 독립운동에도 예수교인들의 참여는 다른 어떤 종교인 못지않았다. 삼일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안창호·손정도·김구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대한신민단과 강우규·김상옥·편강열 의사 등의 무장·의열 운동, 김필순·이태준 등의 의료계 독립운동, 교육·실업·농촌·사회개혁 운동을 통한 실력양성운동은 예수교계의 독립운동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일제 말기 군국 전시체제의 강화로 국내의 독립운동이 거의 사라지고 황국신민화 정책을 통해 민족 말살 정책을 강제하고 있을 때, 신사참배 반대 투쟁을 통해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강력하게 항거했던 것이 예수교인들이었다.

광복 후 4.19 혁명 때까지의 기간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국토 분단·민족상잔을 민족 화해와 용서로 이끌며, 정부 수립과 함께 민주 사회의 토대를 탄탄히 해야 할 시기였다. 이때 예수교인들은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행한 신사참배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를 향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강력한 예언자적 메시지를 발할 수 없었다. 국토 분단과 동족상잔의 시기에 예수교인들은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휴전을 반대하는 기현상까지 보였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으로 민주 질서를 반석 위에 세워 가야 했지만 예수교계는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부정선거에 참여하는 추태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그런 대로 시대적 민족사적 사명을 수행했다. 1960∼70년대 군사정권하에서는 인권 민주화 운동에 가장 앞장섰다. 그때 희생된 많은 선진들의 희생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만큼의 인권 민주화를 누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남북 정부는 남북·민족·통일 문제를 배타적 독점적으로 장악하여 민간인에게 그런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시 통일 운동은 남북·통일 문제를 민중의 손으로 끌어내리는 데서 시작해야 했다. 이를 가장 선도적으로 주도한 세력의 하나가 한국교회였다. 1988년 2월 29일에 발표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은 지금도 남북 어느 정부가 내세웠던 통일 방안보다도 차원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1990년대 동구권과 소련이 무너져 북한에 대한 에너지와 식량 공급이 끊어지고, 몇 년간 홍수가 한반도를 휩쓸어 북한이 기근에 처하게 되자 북한 돕기에 가장 먼저 나섰던 것도 한국교회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한국교회는 남북문제를 두고 갈등과 분열을 다시 거듭하고 있다.

이 글은, 거듭 말하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답답한 심정에서 한국교회가 민족운동사에 어떤 긍정적인 역사를 남겼는가를 되돌아보면서 한국교회를 격려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사에는 민족운동과 관련해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들이 적지 않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교회 세습 등으로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아 매우 안타깝지만, 앞에 살펴본 이런 대목들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식을 회복하고 다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여 자기 개혁에 심혈을 쏟을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민족사에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할 기회를 회복할 수 있다. 힘내라, 한국 예수교인들이여!!!!

(이 글에 관심을 가지고 더 살펴보기를 원한다면, 필자의 <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 : '한국기독교 민족운동'개념화를 위한 시론>(한국기독교와역사 제 18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2)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제목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까
일하기 좋은 교회
이중성과 모자람과 진실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힘내라, 한국 예수교인들이여
뿌린 씨앗은 때가 되면 열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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