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렬 교수의 인생 상담> 괴로움에 중독된 사람“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이라는 걸 우습게 생각했어요. 수가 틀리면 언제라도 보따리를 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어요. 헤어진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남편만보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떨리고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다고 하면서도 글쎄 26년을 이렇게 살아오고 있으니 미친 거죠, 제가요. 안 그렇습니까? 전 도대체 어쩌면 좋지요?"하며 필자를 쳐다보던 최여사의 얼굴에는 혐오와 체념이 섞인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그러나 최여사의 인생여정에 깔린 심리적 풍속도에는 허탈하게 말하고 심각하게 질문한 그 때의 순간적인 연극성 정신상황과는 달리 의존적이고 종용적인 빛깔이 강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최여사는 결국 종용해야 할 사람을 이용해서 의존적인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자기도취적 만족을 위해서 타인을 종용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때문에 피곤하게 살아야 했었다. 그래서 최여사가 생각하고 있던 자신의 인생은 다분히 비관적이었지만, 필자가 이해한 그녀의 일상과 관련된 심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최여사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생각했던 잘못된 부부관계(성)의 원인이 남편의 무력함에 있다고 투사한 것은, 남편을 멸시하고 증오하면서 멸시하고 증오해야 할 사람과 함께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신을 저주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을 저주해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환경속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저주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속에 끼여 살아야 하는 자신의 팔자를 기구하게 느낀다. 그리하여 그 팔자를 한탄하며 그러한 자신을 함께 사는 사람들이 학대해주기를 바라는 피학적 갈망이 무의식속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여사의 자신에 대한 불만은 불만스러운 결혼을 빙자해서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살림을 부수고, 쉽게 기절을 해서 시댁과 친정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고, 그 결과는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녀는 이러한 성격이 모두 남편의 무능한 남성 때문이라고 매도했다. 이러한 최여사의 사고는 행위의 상대적 역동성을 무시했다. 적반하장 격이었다. 자신과 맞서는 타인의 의사와 행위는 무조건 치사했고 아니꼬웠고 억울한 느낌을 갖게 했다고 빙자했다. 사실은 자기학대와 연계된 피해 망상적 사고의 합리화가 그러한 불만을 갖게 했는데도 최여사는 자기의 그러한 사고와 행동이 자기의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비정상적인 성격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최여사도 역시 자신이 느끼는 비참한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때 혹시라도 괴로운 느낌이 없으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괴로움에 중독된 사람이 느껴야 하는 습관성 자기 학대였다. 그래서 자기가 괴로워지기 위해 사람들을 괴롭혔다. 어떤 사람도 좋아할 수 없는 메마른 성격이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느꼈던 최여사의 괴로움은 차라리 그녀가 갈망했던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