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인이 제2의 남편을 만나 온 집안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했고 가족들의 성격 또한 비교적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을 하고 몇개월동안의 허니문을 끝나게 한 최초의 가정불화는 A부인이 모처럼의 외출에서 전남편을 해후하게 된 것이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된 전남편은 A부인을 근처의 다방으로 데리고 가 아직도 A부인을 잊지 못해 홀로 살고 있다는 사실과 다시 함께 살기를 소망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과거의 어려웠던 관계가 이상하게도 그리움 같은 향수가 되어 그를 괴롭혔다. A부인의 전남편에 대한 향수는 일 년 육개월여 전까지 그가 겪었던 주검과 같은 괴로운 삶에 대한 향수였다고 할 수 있고, 전남편의 재결합을 위한 소망 역시 A부인의 향수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질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피학적 가학증이 누구인가를 기필코 괴롭혀야 괴롭힘을 당한 상대방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을 수 있다는 야릇한 성격들을 버리지 못한 것에 원인한다. 전남편을 만나본 후로 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그리움과 무사 안일한 새 가정의 무료함에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여 전전하던 A부인은 직장일로 늦게 귀가한 남편을 호되게 다루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매일같이 남편과 아이들을 들볶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게 되었다. 부인으로부터 들볶임을 당한 남편은 그 후 자주 병을 앓는 것으로써 부인에게 대항했다. 소리를 지르고 매질을 하고 날뛰어주기를 기대했던 남편이 몸져 누워있기만 하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A부인은 점점 더 심하게 바가지를 긁었다. 이러한 무저항주의적인 남편의 투쟁은 부인의 마음속에 좌절을 가져왔고 그리고는 공황을 초래했다. 사별로 끝낸 전부인과의 관계에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관계가 두 번째로 맞이한 부인과의 관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며 혹시나 또 부인을 잃게 되지나 않나 하는 악몽 같은 두려움이 남편을 괴롭혔다. 그러나 직장에서 병가를 내고 자리에 누워있는 그로서 부인의 성격에 대항하여 사태를 수습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의 성격 또한 미쳐 날뛰는 부인의 설침을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아이들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새로운 가정환경에 나름대로 적당히 적응해 나갔다. 큰 아이인 12세 된 딸은 새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더기로 돈을 훔쳐내어 물 쓰듯 쓰고 다니다가 들통이 나면 몰매를 맞고 밤에 자다가 요위에 오줌을 싸는 것으로서 그의 불안한 마음속의 무너진 항상성을 유지해 나갔다. 둘째인 9세 된 아들은 그의 심한 편식을 과장하여 깡마른 몸을 더 심하게 말려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한 만큼의 걱정을 시키고 야단을 맞는 것을 관심을 받는 것으로 처리하여 흡족해하며 생모의 사망으로 인해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 유기불만을 상쇄하고 새어머니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맞고 살아야 하는 인생각본을 가진 A부인이 때리는 전남편의 학대가 싫어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남매를 둔 두 번째 남자와 결혼을 하였지만 그 남편 역시 전 부인을 병마에 빼앗기고 혼자 살고 있었던 어쩌면 살인적인 성격(물론 의식세계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의 세계에서)을 소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의 결혼이 가능했고 그 결혼의 결과는 전남편과는 다른 무저항주의적인 태도로 부인을 학대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인생각본의 묘한 순환 현상을 보는 것 같은 A부인의 사례는 그렇게 희괴한 것이 아니다. 필자를 찾아오는 많은 가족관계가 이와 비슷하고 필자를 찾아오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서로를 괴롭히는 가족관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