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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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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은…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아들 진후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의 몸이 매일같이 퉁퉁 부어 있었다. 검진 결과 진후의 병명은 만성 신장염이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소위 세계적인 과학자라고 남들에게 칭송받았지만 정작 아들을 위해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의 현실 앞에서 나는 무능력한 아버지였다. 생명의 문제 앞에서는 최 첨단 의술과 과학도 무의미했기에 나와 아내는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는 문턱이 닳도록 교회를 드나들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진후가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진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양쪽 신장은 거의 마비되어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해갔다. 그때마다 나는 아들에게 웃으면서, "하나님께서는 너를 매우 사랑하고 계시단다. 그리고 이 고통은 반드시 극복될 거야. 그것을 위해 우리 기도하자."하며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나 자신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이 없었다. 하나님의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한단 말인가.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은근히 원망의 독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열심히 양심적으로 살아온 내게 왜 이런 고총을 주십니까. 내가 무슨 큰 죄라도 지었단 말입니까?'
나의 원망 섞인 투정에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응답을 받은 크리스천들도 많다는데 나에게는 도무지 아무런 말씀도, 계시도 주시지 않는 하나님….
결국 급격히 상태가 악화된 진후에게 나는 내 신장을 이식해주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다.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의사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약을 쓰지 않으면 신장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약을 쓰면 간에 손상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의사도 어찌할 수 없는데 난들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생사의 경각에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무능한 아버지… 인간의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단 말인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그것을 거둬가는 분은 누구인가 절대자 하나님,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갈급하고 괴로운 심정으로 부르짖었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매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처절한 순간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태에 있는데 뉴욕의 교회로부터 전갈이 왔다. 기도 제목이 있으니 부부가 함께 와서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런 위급한 상태에서? 진후를 혼자 남겨 두고? 교회 성도들은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더욱 어이없는 것은 아내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뉴욕으로 날아갈 뜻을 비치는 것이었다.
"성도들이 진후를 돌봐 주시기로 했으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뉴욕으로 갑시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마음을 합쳐서 기도해야 해요."
너무나도 태연한 아내의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흑달 증세를 보이는 진후를 남겨 두고 우리는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뜨겁게 기도했다. 교회에 닥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 진후의 완쾌를 위해, 때로는 통성으로 고함치듯 기도했으며 때로는 조용히 속삭이듯 기도했다.
철야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기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후를 괴롭히던 흑달이 서서히 벗겨지고 1주일 후에는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 왔다. 간이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기적 앞에서 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퇴원하고 학교에 복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뒤떨어진 학업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동년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 등으로 심한 외로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진후가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자살에 실패한 진후는 슬피 울었다. 우는 진후를 끌어안고 우리 부부도 함께 울었다.
눈물을 닦으며 그는 내게 말했다.
"아버지,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시나 보죠? 낭떠러지로 추락하던 승용차가 그렇게 조그마한 소나무에 걸릴 수도 있나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에요. 그 작은 소나무가 육중한 자동차를 떠받질 수 있다니….'(진후는 10여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도 뛰어들었지만 차가 작은 소나무에 걸려서 밑으로 추락하지 않았다.)
'작은 소나무'는 분명히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진후도 그 사실을 시인했다. 우리의 주변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은밀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과학자인 나도 증명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의 손길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위해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 중 워싱턴중앙장로교회에서 4일 동안 부흥집회가 열렸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체험하기 원했던 나는 수많은 회의와 바쁜 스케줄 가운데서도 새벽과 저녁에 열리는 집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하지만 그토록 사모하는 부흥회가 다 끝나가는데도 다른 성도들은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리는데, 내게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초조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계셨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1)
주일 낮 예배에서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리한 비수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안내 위원을 맡고 있었기에 남에게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꾹 참았지만 인내에도 한계가 있었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말씀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절절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해오면서도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었다.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참석한 저녁예배에서도,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졌다. 그때 나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너를 위해 진후가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너는 네 아들에게 감사해보았느냐?"
나는 너무나 놀라서 울음을 뚝 그쳤다.
'나의 신장까지 주었고, 아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간호하는데, 아버지인 제가 왜 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나는 되물었다.
"네가 지금껏 큰 짐으로 생각해 왔던 네 아들을 통해 너와 네 가족이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랬다. 진후의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신앙에 대한 새로운 눈을 떴고, 진후로 인해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순간 회개기도가 터져 나왔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병들게 하셨느냐며 불평했던 것과 내 힘으로 아들을 낫게 하려고 자만했던 것에 대해 울며 회개했다. 우리 진후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때 찾아왔던 평안함과 감사… 그날은 내 마음속에 성령이 임하신 날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진후와 가족들에게 나의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진후야, 나는 지금껏 너를 무겁고 힘겨운 짐처럼 느낀 날들이 많았단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져야 할 짐을 진후 네가 지고 있다고… 우리는 이제 너에게 감사할 뿐이다. 너로 인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야."
진후는 고개를 떨구며 울었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강 때문에 번번이 좌절해야 했던 그였다. 그의 눈에서 후드득 떨어진 눈물의 온도가 내손에 뜨겁게 느껴져 왔다.
이후 건강을 되찾은 진후는 결혼도 하고 미국 항공 회사에 근무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당시 항공 회사 사장은 내게, "저 녀석과 함께 있으면 신이 나요. 진후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빨려 들어간다니까요."하며 칭찬을 했다.
건강한 정상인들보다도 훨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변에서도 말들을 하고 있었고, 우선 그와 함께 있으면 재미있어서 즐거움을 주는 존재라고도 했다. 진후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의 가슴은 뜨겁게 벅차올랐다. 한때는 생명을 포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진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변화되어 오랫동안 머물렀던 먹구름이 완전히 걷힌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인간은 인간에게 일시적 위로밖에는 줄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부정적 사고의 먹구름이 쫓겨가고, 한때는 도무지 삶에 대해 애착을 갖지 못했던 진후가 이젠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있었다. 주님의 부활이 진후의 삶에도 다시 꽃을 피워낸 것이다.
진후와 함께 나 역시 국내에서는 한국과학재단의 이사장직으로, 대외적으로는 세계원자력기구의 한국 대표로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또 그즈음 국제 해비타트의 총재 밀러드 풀러를 알게 되어 한국사랑의집짓기 운동에도 동참했다. 과도한 주거 비용 때문에 신음하는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집을 지어주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국내외에 있는 약 800세대가 자기 집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호서대학교 총장에 임명되어 오랜만에 캠퍼스에서 생활하던 2001년, 나는 미국에 있는 아들로부터 담석 수술을 받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간단한 수술이라서 일주일이면 퇴원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왠지 아들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미국 행을 결심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으나 진후는 병상에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 탓이었다. 나는 아들 병상 곁에 앉아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후는 힘이 없다가도 환자들에게 전도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눈빛이 달라졌다. 내가 며느리와 손주들의 이야기를 해도 진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예수님 이야기만 나오면 힘을 냈다. 오히려 내게, 한국에서 해비타트 운동을 해야 하는데 왜 간병으로 시간을 허비하느냐고 빨리 돌아가라고 성화였다. 결국 나는 아들의 강요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두 달 뒤 대통령을 따라 미국에 들른 나는 다시 아들을 찾았다. 1월에 입원한 아들이 3월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자 나는 몹시 불안했다. 어느 날 밤, 진후가 말했다.
"아빠, 여기 천사 세 분이 와 있는 게 보여?"
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아빠! 나는 예수님 곁으로 가니까 내가 죽어도 울면 안 돼."
아들이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2001년 3월 24일, 진후는 예수님 곁으로 평안히 떠났다. 한 때는 도무지 삶에 대해 애착을 갖지 못했던 진후,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후 새롭게 부활의 꽃을 피웠던 진후.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죽음조차도 아들에게서 평안을 빼앗아가지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많은 의사들이 예수를 믿겠다고 자청하고 나서기도 했다. 진후는 분명 예수님으로부터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과 천국의 소망을 품었던 아들은 비록 짧지만 아주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기에 나는 그간 가졌던 인간적인 그리움과 아픔을 접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서 도달할 수 없는 영역들이 많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는가? 과학자인 당신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신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벌써 신이 아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수는 없다. 어찌 과학적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내 삶을 통해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하나님, 세미한 음성으로 때로는 위로해 주셨고 때로는 나아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그 하나님을, 시들어가는 진후의 삶에 다시 생명의 꽃을 피워주신 주님, 죽음조차도 아들에게서 평안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만드셨던 부활의 주님을 믿는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 무조건한 사랑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셨고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셨다. 사흘 만에 육신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영생의 기쁨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하고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승리와 진정한 삶의 참 뜻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