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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목수' 최문정씨, 초원위 그림같은 교회를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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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목수' 최문정씨, 초원위 그림같은 교회를 짓다
'저 푸른 초원 우에/그림 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우리 님과/한백년 살고 싶어.'
남진의 '님과 함께'. 가수 김범수가 최근 리메이크해 다시 한번 인기를 끈 국민가요.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는 아름다운 집. 누구나 한번은 머리에 떠올려 봤을 꿈의 공간이 아닐까.
모두가 꿈만 꿀 때, 한 사람은 그걸 현실로 만들고 있다. 지난 12일 그를 만나기 위해 차를 몰았다. 춘향의 고장 전북 남원 아영면 갈계교회 앞에서 자동차 시동을 껐다. 허름한 교회는 수리 중이었다. 스쿠터를 멋지게 타고 지나가던 노인이 귀띔한다. "교회 안을 다 뜯어 놓아서 오늘 마을회관에서 예배드렸어."
교회 뒤 좁은 공간,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인 목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지붕, 한 사람이 밝게 웃으며 반겼다. 몸에 붙는 검은 옷. 팔·다리가 길었다. 태양이 그의 몸 바로 뒤에 위치했다.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지붕 위에서 당당하게 몸을 세운 그. '어디서 봤더라….' 맞다. 스파이더맨!
스파이더 우먼
4m가 넘는 높이. 지붕의 경사 26.5°. 꼭대기에서 바닥으로 내려오는 몸짓 역시 스파이더맨 같이 날랬다. 성큼성큼 경사진 지붕을 밟고 내려와 지지대를 한번, 사다리를 한번 밟더니 이내 땅을 디뎠다.
엇! 그런데 이 사람, 스파이더 '맨'이 아니었다. "더운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목소리. 양 갈래로 땋은 머리카락에 얹은 카우보이모자. 여성이었다.
여성 목수 최문정(31)씨. 씩씩하게 악수를 청했다. 걷어 올린 작업복 아래 굵은 힘줄이 도드라졌다. 잠깐 교회 1층 입구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와 헤어스타일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또다시 움직인다. 할일이 태산이란다. 방수재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고 지붕에 재등정했다. 무거울 텐데 거침이 없다.
"목수들은 45° 경사에서도 작업 많이 해요. 이 정도는 안방이죠."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잠깐 올라가 봤다. 속았다. 안방은 무슨….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만있어도 개다리춤이다.
치명적 부상, 힘겨운 시간
2003년 체육교육과 3학년이었던 그녀. 한 걸음 한 걸음 체육교사가 되는 길을 무난하게 걷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운동을 좋아했다. 체육교사, 천직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악"소리와 함께 무릎을 잡고 쓰러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운동 중이었다. '일상적인 부상이겠거니' 생각하며 애써 진정했지만 불안했다. 의사가 던진 말. "십자인대가 끊어졌어. 운동… 어렵겠다."
청천벽력. 자신의 전부였던 운동과 오랜 꿈은 한 순간 신기루가 돼 사라져 버렸다.
IMF 당시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 모든 재산을 날렸지만 긍정적인 그녀는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 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꼭 성공해서 엄마 아빠에게 힘을 줘야지'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모든 게 어그러지는 느낌. 힘들었다.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인도로 향했다. 제3자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을 바라봤다.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체육을 벗어나 다른 걸 해보겠다는 생각을 못했지. 안주했던 거야. 지금 다른 걸 시작해도 늦지 않아. 한번 부딪혀보자.'
님과 함께
'새로운 걸 해보자.' 마음을 잡는 것까지는 성공. 그런데 '뭘 하지?'에 대한 답을 얻는 건 실패였다. 그는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복기하기 시작했다. '집.' 그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머리를 맴돌았다.
"어렸을 때 손재주가 좋아 인테리어 같은 일을 하면 잘 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도마를 잘라 조그만 책상을 만들기도 했죠."
1998년 파산 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험. 가족의 중요성을 느꼈고 가족이 모여 사는 공간에 대한 동경이 컸다. '집'이 떠오른 또 하나의 이유였다.
그는 결심했다. 목수가 돼 집을 짓겠다. 푸른 초원 위, 나무로 된 그림 같은 집을 엄마아빠에게 선물하겠다는 건 그의 새로운 인생 목표가 됐다. 그녀에게 '님과 함께'의 '님', 엄마와 아빠였다.
내게 행복을 주는 일
전북 무주. 2004년 처음으로 집짓기 작업에 참여했다. 일반인 실습 현장이었다. 그때 그는 목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 도편수(현장 책임자)에게 애원했다. "저 월급 안 받고 허드렛일만 해도 되니까 제발 여기서 일 배우게 해주세요." 힘든 일을 여자가 할 수 있겠느냐며 수차례 거절당했지만 물러섬이 없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목수가 되는 첫 발을 내딛었다.
첫 대패질, 그 때를 떠올리며 아이처럼 웃었다. "대팻밥이 날리는 장면 보셨나요. 영화 속 한 장면 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눈송이가 날리는 것 같거든요. 얼굴에 와 닿는 느낌도 너무 따뜻하고요." 4학년이었지만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나무와 함께 했다. 졸업식에만 참여했다.
부모의 반대는 완강했다. "자식이 대신 고생한다는 생각이 크셨나 봐요. 마음이 아프셨겠죠. 하루는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공구 가방을 잡고 가지 말라며 펑펑 우셨어요. 막일 하지 말라고…. 제가 말씀드렸죠. '엄마 2년만 주세요. 그 안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면 엄마 뜻대로 관둘게요'라고요."
2년이 지난 뒤, 어머니는 더 이상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최씨는 이미 작업현장에서 부팀장으로 일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아름다운 나무와 항상 함께 하는 것, 그녀에게 큰 행복이다. 목수의 매력을 느낄 때마다 그녀의 행복은 배가된다. 목수는 최선을 다하고 집중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 최선을 다한 만큼 결과가 보장되는 것, 운을 기대하지 않고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건 너무나 큰 매력이다. 잘하려고 애쓰고 집중하다보면 오히려 긴장을 하게 돼 그르치는 운동과 다른 것도 그녀에겐 색다르다.
나도 여자랍니다
"저 멋 부리는 거 되게 좋아해요. 평상시엔 사람 만날 때도 펑퍼짐(?)하게 안 나간다니까요. 하이힐 신는 것도 좋아하고요."
하지만 작업에 임하는 기간 동안 작업복만 입으니 그 좋아하는 예쁜 옷들을 못 입어 속이 상한다. "상표도 못 뗀 채 계절이 지나 새로 샀던 옷을 못 입는 적도 많아요. 옷은 원래 그 시즌에 딱 입어야 제 맛인데…."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번 주에 친한 친구가 서울에서 결혼을 하거든요. 꼭 올라가서 하이힐에 요즘 유행하는 시스루룩(속이 비치는 옷)을 입고 말거예요."
허허벌판에 집을 만들 때의 고충도 상당하다. 화장실이 없어서다. "남자 분들은 뭐 사실 아무데나 가능(?)하지만 여자는 안 그렇잖아요. 화장실 간다고 작업 중에 차를 타고 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작업하는 동안 물조차 안 마시죠. 엄청 고생스러워요."
교회를 만들다
갈계교회는 작업에 참여한 세 번째 교회다. 그녀는 교회를 짓는 건 일반 집을 지을 때와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생활하는 분이 한두 분이 아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많으시잖아요. 계단의 높이, 난간 넓이 등 안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셔서 간식을 주는 적도 많아요. 마음이 더 가죠. 그만큼 더 신경을 쓰고요."
그가 만났던 시골교회 다니는 분들, 참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그래서 교회를 지을 때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나무를 더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편안하고 휴식 같은 공간을 드리고 싶다는 것. 특히 십자가를 만들 땐 자신도 모르게 경건해져서 더 집중하고 정성을 들인다.
나무, 흙 등을 이용해 집을 짓는 생태건축에 관심이 많은 그녀. 집짓는 방법을 일반인에게 쉽게 전해 '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들'이 더 많아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그림 같은 집 지어드리는, 그 중요한 꿈. "올해나 내년쯤 예쁜 집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아빠도 너무 기뻐하시겠죠." 그녀에게 '안방' 같은 지붕에서 망치질을 하며 흘리는 땀방울은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