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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마음 성경대학

Heart of Christ Bible College & Christian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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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과. 연회를 위한 준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성찬식'에 관한 내용이다.  예전예식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성찬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성찬식에 대해서 소홀히 하고 있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잔치를 미리 경험하고 맛보는 것이 성찬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식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림을 보면서 성찬식에 대해서 가지는 신학적인 차이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에는 세 가지를 그려 놓았는데, 저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이론이다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건물이 다르고 교파가 다르듯이 성찬식에 대해서도 이해하는 것과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먼저 1번 그림을 보자.  이것은 카톨릭에서 주장하는 견해로서 '화체설'이라고 한다.  카톨릭에서는 성찬식을 베풀 때 겉으로는 떡이요 포도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볼 때 그럴 뿐이지 신부가 그것을 베풀어 준 다음에는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변화시킬 수 있는 비결과 능력은 신부에게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화체설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러니까 어느 날 신부님이 성찬을 집례하고 난 후에 포도주와 떡을 놔두었는데 쥐가 그 떡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쥐가 구원을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이것 가지고 논쟁을 벌였던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카톨릭이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서 이러한 화체설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여전히 화체설을 지키고 준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문제는 카톨릭에서 미사를 지낼 때마다 영성체라고 하는 성찬식을 통해서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다시 지내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좀 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었던 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가 있다.


 

2번의 그림은 '상징설'이다.  이것은 개혁주의 교회나, 칼빈교회가 이 교리를 따르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살이 아니라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쯔빙글리나 칼빈은 예수님이 거기에 현재 임재하신다는 점을 강조했다.


 

3번의 그림은 '공재설' 내지는 '첨가설'이다.  이 교리는 루터교회에서 주장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신부가 문자 그대로 화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공재설은 여전히 떡과 포도주로 남아 있는 것은 같지만 영적으로 볼 때에는 그리스도의 피요 살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화체설과는 다르다.  카톨릭에서는 포도주를 땅에 떨어뜨린다든지, 떡을 땅에 떨어뜨린다면 예수님의 몸을 칼로 베어서 땅에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하는 물체적으로 해석하는데 반하여, 이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음으로 해서 어디까지나 영적인 상징적인 뜻이 있는 것이라고 이해를 한다.


 

우리는 2번째 주장을 따르지만, 그러나 성찬식을 문자적으로 '이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 할 수는 없다.  다만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임재는 "실제적이지만 영적이고 성례적이며 또한 하나의 신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예배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교재 p.247에 보면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이 기록되어 있다.


 

고전 11:27-29 ☞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그러나 이 말씀이 의도하고자 하는 분명한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 그 본문이 어떤 문맥과 처지에서 기록되었는가 하는 context, 당시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의 내용도 그렇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늘 모였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애찬식을 가졌다.  그리고 애찬식이 끝난 다음에는 곧바로 성찬식을 가졌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돈 많은 부자가 이 애찬식에 참여할 때에는 산해진미를 잔뜩 해 가지고 와서는 자기들과 비슷한 부류의 부자들끼리 먹고 마시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고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 오지만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를 못했고, 설령 그들이 집에서 먹고 왔다고 해도 가난하니까 별로 먹고 오지도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혼자서 뒤에 가만히 앉아서 부자들이 먹고 마시는 광경을 바라만 보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러한 잘못된 애찬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하나의 가족으로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우리가 예배에 참여한다든지 성찬에 참여한다고 하면, 나는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또 그 자체가 무슨 가치를 가졌는가를 묻고는 한다.  사실 자칫 잘못하면 이 질문 자체가 사람을 잘못 인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마틴 루터가 한 말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내가 성찬식에 참여하는 까닭은 내가 진정 죄를 용서함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또 죄를 용서받은 자로서 거기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내면의 생활이 거룩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성경을 읽는다든가, 혹은 예배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은 일상 생활 속에서 변화된 모습으로 그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그림 24A를 보도록 하자.


 

이 사람은 종교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고, 이웃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결심하기를 하나님께 대하여 100% 헌신하는 성자다운 사람이 되자고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인가 그에게 잘못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래 이웃 사람에 대한 의무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는 내가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한다면 이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100% 온전히 사랑했다고 한다면 이웃에 대해서도 같은 선상에서 100% 온전히 사랑해야 한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입으로는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가 집에 돌아가서 하는 행동들을 보게 되면 영 아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는데, ship(배)라고 하는 말이 뒤에 붙는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는 봉사라는 배가 잇따라 나와서 예배를 드린 사람답게 삶에서 봉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영어에서는 예배를 service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예배라는 말은 봉사라는 말로도 사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먼저는 하나님께요, 하나님께 드리는 같은 사랑과 봉사가 이웃에 대해서도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번의 그림을 보라.  어떤 사람은 단어 하나를 가지고 교묘하게 말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1은 하나님이고, 2는 이웃이고, 3은 나 자신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는 몇 % 헌신하고, 이웃에게는 몇 %를 봉사하는데 나에게는 몇 %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이해를 바로 해야 한다.  예수님 제일주의는 좋다.  그런 예수님 제일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섬김과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 제일주의로 나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제쳐놓고 예수님만 따로 떼어놓는 제일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웃을 위해서 100% 섬김으로 해서 하나님을 100% 섬겨야 한다.  여기에서 이웃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렇다면 내게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누구이겠는가?  가족 구성원이다.  아내와 남편이이 내 이웃의 넘버원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돕기 위해서 내 옆에 두신 내 아내야말로 내가 돌보아야 하는 내 이웃의 제 1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연구 과제는 어떻게 하면 남편과 아내를 기쁘게 해 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결점이나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사람은 참으로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또 한가지, 가장 확실한 내 이웃은 바로 내 자신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만드시고 나를 소유하셨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소유인 나를 내 자신이 잘 개발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한 나를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  따라서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해서 자신을 잘 가꾸는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한 방법이다.


 

그림 24B는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찬에 참여한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한 사람은 사랑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면, 필리아, 에로스, 스톨게, 아가페라는 말이 있다.


 

에로스라고 하는 것과 아가페라는 것에 대해서는 많이 논의를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에로스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알 알고 있지를 못한 것 같다.  에로스라는 말을 할 때에는 성적인 단어에 국한하기가 쉽다.  그러나 에로스라고 하는 것은 원래 다른 사람이 나에게 풍기는 매력에 대하여 내가 반응을 보이는 감정, 내지는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주로 어떤 사람의 감정과 관련을 갖는 사랑의 분야이다.


 

거기에 반해서 아가페는 무엇인가?  이것은 사랑스럽든 말든 간에 상대방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 필요에 반응을 보이는 사랑이 아가페이다.  이것은 의지적인 행동이다.  그런데 에로스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하라고 하는 명령에 순종할 수는 없지만, 아가페는 명령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결단할 수 있는 그러한 종류의 사랑이다.  특별히 아가페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사랑인데 이 사랑은 사랑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다음에 '필리아'는 우정이다.  이를테면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같은 경우이다.


 

그리고 '스톨게'는 가정 안에 있는 가족관계라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런데 아래쪽의 아가페 그림을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섬긴다고 하는 말로 집약이 된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림 24C를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고린도전서 13장에 기초를 둔 그림인데 많은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아가페의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랑을 외치지만 거기에 섬김도 따르지 않고, 사랑의 실천도 따르지 않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무의미한 것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모든 신앙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되고 만다.


 

밑에 있는 그림을 보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관문으로서의 문이 그려져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마지막 절인13절에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왜 사랑이 제일인가?  그 이유를 이 그림에서 설명하고 있다.


 

믿음을 생각해 보자.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만나 뵐 수 없는 분, 그러니까 하나님이라든지, 미리 볼 수 없는 하늘 나라에서 전개되는 모습 같은 것은 믿어야 할 일이지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서 하늘 나라에 들어갔을 때에는 내가 그렇게도 믿어 오던 것들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믿음이라는 것은 필요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보이지 않을 때 필요하지 눈에 보이면 필요 없다.  그러므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 '시야'와 바뀌게 된다.


 

소망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죽음 이후에 살 소망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그런 종류의 소망이 아니다.  이미 나는 소유했지만 그 소유한 것을 바라보는 소망이니까 훨씬 적극적이고 실천적이다.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필요하다.  이루어진 이후에는 필요 없다.  따라서 소망은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게 되면 자기의 실질적인 것으로 바뀌게 되니까 경험적인 사실이 된다.


 

그런데 사랑이라든지, 섬김이라는 것은 믿음이나 소망과는 다르다.  나는 이미 영원한 세계에 속한 사랑으로써 현재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 사랑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서 살게 될 때까지 계속되고 그곳에서도 계속된다.  믿음과 소망은 이 세상에서 가지는 것이고 하늘 나라에 가면 완성되어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사랑은 하늘 나라에 가서 완성되고 그곳에서도 사랑은 계속하게 된다.


 

지난 22과에서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우리는 이미 영원한 영역에 들어간 하늘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다만 영원한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으로써 그 나라에 가기까지 땅 위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해야 하고,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입장을 취득한 자로서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하는 문제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가 하늘의 시민으로서 장차 그곳에 가서 먹고 마시게 되겠지만 그것을 이 땅 위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 성찬식이다.  따라서 성찬식에 참여하는 우리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동안 천국의 행동을 나타내어야 한다.  천국에서 행해야 할 모든 행동들을 지금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성찬식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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