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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강, 성도의 교제(의미와 원동력)


27, 246, 506. 


"(빌1:5-6)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사춘기 청소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부모나 어른들의 '간섭'이 아닐까 싶습니다. 불신자들이 기독교를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하나님의 초월적인 간섭이 싫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일은 고사하고 영혼 깊은 곳에서조차 하나님으로부터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은 땅은 물론 하늘에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는 것은 인간들의 자유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의 간섭을 피하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분의 눈길을 피할 곳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분은 쉴 새 없이 우리와의 교제(참여하고)를 요청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그분의 사랑으로 채우기 위해 계속 교제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오늘은 이 교제의 '의미와 그 원동력'을 살피고 다음 시간에는 그 교제의 '내용'을 살피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간구한 이유를 복음 안에서 너희의 교제를 인함(5절)이라 했습니다. 이 교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교제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교제로 번역된 '코이노니아(koinwniva)'는 '참여, 협력, 나눔, 교제'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교제의 다양한 의미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가 복음에 참여하여 하늘의 모든 축복들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받은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누리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행했던 기도와 헌금은 복음전파에 기여하였으며 그들의 행함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유업을 나누며, 그와 함께 보좌에 앉으며, 그와 함께 다스립니다. 누구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입니다. 그 영광이 감이 잡힙니까? 일국의 대통령도 아니고 만왕의 왕이요 창조주 그리스도와 함께 한 그 영광의 크기는 사실 상상 자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영광에 동참되어진 자들로서 그리스도의 일에 동참하고 그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인간을 하나님과 또 인간 서로의 교제 가운데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우리가 홀로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교제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어 영혼이 죽은 상태로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살리사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서로가 사랑을 나눌 교제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막힌 담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차별도 없는 새로운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간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제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들의 교제입니다. 교회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입고 그리스도를 의지해 나온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예수 믿기 전 우리는 이방인이요, 죄인이었으며, 모이기만 하면 이기심이 발동하는 악당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은 후 우리는 하나님의 권속, 그리스도의 자체들이 되어졌습니다. 이 하나 됨을 지켜나가기 위해 우리는 이 성도의 교제를 지속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교제는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 교제의 대상은 첫째가 하나님이고 둘째는 다른 성도들과 불신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성도 상호간의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교제를 통하여 세상에서 경험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훈련받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세상을 이길 유일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만이 성도를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로의 교제를 통하여 이 교회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식사를 하면서 또 식사를 마치고 서로의 삶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어야 합니다. 삶의 고통과 아픔을 말하면서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상대에 대해 진실한 이해로 사랑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치유와 하나 됨을 체험할 수 있고 서로의 지체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기가 바로 성령이 임하시는 자리입니다. 비록 이 교회가 20-30명의 적은 수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능력으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의지가 생기는 그 곳,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능력 있는 교회, 주께 영광 돌리는 교회라 불리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교제의 원동력은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십니다.  

첫째로 이 교제를 하려면 우선 성부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사업을 잘 하시는 분들은 사업상 누군가를 만나려면 사전에 만날 상대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대로 많이 수집하고 만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는데도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이고 본질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은 결코 어두움과 타협하거나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는 우리는 빛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수시로 고백하고 사함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코 죄와 불신앙이 용납하지 않으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거룩하시고 빛 되신 하나님과 만나려면 그 만남에 방해되는 죄와 거짓을 온전히 버려야만 합니다. 죄나 거짓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불가능하게하기 때문입니다. 죄와 거짓이 우리 속에 있으면 빛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심으로 그분과의 교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죄나 거짓이 자기 안에 없는지 수시로 살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허물을 회개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외식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 엎디어 기도부터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모든 죄를 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옛사람을 죽이고 하나님으로 나의 주가 되어 그분의 뜻을 따르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적으로 잘 유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것은 다릅니다. 같은 자녀라도 부모와 담을 쌓고 사는 나쁜 자녀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자녀가 되려면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습관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나뭇가지가 원나무에서 진액을 공급받아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날마다 공급받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과의 교제를 통하여 그분이 시작하신 착한 일을 완성해나가야 합니다. 그 착한 일은 이 땅을 정복함으로 그리스도의 나라를 확장해나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명심할 것은 그 정복의 일차적인 대상은 나이고 그 다음이 이웃과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이르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둘째로 그 교제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심으로 가능합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매화분재를 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분재는 복숭아나무에 붉은 매화를 접붙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기서 복숭아의 가지가 솟아올랐습니다. 저는 복숭아꽃도 보고 매화꽃도 볼 수 있겠다는 욕심에 그냥 자라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랬더니 복숭아가 얼마나 왕성하게 자라던지 결국 매화나무 가지는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제가 거기서 다시 확인한 것은 "내 안에 옛 사람을 완전히 죽여야만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일하실 수 있게 된다는 것" 것이었습니다. 둘을 다 가지려는 욕심은 결국 나를 죽이는 결과만 얻을 뿐입니다. 내가 살아서 내 뜻대로 살다보면 남는 것은 오직 죽음 말고는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원하는 자는 자기 안에서 자기 자신은 죽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일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의 일은 곧 나의 일이 되고 그 일의 결과는 나를 말씀으로 온전히 정복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오직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친밀하고 풍성한 교제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로 일하시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 긴밀하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성도의 교제 또한 그 깊이를 더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는 자'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꺾어놓은 꽃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93년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제 집사람에게 너무 고생을 시켜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94년 제 집사람 생일에 장미꽃 송이를 집사랑 나이만큼 사서 꽃다발을 선물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찌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던 제 아내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주머니 사정상 그리 못했습니다. 금년에는 꼭 다시 선물할 작정을 하고 있지만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집사람은 꽃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냄새를 맡은 후 서둘러서 꽃을 물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것을 곱게 말렸습니다. 그래서 거실 벽을 예쁘게 장식해 놓았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러져 내렸습니다. 어느 날 집사람은 흉측하게 변한 그 꽃다발을 내다 버렸습니다. 이것이 영적 생명력이 시든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꺾어 놓은 꽃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꺾인 가지가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우리도 참 포도나무인 주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의지해야만 살 수 있도록 재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치불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의지함만이 "꺾어 놓은 꽃 같은 그리스도인" 신세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있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몸과 머리와 지체에 관한 바울 서신의 은유들(롬12:3-8, 고전12:12 -31, 엡4:16)과 초석과 많은 돌들과 함께 성전에 대한 바울 서신의 은유들(엡2:19-22, 벧전2:4-7)과 신자와 그리스도 그리고 신자 상호간의 교제인 주님의 수난에 관한 바울 서신의 교훈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7)." 우리는 살아 계시며, 진실하시고, 마음에 평화와 능력을 가져다주시는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 항상 죄가 되는 것은 피하며, 회개하고 자백하고 모든 죄를 용서받도록 해야 합니다. 죄가 우리를 우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것 때문에 슬퍼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해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정말 슬퍼하시는 때는 우리가 우리의 교제에서 이웃을 제외시킬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일과 선한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이 교제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시고 가셨다면 약속대로 오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지금도 변함없이 불신앙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며, 하나님의 의를 힘입게 하시며, 성도 상호간의 교제를 가능케 하십니다(요 16:13). 또한 다시는 사탄의 종노릇하지 못하도록 심판의 역사를 계속하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 우리가 분명 하나님께 속한 자일진대 이 보혜사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님은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말씀을 어떻게 듣습니까? 그 말씀을 듣고 그분과의 교제를 원한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당장 성경을 펴들고 기도를 시작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말고는 그 어떤 목소리도 듣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으로 가득 채워달라고 간구하면서 또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아닌지 성경에 비추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생각들을 성경 구절에 비추어 정리하면서 실제적인 삶에 적용해 나가셔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이루는 방식입니다. 이 삼위의 역사를 힘입어 바울은 선언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말씀의 참 의미는 "우리가 주 안에 거하면 많은 과실 맺는 일은 물론 주님이 우리에게 명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나를 깨뜨리시어 깨끗하게 하시고 채우시고 주님 안에 항상 거하게 하시사 주님과의 교제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이루어 주님의 이름이 나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결국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친밀성과 그리스도로 자기 안에서 주인이 되게 하며 성령의 인도와 보호하심이 없이는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성도인 한 빈부귀천, 유·무식이나 모든 인종을 뛰어넘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자이며 성도들의 교제의 대상이며 모든 이들의 환영의 대상입니다. 따라서 이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동참자들의 상호간의 교제"라 할 것입니다(빌 1:7). 왜냐하면 성도는 같은 시민이요, 같은 상속자, 같은 가족, 함께 나누는 자이며, 함께 동역 하는 자이며, 함께 그리스도의 모방자요, 함께 싸우며, 함께 기뻐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곧 함께 안위함을 받으며(롬1:12), 함께 쉬며(15:32), 함께 갇힌 자요(16:7), 함께 지어지며(엡2:21), 함께 세우는(엡2:21)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교제가 필연이었음을 깨우쳐 주는 것이 '첫날부터 이제까지'였습니다. 제가 이 원어들을 세세히 살펴보니 원어에는 첫날부터와 이제까지에 각각 다 정관사 '그'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첫날'과 '그 이제'가 그들에게 영원히 기록될 역사적인 날들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첫, 날, 부터, 이제, 까지'의 다섯 낱말들 특히 '부터(ajpov)'가 그 교제가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너무나도 잘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낱말들로 여겼는데 이 평범한 낱말들 속에 정말 진귀한 보화들이 숨겨있을 줄을 정말 몰랐습니다. 그 첫날은 나로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출발한 역사적 기원을 이루는 날이었습니다. 바로 그 날에 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시작함으로 죄에서 분리되어 죄로부터 영원히 멀리 떨어지게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중지되고 영생이 시작된 날이었고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됨으로 내 인생의 새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내게 영광스러운 완성을 향해 달림으로 끝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을 역전의 인생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내 인생 최상의 새벽을 여는 기원이 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 첫,날,부터'의 네 낱말이 가지는 의미들을 모두 조합해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이제,까지'라는 말로 이 사실은 '그 때로부터 내 인생의 종점 곧 영원한 현재 속에 살게 될 천국에 이르기까지'은 불변할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광스럽고 복된 교제는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까지 하나님이 이루실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6절)." 우리는 성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는 놀라운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바울은 그의 편지 맨 앞에서부터 깨우쳐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악질 교통경찰 같습니다. 은밀하게 목을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당신 법을 어겼어. 5만 원짜리야, 어떻게 할래?" 남의 약점을 찌르고 몰아 부치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과 의를 증명해 내려는 듯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남의 약점을 잡고 입바른 소리로 죽인 시체들로 훈장을 삼으려는 미련한 자가 바로 제 모습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자기가 의롭다 내세울 수 있는 자는 없고 따라서 남을 정죄할 권한은 더욱 없습니다. 다만 서로를 세우기 위한 교제만 있을 뿐입니다. 지난 한 주간 누구를 위해 기도했습니까? 누구를 위해 울었습니까? 이웃을 위한 안타까움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내가 자신의 교제에서 누군가를 제외시킨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디어 울어보셨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라면 어떤 악당에게라도 미움과 증오를 버리고 그의 기도와 삶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긍휼과 자비가 샘솟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교제는 혈육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다른 신자들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나만의 생활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영원히 그가 택하신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나로 묶여진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룬 자들입니다. 지체는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언제나 함께입니다. 서로 떨어져 있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에는 눈, 코, 입, 손, 발, 각종 장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따로 노는 기관은 하나도 없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온 몸에 열이 나고 그 하나를 고치려면 눈으로 확인하고 발로 병원을 찾아서 입으로 설명을 하면서 돕는 것이 지체입니다. 서로 돕지 서로 비난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 각인각색의 사람들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으면서 한 몸을 이루어 부윤 사랑의 교회라는 하나의 집을 지어나가야 합니다. 그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직장 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꺼리면서, 상가에 가면 절을 해야 하고 술판이 벌어지니 가지 않고, 동료의 돌잔치에도 고스톱이나 치고 술이나 마시니 가지 않는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핑계로 주변 사람들과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자기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천의 역할은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원활한 팀웍을 유지해야 업무도 잘 할 수 있고 전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실수를 교훈 삼아야 합니다. 베도로가 뽑은 칼에 의해서 떨어진 말고의 귀를 예수님은 붙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칼을 뽑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하시지 않는 한 내가 먼저 심판의 칼을 뽑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한 우리도 인정해야 합니다. "박 집사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 그는 가짜야, 아주 비겁한 자야!"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항복하는 게 믿음이요 지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안에서 우리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그들 모두를 사모하고 사랑하며 섬기며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성숙한 성도라면 더욱 더 그리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진정한 교제는 한국교회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자백함으로써 용서를 받고 교제를 회복하는 길이야말로 참된 성도의 길입니다. 

세상의 교제는 나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내가 교제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지만, 성도의 교제는 상대의 유익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교제입니다. 자기를 밟으려는 자에게 맞대응하기보다 오히려 밟혀 주고, 죽어 주는 교제입니다. 이것은 구제나 전도나 교회봉사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유익만을 최고 관심거리로 삼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을 따라서 이웃을 위한 사랑이 샘솟기까지 엎디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섬기며, 더불어 협력해야만 합니다. 모닥불도 불붙은 많은 장작들이 모였을 때 빛을 더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 불붙인바 된 우리는 모두 함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아름다운 교제를 통하여 일군 사랑의 불씨를 미운 사람에게까지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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