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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강, 종 그리스도 예수의


"(빌1:1-2)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종이라는 말보다 우리를 욕되게 하고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말도 없고 또한 이 말보다 더 이상 자신을 낮출 말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돈, 명예, 권세들을 탐하는 것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실은 내가 남의 종이 아닌 주인으로 살려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서신 맨 앞에서부터 자신을 '종'으로 부르시기를 주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전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로의 회귀에 대한 그의 감격이 너무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 서두에 의도적으로 '종'과 '주'를 대비시켜 놓음으로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 속에 다 농축시켜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병든 교인들에게는 치료제로서, 건강한 교인들에게는 성화의 촉진제로 제시함으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이 두 낱말을 세뇌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것은 예수의 제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공통된 관계를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역의 중대성, 복음 전도자의 거룩한 직무를 의식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종'은 교회의 특수한 직분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역의 중대성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나 자기의 사역에 대해 명성을 얻을만한 충분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를 너무나 겸손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겸손은 주님의 십자가에 근거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신 말씀은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치루었다.'는 선언이요 그것은 곧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됐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두 주님의 소유가 되었으며 영광과 고난까지 모두 주님께 완전히 예속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위해 끊임없이 종으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종'의 삶은 이 땅의 인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푸는 마스터 키요, 온 교회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명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십자가로 죄와 사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말에서 두 가지 강조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분은 나 자신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 아디서나 내 뜻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청지기로서,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자로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청지기(종) 자격으로 쓰는 그리스도의 것이므로 이 편지의 내용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권위로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하려는 내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자신들을 종으로 낮출 수만 있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문제될 게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완전히 예속될 때 나를 주장하는 이는 내가 아닌 그리스도임으로 나의 모든 문제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두 손 잡아매고 가만히 있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방식대로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온전히 책임져 주시리라는 믿음의 확신입니다. 이보다 복된 삶이 있을까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로 세상의 주인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로마의 우상은 황제 자신이었고 이를 거부하던 성도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런 현실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름부음 받은 구주는 로마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주'라는 사실을 일깨움으로 소망을 주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에 나오는 "성도"라는 말과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말속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성별해 놓은 그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 즉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라고 구별 지어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성도의 자긍심을 높여 난세를 힘 있게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의 삶이지(빌4:13) 결코 세상의 것으로 좌지우지되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이 우리를 흔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자랑스럽습니까? 종의 복됨을 아시겠습니까?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갇혀서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한 주간도, 오늘도 그의 종의 자세로 사셨습니까? 그렇다면 누구를 섬겼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이 교회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관심과 희생을 감수할 수 있습니까? 

교회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목회자가 복음을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라도 갇혔을 때 여러분은 얼마만큼의 사랑과 관심과 희생을 몸소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면 그것은 참으로 심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돈, 섹스, 쾌락, 명예 등의 종이 돼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섬길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뿐이십니다. 우리의 주는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는 그를 떠나서는 살수도 없고, 아무 선도 행할 수 없는 송장들입니다. 성도의 생명과 권위는 그리스도 예수로부터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를 떠나서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요 15:5)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러므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확신을 갖는 일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랑 받는 자이기를 원하십니까? 교회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길이요, 가장 뛰어난 삶을 사는 확실한 비결입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살기로 결심하시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아멘이십니까? 그리할 때 은혜와 평강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제가 본문 1절을 보면서 제 머리에는 'dou'lo" Cristou' jIhsou', 종 그리스도 예수의.'이라는 뇌울림이 있었습니다. 왜 이 편지 서두에서 '종'을 강조했을까? 그래서 사전에서 dou'lo"를 뒤지다가 '종, 청지기' 외에 '묶인' 의미를 보고 '와! 이것이었구나!' 감격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나'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그에게 묶이기까지의 과정을 유추해 보았습니다. 맨 처음 예수는 십자가에 묶이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로마의 황권에 도전한 이방인을 매어 죽이던 형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틀에서 하나님의 왕권에 도전한 인간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그 악당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려고 악당들을 대신해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예수를 교회의 머리로 교회를 예수의 몸으로 묶어 놓으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자들 곧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너무 감격해서 '나는 묶인 자다. 그리스도 예수께!'라고 만인들이 다 들으라고 외치고 있는 바울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자'의 축복을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이 축복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인의 얼굴을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발이나 드는 그런 천덕꾸러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묶여 있다면 영광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언제나 함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염치가 있건 없건 체면이 서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그리스도가 게시는 곳이면 함께 있도록 묶어 두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일과 그가 누리실 하늘의 영광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누리는 모든 영광과 고난까지 바울도 동일하게 누릴 수밖에 없도록 운명 지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동일하게 그리스도께 묶여진 모든 성도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섬기러 오신 이 땅의 백성들을 우리도 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은 방법이나 전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섬기는 마음'입니다. 이 진실된 사랑으로 섬기는 자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묶여진 자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곳에 자신의 마음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마음으로 자신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증거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거짓된 세상 속에서도 진실할 수 있는 용기, 빼앗기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지고 당하면서도 섬길 수 있는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자들'만의 특권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어 섬기고 주는 것을 인생관으로 삼는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할 수 없어 한다.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지 않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는다.'는 것은 우리가 버릴 노예근성입니다. 주인의식으로 섬겨야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노예근성으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주인의 마음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면서 무엇도 바라지 않습니다. 굴욕이 아니라 기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거기에 성도의 행복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모순되게도 그것이 신자가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노예근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도 없고 피곤한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나 거지근성을 갖고 무엇인가를 얻을 것만 생각합니다. 아무리 가져도 만족은 고사하고 오히려 불평과 불만만 가득합니다. 아무리 채워도 더 갖고 싶은 마음이 불만이요, 불평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원망만이 넘칠 수밖에 없고,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은 받는 것이 즐겁지만 주인은 주는 것이 기쁨이요 보람입니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섬기며 주는 삶에 있습니다. 줄 게 없다고요? 섬기는데도 용서하는 데도, 봉사하는 데도, 돈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이 섬길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대상이 성도가 됐든 이웃이 됐든 가족이 됐든 상관이 없습니다. 주인의 마음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세상의 주인입니다.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주관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묶여 있는 자들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8:18)." 이 엄청난 말씀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자는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자라는 말입니다. 사실 종에게는 자기가 없는 삶입니다. 오직 주인의 뜻을 이루는 것뿐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이제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바 된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묶여진 자들의 복된 운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사랑에 감사하면서 남은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그 삶만이 현대인의 중병을 치유하는 길이요, 우리가 행복을 누리는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본문 서두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강조한 이유입니다. 

이제 우리의 몸도 마음도 모두 심령까지도 주님께 묶여진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유로 삼고 있는 것, 우리의 삶까지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오직 주님만을 위해 쓰여 지도록 힘쓰셔야 합니다. 종에게는 자기 소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오직 주인을 위해서만 써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내 행복이요, 주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거기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군의 군수의 종(비서)만 돼도 얼마나 뻐깁니까? 하물며 만왕의 왕의 전권대사로 택함 받은 여러분이 비굴해서야 말이나 됩니까? 주인의식을 가지시고 기쁨으로 섬기는 종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삶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거짓입니다. 물은 차고 나면 넘치듯이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묶여진 자들이라면 이웃사랑으로 넘쳐흐르는 것으로 증명되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당신에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을 섬기기가 피곤합니까?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남편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자식을 키우면서도, 부모를 섬기면서도, 교회봉사를 하면서도, 형제나 이웃을 섬기면서도 항상 주를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곧 주님과 하나로 묶여진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미가 자기의 두 아들을 좌우정승이 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 사건을 잘 압니다. 그 때 다른 열 제자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제자들은 예외 없이 다 높아지려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가 선수를 친데 대해 분히 여겼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제자들은 메시야 왕국과 자신들의 권좌를 분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가 되시는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며 그곳에서는 모두가 자기를 죽여 이웃을 살리기 위해 겸손히 섬기는 자가 높임을 받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세상 나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나라에서는 대인이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큰소리칩니다.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반대의 통치가 지배합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늘에서 크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은 이웃이 복 받기 위해 사랑과 섬김을 행한 사람들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것이 우리 주님이 손수 보여주신 본입니다. 모든 이의 주이신 예수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모든 이의 종을 자원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이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예수께 묶여진 자들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아버지 우편에 있는 영광을 버리시고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는 한 번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한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멸시와 버림받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는 죄를 아시지도 못하시는 분으로 인간으로 오셨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그는 한 번도 그 일을 마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까지도 그는 자원하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기쁨으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분은 처음부터 주기 위해 오셨고, 섬기려 오셨습니다. 주되 그는 아낌이 없으셨고, 언제나 기쁨으로 주셨습니다. 있는 것 다 주고도 더 줄 것이 없는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섬기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기쁨이셨습니다. 그분의 섬김에는 어떤 기대나 바램도 어떤 계산도 없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 길을 가도록 주님께 묶여진 자들입니다. 저 놈을 도우면 본전이나 뽑을까? 투자할만한 가지가 있는 놈일까? 선을 악으로 갚아오지는 않을까? 사실 저도 그렇게 따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런 저런 것 따질 것 없습니다.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갈하면 마시우라"는 것만이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주되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부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가로등 밑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던 사람이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계십니까?" 물었습니다. "지갑을 잃어 버렸습니다." "여기서 잃어버렸습니까?" 하고 묻자 "아니, 저쪽입니다." "그럼, 왜 여기서 찾고 있습니까?" "저쪽은 가로등이 없어서 밝은 곳에서 찾으려고요." 하더랍니다. 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어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는 사람들, 큰 일을 기다리며 작은 일을 외면하는 사람들, 잊지 마십시오. 섬김을 외면하는 자들이 앉을 예수님의 옆자리는 없습니다. 또한 섬기기를 거부하는 자를 진심으로 존경할 자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자리, 섬기는 자리에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의 종 되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수욕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기업을 얻은 우리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찌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세상의 영광이나 사람들의 칭찬을 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어떤 목사나 교인들처럼 교회가 욕먹을 짓을 사서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이 뭐라던 오직 자원하여 스스로 종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따르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실 때 역설적이게도 종으로 사는 삶만이 이 세상의 주인으로 사는 유일한 복된 길임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명심할 것은 자신의 사회적신분에 상관없이 우리는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신분이 무엇이든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종'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서 사도 바울의 권면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현대의 성도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께 묶인 자들로서 모든 성도들의 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섬김을 따르는 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맨 처음 만났을 때 뭐라 했습니까?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나는 당신을 섬기는 자로 존재하겠다는 자기 자신에게 한 다짐'이라 봅니다. 내 살과 내 뼈를 내가 섬기지 않으면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섬김으로 아내가 잘 되고 내 가정과 내 이웃이 복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옴으로 인간은 섬기기보다 섬김을 받기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지금까지 내 뜻과 내 욕심을 따라서 세상의 육욕을 채우기 위해 열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께 묶인 자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창조질서로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께 묶인 자들이기에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의 종이 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 묶인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자들의 가장 높은 자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 되어 이웃을 섬기는 자들의 몫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든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어 섬기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들으신 1, 2, 3강만으로 빌립보서 200강을 다 들으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문제는 스스로 종이 되어 섬기는 것이면 해결되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섬기려 오셨고 그 섬김을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완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을 때 그것은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신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완성하셨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완성하려면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섬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야 맞습니다. 바울은 그가 빌립보서 전체에서 할 말을 이 1-2절 두 절에 다 농축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음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연약과 부족을 알고 또 그것들을 채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하여 행하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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