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로 06 - 더 나은 미래 희망
더 나은 미래로 06 - 더 나은 미래 희망
베드로전서 1:3~5
19세기 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감동을 주었던 「마지막 잎새」라는 소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소설의 저자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여의고 15세까지만 학교 교육을 받을 정도로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청년이 되어 결혼한 후, 텍사스의 오스틴 은행에서 일하다가 공금횡령죄로 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도 사별하였습니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형무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중에 억울한 사연과 어려운 환경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의 이야기를 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썼습니다.
드디어 책을 출간할 단계에 이르렀으나, 아빠가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어린 딸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명을 감추고 '오 헨리'라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때마침 그의 소설은 극심한 경제난과 암울한 사회 분위기로 절망에 빠져 살던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마지막 잎새」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가난한 화가촌인 그리니치빌리지에 살던 화가지망생 잔시라는 소녀는 의사로부터 회생할 가능성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절망적 진단을 받습니다.
어린 잔시는 병실 침대에 누워 창가 너머에 있는 옆집 담의 담쟁이덩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하나둘 세면서 마지막 남은 잎이 떨어지는 순간 자기도 죽게 될 거라는 나약한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새도록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그런데 벽돌 담 담쟁이덩굴에는 아직도 잎 하나가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이튿날 밤에도 역시 비바람이 심하게 불었지만, 그 잎이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잔시는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됩니다.
이 책의 주제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품고 살라는 메시지입니다.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메시지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말하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미래세계가 희망을 가졌든, 못 가졌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희망 이론'을 연구하는 자들은 '우리는 문제가 아닌, 답에 집중하면 희망이 보인다.'고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문제 중심으로 살지 말고, 해답 중심으로 살아야합니다. Solution oriented여야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 사도의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신학적 주제는 희망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을 강조하고, 요한이 사랑을 강조한다면, 베드로는 희망을 강조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의 삶이 가능할까요?
1. 부활의 생명으로 희망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기질적으로 다혈질의 사람이다 보니 감정의 up & down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갈릴리 호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로는 새로운 활력과 기운을 얻어 어떤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의 사도로 살았습니다. 희망 전도사로 활약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가 되었으니 절망을 정복하는 삶이 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여기「거듭나게 하셨다」는 말은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가 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 희망』(living hope)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예수 부활의 축복을 힘차게 강조하면서, 우리가 곧 산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주려고 준비해두신 복을 소망합니다.』
얼마나 현실적인 축복입니까?
예수님께서 인생 최악의 절망인 죽음까지도 정복해주셨으니 우리는 그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이라는 단어의 기본개념입니다. 부활이라는 말은 '일어난다, 살아난다, 재기한다, 더 나아가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무덤 문을 가로막고 있는 큰 바위덩어리와 같은 인생의 난제와 방해물을 밀어제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과 사업현장이 아무리 치열해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가게 문을 닫았다가도 회생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여러 번 반복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재기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부도를 맞고 파산을 하였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이 넘어져본 사람이 빨리 일어나는 법도 압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의 좌우명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절대 낙심하지 않는다. 둘째, 반드시 끝까지 해낸다. 셋째,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축복으로 산 희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G. E. Ladd라는 신학자는 이것을 『축복된 소망』(Blessed hope)이라고 명명합니다.
지난 2월 4일이 음력으로 입춘이었습니다. 새로운 봄이 온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입춘이라는 한자어 뜻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입춘을 '봄이 들어선다.'(入春)는 뜻으로 생각하는데, 한자어는 立春입니다. 즉 「봄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추운 겨울동안 움츠려 있었거나 눌려있었던 생명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뜻입니다. 얼어붙었던 생명들을 다시 솟아나게 하고, 어두움 속에 갇혀있었던 생명들을 살아나게 하는 봄이 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생기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지나 희망의 봄으로 세워주는 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생명력으로 힘차게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활력 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역동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라십니다. 부활의 생명력으로 희망차게 솟아나기를 바라십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부활의 새 기운과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십니다.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 수 있는 초월적인 힘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영혼의 새봄을 주시는 예수님을 힘입어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력을 힘입어 살아가자고 힘차게 호소합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에 기쁨 늘 충만하네.'
2. 능력의 보호로 희망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만든 무덤 문을 활짝 열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 5절은 매우 역동적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 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 「보호」라는 단어는 그 당시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군인들이 성벽을 지키거나 국방을 수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안전한 보호, 견고한 방어, 든든한 호위와 지켜주심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과 2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시므로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 본문 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주님」이라는 거대한 칭호를 붙입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권(Kingship)을 가지신 능력의 주님이심을 천명하는 호칭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를 능력으로 보호해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더라도 능력으로 지켜주십니다. 사고로부터 지켜주시고, 질병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음해나 사기로부터 보호해주시고, 모든 위험으로부터도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능력으로 보호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시다. 가정의 행복을 보호해주십니다. 우리의 미래안전을 지켜주십니다. 세상 환난에서 보호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왕권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마가복음 16장 20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기적인생을 가능케 하여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의 노래에서 이런 희망의 찬가를 부릅니다.(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주여 지켜주옵소서(주님 지켜주십니다.)'
최근 들어서 21세기 현대인들의 특징은 '도시 유목민'이라고 정의합니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지만 정착도 없고, 안정도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더구나 요즘은 전문성의 시대이다 보니.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어느 시대에 살아도 여전히 유목민 같은 나그네입니다.
베드로는 기독교 초기에 로마 정부의 핍박과 박해로 정처 없이 피해 다녔던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디아스포라, 즉 떠돌이 순례자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정처 없는 떠돌이 인생으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로 터키 지역의 갑바도기아 카타콤에서 은거하며 살았습니다. 일평생 임시 거주자로 살았습니다.
모든 불이익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고난의 순례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나그네와 거류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2:11)
이런 험난한 광야길 인생에서도 예수님은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고 돌보아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고차원적 하나님과의 동행 신학입니다. 예수님은 왕권의 능력으로 우리를 돌보아주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해주시기 때문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자』는 말을 거듭 호소합니다.
아무리 암울하고 어두운 절망상태에서도 희망의 무지개를 그리며 살아가자는 외침입니다.
금세기 탁월한 설교자 W. Wiersbie는 베드로의 수준 높은 가르침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최악의 때에 최고의 유익을 얻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How to make the best of times out of your worst times.)
우리는 어떤 고난과 시련의 와중에서도 비관적인 자세로 '주변'(around)을 쳐다보지 말고, 긍정적인 자세로 '앞'(ahead)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시련 다음에 반드시 승리가 있고, 고난 다음에 찬란한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힘차게 일어나게 하시며, 왕권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기에 우리의 미래는 여전히 희망적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외치는 더 나은 미래 희망 메시지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우리 시대의 희망 시인 정호승 님의 시 한편을 선물로 드립니다.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더 나은 미래로 …)
(기도 초청 :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